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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Jul 15. 2017

안드로포스와 후마니타스

안드로포스. 두발 보행하는, 그래서 땅만이 아니라 하늘도 볼 수 있는, 즉 어제 보다 나은 내일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최초의 인간을 지칭하는 희랍말이다. 그런에 이 말은 후마니타스가 등장하며 야만인이 되었다. 후마니타스는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등 인문주의를 의미하는 라틴어이다. 로마인답게 후마니타스는 문명인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문명인이 자신과 다른 존재를 야만인으로 여긴다. 로마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인들의 태도다.

후마니타스의 개념을 도입한 르네상스 인들은 다른 문명인 혹은 과거 문명 이전의 자신들을 안드로포스라 불렀다. 후마니타스가 인문적 인간이라면 안드로포스는 종교적 인간에 해당된다. 그렇담 본래 안드로포스가 우위에 있었는데 <그라티우스의 교령집>에 의한 중세해석자혁명에 이은 스콜라 철학에 의해 신학과 인간학이 분리되고, 상하관계가 역전되면서 안드로포스는 후마니타스의 관찰 대상으로 전락했다. 인문적 인간이 신적 인간을 관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본래 신은 동물이었다. 구석기부터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도 그랬다. 고대 그리스, 로마는 인간이 신을 닮았다고 상상했고, 이 태도가 유일신 유대교를 만나 예수교(그리스도교)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중세까지 인간은 신을 숭배했다. 중세가 지나 근대에 들어서면서 역전이 시작되었고, 이제 인간은 신이 아닌 인간 자신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영웅이라는 미명, 천재라는 환상을 뒤집어쓰고 종교 없는 종교혁명을 일으켰다. 그렇게 거룩한 신은 세속적 국가로 표상되었고, 이런 관점이 종교적 자유+표현의 자유에 바람을 타고 전세계에 폭력적으로 관철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fake다. 뒤에 감춰진 진실은 '자유'가 아닌 '소유'다. 소유를 지키고 늘리기 위한 꼼수. 자유를 떡밥으로 던져놓고 뒤로 소유를 챙기고 만끽한다. 처음에 유럽의 노예를 약탈했고, 그리고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를 그리고 유라시아를 유린했다. 주체적 인간 후마니타스의 만행이다. 내일이 없이 오늘과 현재만을 즐기는 쾌락적 인간이 미래를 꿈꾸는 고귀한 인간, 안드로포스를 약탈했고 여전히 진행중이다. 후마니타스라는 환상이 걷힐때까지 계속 진행되겠지. 그러나 위기는 시작되었다. 기계신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문자의 확대, 인터넷의 등장으로 개종은 점차 가속도가 붙었다.

신의 계보를 살펴보면 이렇다. 동물에서 동물 닮은 인간으로, 이는 고대 그리스에서 신을 닮은 인간, 세속화된 인간으로 전환된다. 중세에는 다시 무형의 신이 중세 말기에 이르러 신을 닮은 인간이 숭배된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며 인문주의가 등장하고 집단 종교가 아닌 내면의 종교로 전환되자, 이제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된다. 신적인 인간은 영웅 혹은 천재로 대접받고 호의호식한다.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 인간은 자신을 닮은 신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것이 어느 정도 괘도에 오르자 그것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이라는 신을.

종교를 닮은 과학이 스스로 종교가 되고, 이제는 절대적 위치를 노리고 있다. 종교+표현의 자유는 과학 앞에서 말살되는 실정이랄까. 과학을 아는 후마니타스는 과학을 모르는 안드로포스를 타박하고 개종을 독려한다. 만약 거절하고 저항하면 사냥된다. 그렇게 자유가 소유에 의해 조금씩 조금씩 말살되는 상황이랄까.

인공지능은 여전히 미흡하고 미완성 상태다. 어쩌면 이것이 핵심일 수도 있다. 완성되지 않았기에 아직 미숙하기에 신이 될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부모님보다 아이에게 더 신경을 쓰듯, 인공지능을 양육하기 위해 숭배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 너는 도데체 어떤 존재인가. 누구를 무엇을 숭배하는 것인가. 너를 닮은 무언가를 양육하고 기른다는 것은 곧 너 자신을 숭배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결국 너 자신을 스스로 온전히 소유하는 것이 목적인가. 자유와 소유 이 둘은 하나의 의미였던가... 동물과 같은 필멸이 아닌 신과 같은 영생의 소유. 소유를 지키기 위한 이 시대의 성스런 경전, 민법(로마법, 교회법, 혁명법)을 수호하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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