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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Mar 01. 2018

쉽게 글을 쓴다는 것

말을 할때 어떤 대상을 향하듯 글을 쓸때도 항상 읽을 이를 염두하게 된다. 선택의 기로에서 늘 망설인다. 이 글은 누구를 위해 쓰는 것인가... 이 이정표는 크게 4가지 방향을 가르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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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 자신

2. 친구들 혹은 동료들

3. 불특정 다수

4.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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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쓰기는 보통 나 자신을 향하게 되는데, 기왕이면 친구들도 나아가 불특정 다수가 읽기를 기대한다. 그래도 역시 가장 중요한 대상은 나 자신이다. 내 경우 글을 쓴다는 것은 타인에게 설명이나 설득이 아닌 나 자신이 어떤 상황을 이해하고 정리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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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오로지 나 자신만 이해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본적인 있는데, 존경하는 선생님이 전혀 이해가 안된다는 댓글을 달아주셨다.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옮긴터라 그랬을 것이다. 다시 읽어보니 '몇달이 지나면 나조차 이해하기 어렵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알았다. 나 자신만 향하는 글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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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쓸때마다 이 글을 읽을 친구들이나 동료들을 상상하곤 한다. 나 자신보다는 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랄까. 단어 선택이나 표현 등에 신경을 쓰게 된다. 수준높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도 들고. 그래서 그런지 글이 자꾸 어려워지고, 많은 분들이 내 글이 "어렵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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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만을 적극 수용해 왠만하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쓰고 싶어졌다. 그러나 생각보다 쉽지 않다. 쉽게 쓴다는 것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없다. 때론 어렵게 쓰기 보다 쉽게 쓰기가 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대중적인 저작이란 결코 폄하할 영역이 아니다. 물론 작품성과 대중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 좋겠지만... 어느 하나라도 잡으면 대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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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쉽게, 더 쉽게"를 마음 속으로 되뇌이다 보니, 무엇을 쓰고 무엇을 쓰지 말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 구구절절 설명하려면 문장이 길어지고,이해는 더욱 어려워지고, 논지는 미궁에 빠진다. 쉽게 쓴다는 것은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말해야 할 것'만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은 대가들의 글이 쉽다. 그들은 자신이 아는 것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기에 말하지 않아도 자신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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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디자인된다>을 쓸때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붇고 싶었지만 퇴고를 거듭하면서 욕심을 버리기 시작했다. 아는 것의 8할, 아니 5할만 쓰자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렇게 약 1/3정도의 원고를 버린듯 싶다. 압축된 문장들이었기에 반 이상을 버린 느낌이다. 그래도 어렵다. 지금은 3~4할까지 떨어뜨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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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아는 것을 쓰지 않는 것은 신경을 끊어내는 고통이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침묵이다. 쓰지 않는다는 것은 문장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괄호를 치는 것이다. 괄호는 말할 수 있는 것의 침묵이다. 즉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침묵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런 느낌이 글에 함축되어야 한다. 이게 되어야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붙잡을 수 있다. 결국 대중성이 있는 좋은 글이란 쓸 것과 안 쓸 것을 잘 구분하고, 안 쓰는 침묵을 어떻게 담아내느냐에 달려있는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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