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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Jul 11. 2017

거울

나르키소스는 물 속에 비친 자신을 사랑하게 되어 자살하게 된 신화적 존재다. '자기애'라는 신경증, 나르시시즘이라는 표현도 이 신화에 근거한다. 나르키소스는 물 속에 비친 모습을 왜 자기라고 확신했을까, 혹은 왜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거울이 없던 탓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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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은 말이 없다. 그냥 상대를 반사해 돌려줄 뿐이다. '나'는 거울을 통해 '나'를 본다. 거울은 나를 반사하는 장치인 것이다. 그 거울에 비친 나는 누구일까? 나일까? 내가 아닐까? 나면서도 내가 아닌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 거울을 보면 여러가지 상념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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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메타자기인식을 하는 존재다. 이 말은 좀 어렵다. 풀어보자. 메타는 '뒤'다. 즉 메타자기인식이란 '뒤에서 나를 본다'이다. 인간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인식 가능한 존재, 그래서 그것이 맞는지 틀린지 아는 존재란 의미다. 만약 맞다면 잘한 것이고, 틀리다면... 잘잘못의 판단이 어렵다... 칸트라면 정언명령에 어긋낫다며 나쁜 행동이라 타박할 것이다. 반면 거대한 목적에 꼭 필요하다면 성전이라 칭찬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에서 자신의지에 반한 행동을 '악'이라 했다는 점에서 그냥 나쁜 것이라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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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본다는 것'은 사후적인 판단이다. 이미 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뒤에서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반성이 가능하고 성찰이 용인된다. 그런데 앞에서 보는 것은 즉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반성과 성찰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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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은 늘 내 앞에 있다. 거기에 비친 내 모습은 나이거나 내가 아니다. 어떤 부분은 확실히 나인데, 어떤 부분은 확실히 내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울을 100% 믿지 않는다. 그럼 어느 정도 믿을까? 신구 가즈시게라는 일본 학자는 라깡이 황금비를 말했다고 하는데, 60%를 믿는 것일까... 여전히 정신분석에서 6:4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나와 너의 관계비율인지, 나와 거울 속 나의 관계비율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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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울을 보며 늘 자신을 타박한다. 왜 이렇게 못생겼지? 머리는 벗겨지고, 코도 비뚤어졌고, 피부도 거칠다. 뭐 하나 제대로 봐줄게 없다. 때론 내면의 추악함도 보인다. 술에 취한 날 거울을 보면, 거울을 깨고 싶다. 아니 거울에 비친 나를 지우거나 일그러뜨리고 싶다. 라깡의 에메가 여배우를 죽이려 했듯이. 나르키소스의 자기애, 나르시시즘 따위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뭐 그런 느낌이다. 그런데 불만이 있다는 것은 열망이 있다는 의미다. 정우성이 되고 싶은 열망, 나르키소스가 되고 싶은 열망 말이다. 거울 속에 남겨진 '40%의 나 아닌 나'는 현실이 아닌 미래에 투영된,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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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울을 보며 나의 이상적인 미래를 그린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되고 싶은 어떤 모습을 기대한다. 그런데 거울은 그런 모습을 비추지 않고, 현재의 나의 모습을 비춘다. 과거가 중첩되어 현재가 된 나의 모습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거기에 미래는 없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거울 속에서 나의 미래를 찾는다. 완벽한 나, 언젠가 아무런 불만 없는 나를 만나기를 고대하며 언젠가 나르키소스처럼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자살 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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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꿈은 '주체성=독립'의 꿈이다. 주체성을 가진 존재는 앞에서 보는 나의 열망이다. 그렇다면 뒤에서 보는 나의 성찰은 정체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이 정체성은 내 뒤에서 나를 보는 나이다. 혹은 거울 뒤에서 거울을 보는 나를 보는 누군가이다. 혹은 사회이다. 이렇게 나는 거울을 중심에 두고, '내 뒤의 나'와 내 앞의 '거울 이미지', '거울 뒤의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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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 어떤 생각을 거울에 비유한 적이 있다. 이야기를 듣던 어떤 친구가 '괜찮은데~'라고 하며, 약간 조롱섞인 말투로 상투적인 흔한 비유라고 말했다. 다소 빈정상했고 창피했다. 이 후 흔한 거울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지금 그때를 떠올리며 그 친구에게 돌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거울은 흔하지만 상투적인 것은 아니야, 거울을 잃어버리면 우린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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