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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Jul 16. 2017

펜은 칼보다 강하다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펜은 칼보다 강하다' 정말 흔하디 흔한 상투적인 말이다. 중학교 시절 이 문장을 보거나 읽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또한 이 말을 믿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순수하고 순진한 중학생이야 믿을지 모르겠지만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반신반의하다가 결국 "펜이 칼보다 강하다니, 풋!"이라며 비웃는 사람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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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비웃을 일이 아니다. 실제로 펜은 칼보다 강하니까. 물리적으로도 그렇다. 펜의 질료는 철이라 칼과 유사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펜은 철이 아니라 탄소, 바로 연필이다. 한번 쓰면 고정되는 것이 아닌, 쓰고 지우고가 가능한. 즉 자신이 내뱉은 말을 반성하고,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는 연필 말이다. 나는 그 연필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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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의 왕이 누구인가. 바로 단단함의 대명사 다이아몬드(금강석) 아닌가. <금강경>이라는 경전이 있을 정도니. 그 강함은 물질을 넘어 정신적 힘까지 느껴진다. 다이아몬드가 형성되는 과정을 알면 그 위용에 한 번 더 놀란다. 거대한 아이스크림 콘을 상상해 보자. 아이스크림 콘은 차갑고 달콤하고 부드럽지만, 이 콘은 정반대다. 뜨겁고, 고통스럽고 무겁다. 이 콘의 길이는 무려 130km나 되며 가로폭도 이에 상응한다. 거대한 이 콘의 아래쪽, 뾰족한 끝을 보자. 거대한 콘의 압력에 의해 섭씨 3000도가 훨씬 윗도는 열기가 느껴진다. 그 뜨거운 열기를 헤치면 작은 다이아몬드가 보인다. 이 작고 투명한 다이아몬드가 엄청난 암석과 열기를 짊어지고도 의연한 모습으로 반짝, 윙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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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의 가장 깊은 곳의 암석 바로 아래에는 용암(마그마)이 흐른다. 지각변동이 일어나 멘틀이 몸을 비틀고, 용트름을 하면 이 용암이 밖으로 분출된다. 아주 가끔 이 거대한 힘에 휩쓸려 다이아몬드가 지각으로 배출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 귀한걸 볼 자격이 생긴다. 먼저 발견한 사람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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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는 비싸다. 왜냐면 희귀하기 때문이다. 이 희귀한 것을 다시 재가공해서 더욱 희귀하게 만든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가장 단단한 물질이니 가장 단단한 물질인 다이아몬드로 가공해야 한다. 다이아몬드와 다이아몬드가 부딪쳐 우리가 보는 영롱한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진다. 그걸 우리는 아주 귀한날, 귀한 시간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에게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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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다이아몬드가 바로 펜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칼도 강하다. 적절한 코크스와 결합해 매로 단련되는, 불과 물을 들락이며 달구고 식히는 지난한 단조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강한 칼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칼은 가볍고 날렵하면서 강하다. 보는 즉시 위협적이다. 그래서 칼은 항상 칼집이 있어야 한다. 칼집은 칼을 보호하는 것만이 아니라 동시에 보는 이를 배려한다. 반면 다이아몬드 연필은 펜집이 필요없다. 그냥 드러나있다. 가볍고 날렵하기 보다는 무겁고 육중함을 드러낸채. 거대한 지식, 상상하기도 어려운 거대함을 지혜를 담고도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투명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반짝, 윙크를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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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펜촉이 춤을 추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칼의 춤보다 훨씬 위협적이다. 살이 아닌 정신을 베어버리기 때문이다. 칼날이야 열심히 베어야 수십명, 수백명이겠지만, 펜촉은 수만명, 수십만명을 벨 수 있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너무 예리해 피조차 튀지 않는다. 혁명은 펜촉에서 시작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니 혁명을 넘어 감동과 위안까지 준다. 때론 열정적으로 때론 조용하게 사람들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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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처럼 강한 펜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먼저 읽고 써야 한다. 읽으며 무거운 힘을 느끼고, 이 짐을 머리에 이고,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무겁게 써야 한다. 이 무거운 과정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마치 역도선수가 무거운 역기를 들고 내려놓듯이. 인공적인 의지만으로 부족하다. 자연적인 힘이 도와주어야 한다. 즉, 의지를 넘어 즐김까지 이르러야 한다. 공부를 어떻게 의지로만 할 수 있단 말인가. 의지로만 만들어진 공부는 칼끝에 그칠 것이다. 게다가 다이아몬드 펜은 스스로 드러나지 않는다. 용암의 용트림 같은 거대한 자연의 흐름을 타야 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세상에 드러나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이를 발견한 사람은 운이 좋다. 어쩌면 광물 다이아몬드를 발견한것보다 훨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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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펜이 칼보다 강하다'라는 말이 어느정도 감이 올 것이다. 우리는 이런 펜으로 쓰여진 글을 찾아야 한다. 글과 경험의 무게가 늘어날수록, 혹시 운이 좋다면 이 과정이 축적되어 자기 자신이 이런 펜이 될수도 있다. 하지만 긴 시간의 고통의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130km, 3000도 넘는 그런 과정말이다. 그러려면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습관적으로 즐겨야 가능하다. 그렇게 스스로 투명하면서 가장 단단한 다이아몬드 펜끝이 되어 영롱한 춤을 출 수만 있다면... 나아가 다른 다이아몬드를 만나 부딪치고 경쟁하며 더불어 춤을 출 수 있다면... 더이상 무엇을 바랄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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