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여경 Feb 21. 2018

도식화

무카이 슈타로 <디자인학>을 읽으며


내가 '디자인론'에서 갖는 불만이 너무 함부로 규정하고 도식화 한다는 점인데... 나 또한 늘 이런 지적을 받는다. 하지만 어떤 이해에 이르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도식화가 수단으로서 유용하기에 어쩔수 없다. 더구나 이미지로 세상을 파악하는 '디자인'론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도식화는 하되 항상 조심하고, 열린 태도가 중요하다.

-

'데스틸'이란 네덜란드 말은 어렵다. 영어로 하면 '더 스타일'이다. 풀면 '절대 형식' 정도... 더 쉽게 풀면 점 선 면 동그라미 세모 네모 등 추상형태로 노는 것이다. 당시 그들은 보이지 않는 '이데아'를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 그리고 보이는 현상의 근본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놓고 추상성에 몰입했고, 그 결과를 절대형식=데스틸이라 말했다. 

-

무카이 슈타로는 울름에서 공부해서 그런지 당시의 분위기를 거의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듯 하다. 지금까지는 더치스타일만 가지고 가설적으로 추측해왔는데, 이 책을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바우하우스 디자인론에 한발 다가선 기분이다. 설명 자체가 당시의 인상파, 회화 흐름과 거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이해도 어렵지 않다. 다만 몇몇의 표현이 거슬린 뿐.

-

특히 '중심 상실'은 유난히 거슬렸다. '중심 상실'은 일본어 번역이니 번역과정의 실수가 아닌 저자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근대에 있어 중심은 상실되기커녕 더 강화되었다는 점에서 중심 상실이란 표현은 영 어색하다. 종종 등장해서 아예 이 표현의 대안을 고민했는데, '초점 상실'이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추상성으로 다가설수록 중심성은 더 돋보인다. 가령 대상을 네모로 추상화시켜 해체 시켰다면 자칫 중심성이 사라진것 처럼 보이지만, 모든 형태가 '네모'라는 점에서 네모라는 획일화=중심성은 더욱 강화되었다고 보면 된다. 쉽게 말해 세상이 모두 네모의 형태로 보인다. 

-

19세기 회화의 가장 큰 성과라면 원근법의 파괴다. 일초점이 다초점으로 바뀌는 과정은 일신론이 다신론으로 바뀌는 것과 같은 엄청난 시선의 변화다. 근대는 그런 변화를 겪었고, 그 변화는 회화에 반영되었다. 세잔이 선두에 서고 입체파와 야수파가 대를 잇고, 다양한 변주가 일어나는데 데스틸은 입체파의 흐름이다. 

-

이를 데스틸의 추상 언어로 번역하면 초점이 살아있는 '삼각형'에서 초점이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괄호처진 '원형'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는 중심성의 상실이 아닌 중심성이 더욱 강화된 것이다. 그게 법에 근거한 근대국가의 원리다. 다만 중심성이 초점을 포기하고 내면으로 더욱 깊숙히 들어간 것이다. 때문에 위계(히에라르키)가 해체되고 다초점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다초점은 중심점에 포섭된다. 그 중심점이 바로 주체성이다. 

-

자 그럼 설명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존재에서 관계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와 관계의 방식이 바뀐다. 즉 존재와 관계 위계가 '초점과 대상' 아니라 '중심과 주변'으로 바뀐다. 그래서 종속이론 같은 사회론이 등장한다. 이렇듯 개념어 표현에 따라 설명자체가 달라진다. 그래서 개념어를 사용할때는 늘 조심스럽다. 

-

도식화는 항상 섬세하게 접근해야 한다. 앞문을 열고 뒷문도 열어 한다. 바람이 통해야 변주가 가능하기 때이다. 바우하우스도 저자도 줄곧 이런 의견을 견지하기에 위 표현이 더욱 거슬려 몇마디 거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디자인모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