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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Feb 21. 2018

최저임금에 대하여

자주 가던 식당에 오랜만에 갔다. 한 두달만에 간듯 싶은데, 김치찌개가 500원이 올랐다. 어리둥절이다. 왜냐면 15년전 이 식당의 김치찌개 가격은 4500원이었고, 7~8년전까지 5000원이었고, 작년에 5500원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1년도 안되서 500원이 더 오른 것이다. "왜 그랬을까? 최저임금 인상하고 물가가 올랐다는데... 정말 그런건가?" 6000원도 저렴한 편인데 굳이 왜 가격을 올리셨냐고 묻기도 어색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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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최저임금에 관련한 다큐를 봤다. 아주 어렵게 생활하는 청년에게 최저임금을 만원으로 올려주는 실험이었다. 생활의 질이 확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만약 정치를 해야 한다면 최저임금 만원을 목표로 삼겠다"고. 그리고 작년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만원을 목표로 제시했다. 나는 당연히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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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발이 거셌다. '거셌다' 함은 태극기부대처럼 막무가내로 '우겼다'가 아니라 나름 합리적 반박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올랐다. 이를 보완하는 대책들도 쏟아져 나왔지만 거센 반발을 잠재우진 못했다. 반발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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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밥을 먹으며 예전에 봤던 다큐를 떠올렸다. "그 친구가 받은 최저임금 만원은 과연 최저임금이었을까? 아니면 그 친구의 임금이 큰 폭으로 오른 것이었을까...만약 실험에서 모두가 최저임금을 받았다면 생활의 질이 정말 좋아졌을까? 물론 그런 실험은 불가능하니까... 아무래도 이 찌개값이 오른 이유는 최저임금 인상탓인듯 싶은데... 임금이 오르고 물가도 오르면 결국 또이또이,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을듯 싶은데... 결국 피해는 물가상승을 극복해야 하는 서민들 아닐까... 즉 최저임금 인상으로 모두가 조금씩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그럼 뭐가 좋은거지?" 밥을 한수저 뜰때마다 이런 생각들이 머리속을 어지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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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을 하고 나오며 문득 "그럼 최저임금과 물가 인상으로 혜택을 얻는 사람들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가가 상승했다는 것은 노동을 포함한 상품의 가격이 상승했다는 것이다. 노동하는 인간도 상품이다. 거꾸로보면 돈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니 더 많은 돈을 줘야 상품을 살 수 있다. 이를 경제학에서 인플레이션이라 한다. 경제가 성장하면 물가가 점차적으로 오르는데, 안정적 인플레이션 관리가 국가의 주요 역할이다.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이 일어나면 시장은 얼어붙고, 경제지표는 추락한다. 국가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다. 아무튼 물가가 오르면 누가 이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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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상품의 가치가 올라가니, 결국 상품을 가진 자가 이득이다. 그렇다고 소비되는 모든 상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생산수단이 될 수 있는 상품이어야 한다. 대표적인 상품이 바로 '땅' '공장' '아파트' 등 부동산이다. 부동산, 변하지 않는 재산의 가치가 오르기에 부동산을 많이 가진 자가 이득을 본다. 그리고 또 누군가가 떠올랐다. 돈의 가치가 떨어졌다 함은 돈이 시중에 많이 풀렸다는 반증이다. 그러면 돈의 통화량도 늘어날 것이다. 그럼 누가 이득일까... 바로 금융업자들이다. 쉽게 말해 은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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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길! 결론이 났다. 결국 이득을 보는 것은 '국가=국가 운영 주체들', 그러니까 기득권들 아닌가... 최저임금 상승은 국민의 고혈을 쪼금씩 짜내서 또 국가 기득권의 배를 불리는 정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엄습했다. 모두가 대학을 가니 모두가 취업을 못하듯 모두가 임금이 오르니 모두의 생활 질이 떨어진다. 그 사이 이득을 취하는 이들 역시 기득권 집단들이다. 또 속았다! 속으로 욕지거리가 나왔다. 대학을 나와야 좋고, 모두의 임금을 인상해야 좋다는 허울좋은 말에 또 속은 것이다. 허울좋은 목표에 따른 치열한 경쟁 시장을 만들어놓고, 그 사이에서 이득을 취하는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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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떻해야 하지? 참 어렵다. 국가가 있는 이상, 그 국가를 운영하는 이들에게 혜택이 주어진다. 그 사이 민중은 계속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국가를 무시하거나 없애면 엄청난 대혼란이 빠질 것이고... 어려운 문제다. 이념 문제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양극화, 우리는 어떤 현실적 딜레마에 빠진듯 싶다. 국가가 살면 민중이 죽고, 민중이 살면 국가가 죽는다. 경제학자들은 도데체 뭐하는 사람들이지??? 내가 경제에 무식해서 모르는 것이 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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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답은 이미 나와 있다고 본다. 국가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땅에 사람이 있으려면 아이들이 필요하다. 아이를 돌보려면 안정된 일과 여건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남은 세월을 살아갈 노인들의 부양시설도 있어야 한다. 바로 사회안전망, 복지가 있어야 한다. 결혼, 출산, 육아, 보육, 교육, 일, 취미, 부양... 삶의 단계마다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가 도와주어야 한다. 언제까지 우리는 그걸 모두 개인과 가족의 책임으로 여겨야 하나... 이러려고 민중이 국가를 구성했나...자괴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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