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처음 종손노릇을 한다. 까막눈으로 40년을 살았다. 공부가 늦어 사당의 현판, 비석의 글을 이제야 읽는다. 읊조리는 제문도 이제야 들린다. 태안공 할아버지의 직위와 성과, 할머니들의 출신을 차례로 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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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과 올해 죽음에 대해 긴 생각을 이어가고 있다. '영사당=길게 생각하는 집'이란 현판이 눈에 띈다. 우연일까, 핏줄에 DNA에 그런 가르침이 새겨져 있던 것일까. 아무튼 반가운 문구다. 무심코 지나던 공간인데 의미있게 다가온다. 앞으로 이곳에서 긴 반성의 시간을 가질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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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다가오면 연어는 긴 여행을 시작한다. 온 힘을 다해 강을 거슬러 올라온다. 자녀들이 쉽게 내려갈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일까. 나무는 자랄수록 뿌리를 깊게 드리운다. 죽음 뒤에 뿌리만 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듯. 뿌리 깊은 고목을 볼때면 생명의 긴 사유가 느껴진다. 그동안 유학과 유교는 비과학적 불합리의 대명사로 생각했다. 하지만 공맹과 중용을 읽고 오륜을 되뇌며 결코 그렇지 않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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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40대 중반을 지나니 이제 나도 돌아갈 채비를 할때가 온듯 싶다. 온 힘을 다해 반성하고, 뿌리를 내리는 노력을 해야 할듯 싶다. 나의 미래와 더불어 죽음 뒤에도 현세가 지속된다는 믿음, 그 현세를 살아갈 미래세대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