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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Mar 05. 2018

청년과 도시재생에 대하여

http://v.media.daum.net/v/20180305115003294?rcmd=rn


나는 청년문제와 도시재생이라는 두 문제는 별개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별개로 놓고 접근하는 입장에 반대한다.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방향과 방법을 알게 된다. 누차 페북을 통해 의견을 밝혔지만, 도시가 쇠퇴하는 가장 결정적 원인은 아이와 청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도시를 재생하기 위한 결정적 노력은 아이와 청년이 많아지도록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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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기사는 너무 노골적이다. 하지만 노골적이기에 장점도 있다. 문제의 핵심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며, 사태를 이해하기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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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청년과 도시재생 문제에 관련한 해커톤에 퍼실레이터로 참가했는데, 내가 배정된 구역은 홍대였다. 나는 참가자들과 함께 홍대인근을 둘러봤다. 홍대역 8번출구에서 내려 스산한 경의선 책거리를 지나 옛정취가 여전한 학원거리를 둘러보았다. 홍익대 정문에 도착해 우동을 한그릇 먹으며 지금까지 본 거리에 왜 사람이 없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 홍대 클럽거리를 둘러보고 홍대앞 놀이터 앞의 스타벅스에서 차를 마셨다. 여기서는 왜 이쪽은 젊은 사람이 넘쳐나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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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홍대역으로 내려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지하철역으로 내려가기 조차 어려웠다. 여기서 나오는 사람들은 세갈래로 나뉘는데 일부는 클럽으로 일부는 연남동으로, 일부는 합정쪽으로 향한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다. 홍대는 역시 젊은이들의 메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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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홍대에는 늘 젊은 사람들이 많을까? 우리가 내린 결론은 그곳에는 이성을 만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이성에게 끌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이성을 만나기 좋은 곳에 젊은이들이 몰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는 젊은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늙은이들도 이성에 관심이 많다. 얼마전 남편을 사별하신 친척 어른신을 뵈었는데, 도봉산 근처에 노인들이 많이 모인다고 한다. 그곳에서도 또래 이성을 찾는 움직임이 활발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남녀의 문제는 세대를 초월한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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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쟁점은 왜 홍대앞은 슬럼화 되지 않느냐였다. 우리의 결론은 그곳에 대학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 젊은 사람들이 계속 공급되는한 그곳은 슬럼화 되지 않는다. 여기에 도시재생의 팁이 있었다. 원도심의 슬럼화 현상은 서울도 예외가 아니다. 을지로와 영등포 일부지역 등 강북의 원도심은 슬럼화 된지 오래다. 여기서 '슬럼화 되었다' 함은 치안상태나 삶의 여건이 나빠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곳은 여전이 교통이 탁월하고, 삶의 여건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그냥 그 근처에 젊은이가 없어진 탓에 요즘 문화보다는 과거의 문화가 여전하고, 문화적 세련됨이 떨어져 낙후되어 보일 뿐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그곳이 슬럼화 되었다고 말하며 도시재생 대상 구역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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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경험을 통해 청년과 도시재생의 문제가 한 몸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청년의 문제는 결국 우리가 소위 '삼포'라 불리던, '연애'와 '결혼', '출산'의 문제라는 점을 깨달았다. 젊은 남녀의 사랑이 사라진 곳에는 희망이 없다. 기존의 공동체도 위기다. 이미 많은 지역은 이런 이유로 사라질 위기를 맞이한다. 지금 대부분 농촌의 평균나이는 70대다. 이곳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 즉 도시재생은 결국 청년의 재생이며, 청년의 재생은 곧 연애와 결혼, 출산의 재생이다. 출산에 의한 아이들의 재생은 다시 도시를 재생시킬 것이다. 이것이 도시재생의 핵심이며, 지금까지 아니었다면 이제라도 핵심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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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도시재생은 여전히 개발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다. 개발(開發)이 아니라 계발(啓發)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도시개발이 아니라 자기계발이다. 계속 건물만 지어댄다고 그곳이 재생되지 않는다. 자기계발, 그러니까 질좋은 교육과 맘에 드는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 연애할 장소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문화가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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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이 끝나면 결혼에 골인한다. 최근에는 결혼이 삶의 질을 개선하는 일종의 목표가 되곤하는데 완전히 잘못된 발상이다. 그런 결혼이야말로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결혼의 조건이 어쩌건, 결혼은 삶의 목표가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출산과 육아, 보육, 부모님의 부양이 시작되는 헬조선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런데 정말 출산과 육아, 보육, 부양이 헬일까? 아니다. 그것은 행복의 조건이다. 그럼 왜 그것이 헬이 되었을까? 여기에 도시재생의 핵심조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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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지금까지 가족에게 얼마나 많은 짐을 요구했는지 일일이 나열하지 않겠다. 가족이 해체된 가장 큰 원인은 정치권과 재벌들의 탐욕탓이다. 나는 최근의 적폐청산을 보면서 부패한 역대 대통령과 그 세력, 재벌들에게 형을 1년씩 감형해주는 대신 1조씩 받으면 100조 나아가 200조의 공적자금을 만들수 있다는 말을 하곤한다. 물론 농이지만 말 속에 뼈가 있듯이 어느정도 진실이 숨어있다. 나는 그 돈을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보육, 무상부양 심지어 주거 및 결혼과 출산지원까지 무상으로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차피 요즘 출산율이 30~40만명정도인데 못할것도 없다. 이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왜냐면 그들의 도시재생의 희망이며, 이 땅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럴 필요가 없었다. 4대강에 자원외교에 쏟다부었은 그 엄청난 돈으로도 어느정도는 실현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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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말하면, 대도시에 청년들과 노인들이 몰리는 것은 이곳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몰려서 불편한 점도 많다. 만약 국가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서울 등 대도시 몇 곳을 제외한 몇몇 거점 도시와 농촌에 질좋은 교육체계를 만들고 많은 혜택을 주면 된다. 가령 요즘 뜨는 직업학교를 만들고 덤으로 학위까지 주면 어떨까. 가령 수능이나 입시가 아니라 면접만으로 입학을 하고, 떨어지면 대기자가 되는 그래서 2년이나 3년 뒤에는 입학이 가능한 교육 시스템을 갖추면 어떨까 싶다. 그럼 공교육의 잘못된 관행, 입시만을 위한 교육 정책이 다소 완화되지 않을까. 어짜피 학위를 따는 것이라면 질나쁜 대학보다는 질좋은 직업학교를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의료, 주거, 결혼, 출산, 보육, 부양 정책을 추진한다면... 그럼 과연 청년들이 몇이나 올까... 서울에서 버티기 어려운 이들,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청년들은 가지 않을까? 그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나는 생각보다 많을 것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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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경쟁이 치열하고 많은 부담이 드는 서울에 있을 필요가 없다. 요즘은 교통과 물류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만약 내가 직장이 서울에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조건이 좋다면 나의 거주는 강원도 춘천이나 원주로 할 용의가 있다. 그곳에서 광화문까지 약 2시간정도 걸리는데, 걸어서 1시간 걸리는 창신동에 살때도 출퇴근 시간이 평균 40분이었다. 요즘은 재택근무도 많아지고 출퇴근이 유연해지고 있어서 직장이 큰 장벽이 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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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젊은 사람들이 지역에 많아지면 그 지역은 다시 활기를 띄게 된다. 문화가 형성되고,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지역은 재생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직장 자체가 그쪽으로 옮겨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굳이 도시재생이란 구호도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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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간단하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융합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대도시는 자유정신에 입각한 철저한 자본주의를, 사람이 없는 소도시와 농촌에는 공동체정신에 입각한 철저한 사회주의를 실시하면 된다. 즉 사회적 경제는 서울이나 수도권 대도시가 아니라 낙후된 도시 등 지방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실현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러면 지역은 자연스럽게 균형을 찾지 않을까. 더불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와 자연스럽게 융합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듯 자유와 사회의 조화를 통해 청년과 도시도 자연스럽게 재생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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