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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Sep 12. 2018

신과 인간

오늘 오전에는 이상하게 세번의 충격을 받았다. 근래 들어 가장 효율적으로 보낸 시간이다. 첫번째 충격은 신과 인간의 관계이다. 요즘 강유원의 <문학 고전 강의>를 읽고 있는데, 강유원 선생님의 고전 문학의 선정과 배치가 너무나 흥미롭고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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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는 '길가메쉬 - 오디세우스 - 욥기' 서사시 3편, 그리고 '오레스테스 - 오이디푸스 - 메데이아' 비극 3편, '맥베스-오셀로' 셰익스피어의 드라마 거쳐, '팡세 - 파우스트 - 모비 딕'으로 마무리된다. 이 고전문학은 모두 신과 인간의 관계를 토대로 하는데, 서사시는 신에게 복종하는 인간, 비극은 신(영웅)이 되고 싶어하는 인간, 드라마는 신을 배제하고 성격과 역할에 따른 인간 관계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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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흐름은 <팡세>, <파우스트>, <모비딕>이 묘사하는 신과 인간의 관계와 묘한 연결을 이루는데 파스칼은 서사시처럼 '신에 복종하는 인간'을, 괴테는 비극처럼 '신이 되고싶은 인간'을, 멜빌은 드라마처럼 '신과 별개의 인간'을 다룬다. 즉, <팡세>는 이집트와 중세의 인간을, <파우스트>는 고대그리스와 르네상스적 인간, <모비딕>은 로마와 현대적 인간을 묘사한다. 신과 인간의 관계가 패턴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참으로 놀랍고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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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충격은 시립미술관에서 본 전시이다. 나는 현대예술을 다소 부정적으로 보는데, 그 이유는 스토리의 부재 때문이다. 깊은 사회적, 철학적 통찰이 없이 자극적 표현과 오락처럼 구성된 미디어 작품들을 보면서 실망을 했다. 그 와중에 발견한 희망은 '디자인'의 가능성이다. 전시를 보면서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가 무너짐을 느꼈는데, 디자이너가 현대 미술가로서 약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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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가능하도록 만들려면 두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첫번째는 디자이너들 특유의 종속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이다. 먼저 디자이너는 주체적 독립성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자신들을 낳아준 부모를 이해함으로서 가능한다. 쉽게 말하면 예술이 흘러온 역사적 맥락을 읽어야 한다. 두번째는 현대 미술에 대한 이해이다. 이는 소통 자체를 이해해야 하는데 이 또한 미술사를 통해 읽을 수 있다. 만약 이 두가지 난제를 극복한다면 디자이너들은 미술가보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 기술적 자질이 있기에 가능성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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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충격은 이성민 선생님의 페북글을 보고서이다. 앞서 고전 문학의 흐름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현대와 원시시대와 로마를 겹쳐서 보는데, 세 시대를 겹쳤을때 공통점이 무엇인지 보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술의 오랜 테제 '재현-모방'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는 '실재와 허상', '참과 거짓'이라는 모순적 상황으로 논의된다. 이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따라 변주되는데, 선생님의 글을 통해 그 변주의 흐름을 다소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을 방금전 선생님의 글을 공유하면서 끄적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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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오늘은 오랜만에 머리가 맑다. 잠을 푹 잔 덕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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