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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Mar 07. 2018

근대화가 시작되었다

"개인은 잘 변하지만 집단은 잘 변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본 구절이다. 진화론 관련 책 한 귀퉁이가 아닐까 싶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문득 이 문장이 떠올랐고 계속 되뇌이다가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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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고려왕조가 무너지고 조선왕조가 들어섰다. 중국이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교체되었으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왕조교체라 나름 평화적이었고,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명예혁명이라 한다. 하지만 난 우리가 이때부터 타의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생각에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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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가 바뀌었으니 이념도 바꾸어야 했다. 당시 명나라는 성리학이 대세였다. 원나라가 불교를 섬겼으니 나름 대체이념을 내세운 것이다. 당연히 우리도 이를 따라야 한다. 다행이 일찍이 고려말기 안향이 성리학을 도입했고, 그 제자들이 있었다. 조선의 이씨 왕조는 성리학을 중심으로 정계를 재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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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관혼상제 등 관습이다. 특히 '상'을 중요시 여겼는데, 문제는 불교의 상례는 화장을 하고, 유교의 상례는 매장을 한다는 점이었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정부는 유학에 의거해 매장을 권했는데, 어디 그게 쉽게 바뀌겠는가. 지난 1000년동안 화장이 관례였는데. 민중들은 두들겨 맞으면서도 화장을 지속했다. 화장이 매장이 되기까지 약 200여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 사례는 하나의 문화가 보편적으로 인식되기까지 최소 100년, 체감하고 자리잡기까지 100년이 더 걸린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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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공식적으로 1910년에 멸망했다. 정확히 말하면 조선이 아니라 조선왕조가 멸망했다. 유교에 근거한 조선은 여전히 공고했다. 당시 조선을 지배하던 일제도 사실상 유교에 근거했기에 케미도 맞았다.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은 유교로 무장한 지사들이었기 때문이다. 해방이 되어도, 민주화가 되어도 유교의 조선은 여전히 공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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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은 대학이 되었고, 성균관은 서울대가 되었다. 과거급제는 고시가 되었고, 악덕지주는 대기업이 되었다. 가부장은 여전했고, 문벌은 학벌이 되었다. 사회적 남존여비도 공고해 불평등이 합리적이었고, 평등이 불합리하게 여겨졌다. 민중은 여전히 개돼지였으며,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권력 지배층의 비율은 여전히 5~10%를 유지했다. 이는 조선의 양반 비율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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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조선에는 기독교가 들어왔다. 안향이 일찍이 유교를 들여왔듯이 조선의 남인계열들이 기독교를 들여왔다. 기독교는 빠르게 민중에게 전파되었고, 동학운동으로 이어졌다. 점차 기독교는 유교를 대체했으며 평양의 오산학교 등 엘리트 계층들도 기독교로 개종했다. 제대로 개종한 이들도 있고 무늬만 개종한 이들도 있었다. 아무튼 기독교의 자유와 평등 사상은 유교의 우열사상을 대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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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근대다. 근대의 개념에 대해서는 일일히 나열하지는 않겠다. 다만 근대와 근대화, 근대성, 근대사상은 좀 다르다. 근대는 개념이고, 근대화는 과정이고, 근대성은 결과이며 근대사상은 내면화이다. 그럼 100여년이 지난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이런 의문이 들어 곰곰히 생각해 본 결과 우리는 이제 막 근대를 이해하고 근대화에 들어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아직 근대성(모더니티)이나 근대사상(모더니즘)을 논하기 이른 상황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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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라도 너무 빨랐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일까. 한편으론 느려도 너무 느리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일까. 중국과 이슬람의 변화를 보면 이미 근대를 이해하고 근대화를 거쳐 근대성과 근대사상을 비판하며 전통과 융합을 꾀하고 있다. 이란은 이미 그런 정치체를 1970년대에 마련했으며, 소련은 해체하고 독일은 연합하여 새로운 미래를 꿈꾼다. 도도한 중국은 일찍이 유교식 공산주의를 도입하고, 최근에는 공공연히 유교를 상품화시킨다. 속도가 너무 다르다. 그들이 근대를 넘어선 것이라면 우리가 너무 느린 것인다. 혹은 그들이 근대를 포기한 것이라면 우리는 너무 빠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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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쏟아지는 뉴스들을 보편 정말 주류가 교체되는 기분이다. 여기서 주류는 술도 아니요 사람도 아니다. 문화를 의미한다. 이제서야 주류 문화가 교체된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화장이 매장으로 바뀌기까지 100여년이 걸렸듯, 평등을 이해하기까지 100여년이 걸렸다. 지난 100년이 근대 개념을 이해하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 100년은 근대를 체감하는 시간이 될듯싶다. 이제야 비로소 조선이 망하고 있다. 이제는 제발 타의가 아닌 자의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세상이 변한다. 이에 걸맞게 나도 변해야 한다. '내 의지로 나를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근대'의 정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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