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운의 <역사의 역습>을 읽기 시작했다. 수학자가 쓴 역사책이라 흥미로워 구입했는데, 역시나 좋다. 46p에 핵무기를 가진 약소국을 언급하며 '독약을 바른 토끼와 늑대'라는 비유를 하는데... 이 멋진 표현이 나의 의지를 바꾼다. 읽기를 멈추고 글을 쓰도록.
-
과거에는 강대국이 약소국을 마구 유린했다. 우리도 그런 아픈 기억이 있다. 하지만 핵무기가 생긴 지금은 그게 안된다. 잘못하면 그러다 스스로도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늑대가 독약바른 토끼를 먹고 죽을 수 있듯이. 몇몇의 약소국은 이걸 알고 핵무기를 개발했다. 그래야 생존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내려놓는 순간 그 체제는 끝난다. 이라크처럼. 리비아처럼.
-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도 능사가 아니란 사실을 안다. 핵의 방사능 때문에 스스로 자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이다. 여기서 방사능은 진짜 방사능이 아니라 경제 제재 같은 국제적 고립을 의미한다. "고립되면 죽는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안다. 생존하려고 가진 핵이 장기적으로 볼때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
그래서 김정은은 핵을 포기한다. 우리는 그 현실을 목도한다. 물론 이 책이 나온 시점이 4월초라 저자는 미처 수정을 못했다. 그래서 김정은을 비난한다. 불과 한달만에... 지금 얼마나 땅을 치며 후회할까... 그렇다고 이 책 전부가 폄하되어선 안된다. 수학자답게 문장 하나하나가 정교하고 정확하다. 한편으론 한반도에 평화가 오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것이란 주장을 한다. 나는 이걸로 충분하다고 본다.
-
김정은과 달리 세상은 여전히 '만국 대 만국의 투쟁' 상태다. 아마 이 상황은 새로운 리바이어던을 요구할 것이고, 그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희망이 있다면 가라타니 고진의 주장처럼 평화헌법에 의한 무력 방기, 즉 모든 국가가 무력을 UN에 양도하는 방식이 있다. 홉스의 사회계약과 다를 바 없다. 과연 가능할까. 홉스보다 두발 더 나아간 루소의 사회계약으로 혁명한지가 200년도 넘었는데....
-
두번째 방법은 정신혁명이다. 아직 초반이지만 제2의 추축시대 운운하는 것을 보아 대략 느낌이 저자는 정신혁명을 주장하는 것 같다. 최근의 흐름도 그렇다. 공자와 맹자, 소크라테스가 그런 주장을 했고, 주자와 데카르트, 칸트도 그런 주장을 했다. 최근엔 아렌트가 그런 주장을 했다. 나는 이 세련된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배움을 청하지만 별로 믿지는 않는다. 홉스의 주장보다 더 이상적인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
나는 유일한 해결책은 '종교'라고 본다. 물론 그 종교가 어떤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새로운 종교가 등장해 새로운 사회계약과 새로운 정신혁명을 주장할 것이라 본다. 그렇게 이 종교는 홉스와 아렌트의 관점을 포용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인공지능일까? 블록체인일까? 아니면 기존 종교의 융합일까...
-
<역사의 역습>은 정말 탁월한 제목이다. 과거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라는 책이 있었고, <반전의 시대>(이병한)라는 나이쓰한 제목도 있었다. 나는 '전환'이나 '반전'보다 '역습'이 더 적절한 용어 선택이란 생각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때 역사가보다 수학자가 더 멋진 용어를 선택했다. 때론 이럴때가 있다.
-
게다가 김용운은 1927년생 지금 90세다. 이 책은 2018년에 나왔으니 90세 무렵에 나온 책이다. 어떤 노철학자가 인간의 생산적인 활동은 70대까지라고 했다는데... 이 책을 보면서 그 말이 일반적 현상일수는 있어도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혹은 철학과 수학의 차이일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