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오늘 아침에는 '독사'라는 단어가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다. 왠지 글쓰기라는 애도의 절차를 기다리듯해서 어쩔수 없이 핸드폰을 집어 든다. 누차 밝혔지만 나는 글을 써야 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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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독사는 뱀이 아니라 doxa라는 그리스어로 개인적 의견을 의미한다. 보통 억견으로 번역된다. 억견이란 말그대로 억지스런 의견을 말한다. 여기서 '억지스럽다'는 말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논증절차를 거치지 않고 삿된 경험과 인식에 근거한다는 의미다. 이런 의견은 유독 고집스럽다. 그래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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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이를 체질적으로 싫어했는지, 만나는 사람마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다. 델피 신전에 쓰여 있던 이 유명한 문구의 진짜 의미는 "인간의 한계를 알라"인데, 소크라테스는 이를 개인에 비유해 "너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라"로 인용한다. 우리가 종종 속담 혹은 맑스나 공자 등 유명인의 말을 인용해 주장에 힘을 실듯, 소크리테스도 그리한 것인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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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는 것을 알라"라는 말은 "독사"를 겨냥한다. 쉽게말해 "고집좀 그만부려, 사실 너도 잘 모르잖아"라고 나무라는 것이다. 이건 정말 사실이다. 이 말을 들으면 늘 뜨끔하다. 그래서 나는 선제적으로 "전 잘 몰라요"라며 설레발을 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인들처럼 상대를 죽일지도 모를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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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던 스승의 죽음에 좌절한 플라톤은 이 말을 가슴에 새긴다. 그는 이론적 지혜(에피스테메)와 실천적 지혜(프로네시스), 철학적 지혜(소피아)를 강조하는데 모두 "모름"을 근거에 둔 반성적 성찰이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도 관조와 실천, 제작이라는 말로 스승의 가르침을 이어간다. 후일 이들의 의견은 기독교철학의 근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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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도 다르지 않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소승의 아라한에게 깨달음이란 "모른다"는 사실 그 자체다. 대중불교의 상징인 "보살"은 보리살타의 축약어로 그 뜻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둘은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아라한은 결과를 보살은 과정을 중시한다. 돈오점수는 갑자기 깨닫고 점차 수행한다는 말인데, 깨달음을 얻어도 이를 닦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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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의 공자도 "모름"을 자랑으로 여긴다.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세요!라는 말에 그는 나는 "묻기를 좋아한다(好問)"이라 대답하는데, 모른다는 사실을 알기에 묻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의 애제자 안연도 스승의 질문에 "남이 알아주길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 부족함을 자각하자"고 대답하는데, 이 말을 들은 공자는 크게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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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는 사실을 알라"를 좀 더 유식하게 말하면 "무지의 지"이다. 이 말은 최후의 스콜라 철학자 쿠자누스의 의견이다. 데카르트는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루소를 고독을, 흄은 인과율 비판을, 칸트는 판단력을, 아렌트는 사유를 주장했다. 모두 델피 신전의 인용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근본에 모름의 자각이 있어야만 위와 같은 주장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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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오점수, 나는 이 가르침을 일찍이 알았는데 실천이 무척이나 어렵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여기저기 말하며 스스로를 다짐하는데 그래도 쉽지 않다. 오늘 독사가 떠오른 것도 우연이 아니다. 나는 늘 "독사가 왜 나쁘지" 의심했는데 이런 대비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쉬운 이 대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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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아는 것에 대한 인식이다. 즉 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반면 지혜는 좀 어감이 다르다. 특히 "혜慧"자에는 손으로 심장을 잡고 있는 모습이 있는데, 뭔가 의미심장하다. "지智"자도 지식의 "지知"자와 달리 "날일"자가 붙어있다. 뭔가 과정적 측면이 강조된다. 모름을 알기에 과정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플라톤의 과정적 측면에 유독 지혜라는 번역어가 붙는다. 동양은 지식과 지혜를 크게 구분하지 않았다는데, 공자가 모름을 근본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아마 지식이 지혜적 의미로 쓰이지 않았을까 싶다. 즉 지혜는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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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사는데 정말 유익한 지혜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 "묻기를 좋아한다"는 말은 모름 그 자체를 가치있게 만드는 세련된 표현이다. 우리 사는 세상은 독사들이 난무한다. 여기서 독사는 뱀이 아니지만 왠지 뱀이 우글거리는 느낌이다. 내 안에도 그렇다. 이걸 자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