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러 생각

불일치 사회

김희경의 <이상한 정상 가족>

by 윤여경

지난 십여년 나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를 했다. 환경부터 시작해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예술, 심리, 철학, 역사 등의 고전들을 읽으며 흔들리지 않는 사고의 틀을 잡으려 노력했다. 다양성과 개별성 나아가 개성을 이해하기 위한 보편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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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디자인모형'이라는 순환적 사고틀이자 이론틀을 만들고 '디자인역사연표'라는 역사적 패턴을 구성했다. 이것은 디자인의 개념과 방법, 역사를 재구성하는 과정이자, 가치있는 목적을 모색하는 과정이었다. 이런 고민을 담아 지난해 초 <역사는 디자인된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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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눈으로 세상을 볼 준비는 어느정도 되었다는 판단이 서니 현재 내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 이후 세미나에 참석하고 아름다움, 죽음, 대화, 개인, 공동체 등 일상적 언어의 개념을 곱씹어보고, 현실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대면하려 노력한다. 물론 직접 경험이 어려워 주로 대화를 시도한다. 읽는 책도 고전이나 사상서보다는 현실적 난제를 다룬 서적을 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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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작 일년여가 지났기에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이 세상은 정말 너무 터무니없다. 개념과 현실이 전혀 맞지 않는다. 후안무치, 말과 태도와 행동의 불일치가 다반사요 부끄러움도 없다. 개인도 공동체도 없고, 국민과 국가는 서로를 착취하고, 엘리트와 민중의 경계도 없다. 리더는 우유부단하고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 의리따위는 없다. 선생은 비아냥을 일삼고 학생은 삿대질에 몰두할뿐이다. 물론 공부도 없다. 오로지 성과만을 지향할뿐이다. 부모와 자녀는 서로를 학대하지 못해 안달이다. 언론은 괴물을 만들고 버리기 일쑤며, 인터넷 소통은 공허할 뿐이다. 전근대적 유교국가? 얼어죽을 공자의 정명따위 개나 줘도 모를판이다. 한참을 모르면서 아는척 하는 사람이 인정받고, 아는 사람의 입에는 재갈을 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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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중국 공산당의 제도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중국의 현실을 개탄하는 말을 듣다가 "과연 우리는 민주주의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적어도 우린 어느정도 그렇다는 눈치였다. 티는 안냈지만 내심 경악했다! 우리 사회가 무슨 민주주의인가? 정녕 추악한 현실이 보이지 않는가? 나는 그게 보이는데, 다른 이들은 그게 보이지 않는듯 싶다. 다른 나라의 독재를 탓하면서 우리나라의 독재가 보이지 않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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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가 그렇다고 민주주의가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학계, 직장, 가족.... 재벌독재, 문화독재, 가족독재, 독점, 과점... 심지어 사회적 운동과 노동운동까지... 내 눈엔 온통 독재 투성이인데 무슨 우리나라가 민주주의인가! 정치는 가장 심하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번갈아가면서 해먹은 세월이 짧게는 30년 길게는 70년이다. 국민은 민중을 대표하는 정당을 포기한지 오래다. 세대로치면 선생님들은 50년째, 형님들은 30년째 그 자리를 고수한다. 두 세대의 독재는 여전히 강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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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보면서 지난 십여년 공부한 것이 정말 헛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아니 속았다는 느낌이다. 책을 많이 읽고, 인문학과 과학을 이해하면 통찰을 얻을수 있다는 세간의 말에 크게 속았다. 성과가 있다면 '속았다'는 사실을 안것일뿐. 인문학은 지적허영 혹은 잘먹고 잘살고 잘난척을 위한 또 하나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우국지사, 동방지사, 선비정신 따위 사라진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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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김희경의 <이상한 정상 가족>을 읽는다. 지인에게 현실을 개탄하다가, 나의 소견과 비슷하다며 선물해 주셨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넘 답답하다. 가장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가장 비정상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현실을 직감했지만, 정말 이정도일지는 몰랐다. 정말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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