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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Mar 07. 2018

육아에세이 ; 생각

며칠전 나는 27개월된 아이와 기싸움을 했다. 나는 아이에게 내 무릎에 앉으면 동화책을 읽어주겠다고 했고, 아이는 무릎에 앉기 싫다며 그냥 읽어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무릎에 앉아야 같이 읽는 것이라며 설득중이었고, 아이는 내말을 경청하면서도, 가끔씩 "아이야(=아니야)"란 말을 반복했다. 와이프는 이 광경을 보면 서로 고집을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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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나는 고집을 부리는 것이 맞다. 하지만 아이도 고집을 부리는 것인가?" 고집은 자신이 어떤 목적을 생각하고 그것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27개월된 우리 아이도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데.. 과연 아이가 목적적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이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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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당연할 법한 이야기를 이렇게 의심하는 것은 내가 비고츠키의 <생각과 말>을 읽었기 때문이다. 언어를 모르는 어린 아이는 생각하기 보다는 느낀다. 여기서 나는 생각과 느낌을 구별하고 있다. 뇌과학자들에게 감정은 곧 행동이지만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생각이기 때문이다. 생각의 억제는 어떤 목적이 있다. 목적을 달성하려면 상대를 설득해야 하고, 그러려면 언어적 생각을 해야 한다. 즉 고집스런 생각이란 곧 소통을 전제하고, 소통을 위한 생각을 위해서는 먼저 언어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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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츠키에 의하면 생각이란 것은 언어적 자기 중심성을 갖는 것인데, 백지 같은 아이는 생각이 아니라 느끼고 있다. 태어난 아이는 환경과 상대의 행동을 느끼면서 서서히 언어를 배워간다. 사람은 보통 언어를 통해 생각하는데, 어린아이는 언어를 말로 내뱉으며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가령 밥을 먹기 전에 "밥 먹어야지"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밥을 먹는다. 즉 혼잣말로 표현하는 것이 곧 생각하는 것이다. 비고츠키는 위협상황에서 아이들의 말이 많아지는 것을 관찰했는데, 이는 위협상황에서 생각이 많아지는 원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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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이 지나면 아이는 점차 말수가 적어진다. 속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유이며 이때부터 자기 중심성이 생기기 시작한다. 즉 생각은 언어를 알고 그것을 속으로 되뇌이면서 한다. 그리고 12살이 넘으며 아이는 개념을 알게 되고, 개념적 사유를 시작한다. 이것이 비고츠키가 관찰한 아이의 발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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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아이는 말이 많아졌다. 끊임없이 말한다. 때론 이해되는 말도 있고, 때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있다. 점차 이해가능한 표현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데 아이가 말을 하지 않을때가 있다. 그렇다면 나와 아이가 서로 대립할때, 나는 분명 어떤 생각을 갖고 고집을 부렸다. 반면 그 아이는 생각을 하고 "아이야"라는 말을 한 것일까? 아니면 어떤 느낌을 그냥 표현한 것일까? 나는 그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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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아이에게 같이 어울려 노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설득하고 싶었다. 아니 아이가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믿었기에 그냥 느낌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해야 맞다. 아이는 이제 언어를 익히기 시작했다. 말랑말랑한 언어 시냅스들이 어떤 패턴구조를 이루냐는 부모의 말에 달려있다. 그래서 요즘은 언어가 더 조심스럽다. 이때 서로 존중하고 설득하는 모습, 때론 고집을 부리고 화를 내는 모습, 즐겁고 기쁜 모습 등 다양한 느낌을 언어와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때론 나의 행동을 정확히 보여주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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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는 나의 이런 행동이 못마땅한듯 싶다. 정확한 행동이 마치 극단적 행동처럼 보일때가 있나보다. 앞서 고집부리는 모습이나 애처럼 화를 내는 모습에 나를 나무라곤 한다. 하지만 육아에 지친 사람에게 이런 나의 생각을 강의할 수도 없고... 아무튼 나의 육아는 일종의 성장과정의 관찰이다. 습관과 언어, 뇌발달 등 다양한 나의 지식이 나도 모르게 육아에 투영된다. 그래서 그런지 마냥 아이와 즐겁게 놀아주기 보다는 자꾸 실험 충동을 느끼곤 한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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