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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Oct 17. 2018

경험과 콘텐츠 그리고 교육

"당신의 경험은 콘텐츠가 됩니다" 간혹 이런 문구를 발견하곤 한다. 경험과 콘텐츠가 동일어로 사용되는 경우다. 물론 둘의 경계가 모호하고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과 콘텐츠는 엄연히 다르다. 포도와 포도주가 다르듯이. 혹은 읽기와 쓰기가 다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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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일종의 감각기억이다. 그것은 어찌어찌 주어진 것이며 누군가와 공유한 것이다. 내가 어떤 시공간에 있음으로서 할 수 밖에 없는, 다소 수동적인 측면이 있다. 즉,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 그래서 누구나 경험을 말할 수 있지만 공유할 수 없다. 그 상황에 놓여보지 않으면 경험은 공유가 불가능하고, 있어도 불가능하다. 같은 경험이라도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단순한 공감만이 있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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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콘텐츠는 추론된 사고다. 콘텐츠는 온전히 내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가질 수 없다. 그것은 스스로 찾은 것이며 홀로 벼른 것이다. 절차탁마(切磋琢磨), 능동적으로 자르고 쓸고 쪼고 갈아서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콘텐츠라면 그것은 빛이 나지 않는다. 오래가지 않는다. 진짜 콘텐츠는 설령 먼지가 쌓여 빛이 감춰지더라도 오래간다. 먼지가 걷어질때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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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어망전(得魚忘筌), 장자는 고기를 잡았으면 그물은 잊어도 된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물은 경험이고 물고기가 콘텐츠다. 중요한 것은 물고기다. 물고기는 여러 방식으로 요리가 가능하다. 만약 당신이 콘텐츠를 갖고 있다면 말과 글 혹은 이미지를 활용해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할 수 있기에 시공간을 초월해 존재한다. 그것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공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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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경험을 콘텐츠로 활용하라고 말한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다. 경험을 콘텐츠로 활용하려면 경험에 사유를 적절하게 배합해야 한다. 정신적 노력만이 아니라 육체적 노력도 필요하다. 땀을 넣어야 사유는 발효된다. 포도알맹이가 모여 고통의 시간이 흘러야 포도주가 되듯이 경험이 콘텐츠가 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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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관계도 마찬가지다. 읽기를 내 언어로 쓸때 비로소 가치가 생산된다. 쓰기는 읽기를 딛고 일어나지만, 쓰고나면 읽기는 버려진다. 하지만 물고기를 요리해 먹고나면 새로운 물고기를 잡아야 하듯. 또 쓰려면 새로운 읽기가 필요하다. 이 과정이 중첩되어 쌓인 땅에 콘텐츠라는 싹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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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오늘 멋진 지인과 만나 교육에 대해 논의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각자의 영역에서 경험을 콘텐츠로 바꾸는 오랜 노력을 해왔다. 드디어 콘텐츠를 만난 것이다. 진짜는 진짜를 알아본다. 우리는 바로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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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을 만나면 어색하다. 경험을 존중하지만 그것이 교육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콘텐츠와 콘텐츠가 만나면 즐겁다. 함께 공유함으로써 상호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콘텐츠를 만나면 두근거린다. 현재가 아닌 미래를 상상할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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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경험이라는 말은 어색하다. 교육은 단순한 경험이 아니다. 교육은 성장을 도모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반드시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또한 교육은 콘텐츠를 주조하는 공장이다. 이 공장의 재료는 사람이다. 선생과 학생이라는. 선생은 콘텐츠가 있어야 하고, 학생은 의지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둘이 만나 경험을 콘텐츠로 발효시키는 곳. 그곳이 바로 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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