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도깨비를 무서워한다. 나는 아이가 이를 닦지 않는 등 말을 듣지 않을때 도깨비로 협박한다. "이를 안 닦으면 도깨비가 잡아가! 어휴 무서워 빨리 닦자!" 말도 안되는 이 협박은 종종 통한다. 물론 아이도 인과관계가 말이 안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내 협박을 완전히 무시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인과관계를 떠나 그냥 도깨비의 존재 자체가 무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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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도깨비가 우리 집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종종 그렇게 말을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거짓말을 할리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아직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도깨비를 두려워한다. 어떤 방으로 나를 끌고가서 거기에 도깨비가 있다고 협박하고 뛰어 나온다. 무서운 이야기가 나오면 늘 도깨비를 언급하고, 엄마아빠랑 있으면 무섭지 않다는 말을 하곤한다. 무서움을 이기기 위한 스스로의 다짐일 것이다. 7살 이전 아이의 말은 생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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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아이는 왜 도깨비가 무서울까? 나는 아이가 도깨비를 본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깨비'라는 말은 그 자체로 두려움의 대상이다. 불안과 공포가 모두 혼재된 두려움. 만약 아이가 도깨비를 본다며 어떻게 될까? 둘 중 하나다. 정말 무섭거나 하나도 안무섭거나. 이건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다소 무뎌졌지만 아직도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면 소리를 지른다. 까약! 나도 여전히 도깨비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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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도깨비 만큼이나 세상이 두려웠다. 하지만 인문학을 공부하고 나서부터는 세상이 별로 두렵지 않다. 내 타임라인을 보면 정치, 경제, 사회, 과학 등에 대해 종종 논평한다. 왠만하면 거침없이 말하는 편인데... 왜냐면 언젠가부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느 정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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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어떤 숨겨진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알기 위함이다. 뒤에 도깨비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돌아가는 매카니즘이 있는 것인지... 만약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인지... 그것을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통해 인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을 보통 문사철이라고 말하곤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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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역사,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을 알게 된다. 물론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겠지만... 적어도 뉴스나 현상들을 그 자체로 믿기 보다는 한번즈음은 사유를 통해 걸러 보게 된다. 쉽게 말해 세상을 보는 나만의 눈을 갖게 된다. 그럼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한 상황도 두렵지 않고 이해하게 된다. 때론 예측이 될때도 있다. 예측이 맞으면 점점 자신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올라간다. 그래서 나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가장 가성비 좋은 방법으로 독서를 꼽곤 한다. 물론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전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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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도깨비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도깨비의 존재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아이에게 도깨비 협박은 잘 먹히지 않는다. 수박이나 딸기 같은 실질적인 먹을거리로 회유를 해야 말을 듣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욕망과 욕구를 충족하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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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욕구로 회유하는 것은 두려움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 물론 당장 도깨비가 나타나진 않을 것이란 생각에, 또 엄마아빠가 지켜주리란 기대감에 도깨비 두려움에 무뎌졌지만 보이지 않는 도깨비는 여전히 무섭다. 시간에 익숙해지는 이런 상황은 계속 어린아이의 상태로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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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어른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어른은 누군가 나를 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어른은 나와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려면 나를 그리고 세상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와 세상이 두렵지 않다. 나아가 나를 그리고 세상을 바꿀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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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과연 우리는 어른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순간 반성과 성찰이 시작된다. 즉 인문학의 문고리를 잡은 것이다.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면 인문학에 입문한다. 그러나 기대와는 전혀 다를 것이다. 그곳은 도서관 같은 지식의 숲이 아닌 야생 같은 거친 숲이다. 다시 문밖으로 나오면 않된다. 어떻해든 그 숲에 남아 생존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정도 적응되고 익숙해지면 스스로 살아갈 자신감이 생긴다. 그것이 바로 인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진짜 힘이다. 그 힘은 자랑이나 입담의 힘이 아닌 생존의 힘이다.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도깨비에 대한 두려움이 극복되진 않는다. 하지만 세상은 더이상 무섭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