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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Jul 23. 2017

중국에서 온 18살 청년

오늘 중국에서 온 18살 청년을 만났다. 2살에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건너갔다니 국적이 한국인지 중국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대학은 한국에서 다닐 생각인가 보다. 이미 외국인 전형으로 수시전형을 지원했고 전공은 오로지 사학과만 희망한단다. "정수일 아니면 김호동 선생님 아래서 공부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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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년은 도발적인 역사학자 이병한 박사가 보낸 사자다. 이 박사는 이 청년이 한국에서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꼼꼼하게 지령을 내린듯 싶다. 이 청년은 이 박사와 인연이 있는 각계의 사람들을 만나며 식견을 넓혀가고 있었다. 영광이었다. 이런 청년을 알현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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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미술, 철학, 고전 등 분야를 초월한 대화가 거듭될수록 나의 지식이 밀리고 있음을 직감했다. 아는 것이 힘이라면 이 친구는 이미 골리앗이었다. 게다가 청년은 중요한 대화가 나오면 수첩을 꺼내 적는다. 잠깐 구경했다. 흘끔 보았는데 중국어, 라틴어, 희랍어, 한국어로 된 메모들이 보인다. 눈치를 보니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도 더듬더듬 읽는다. 시립미술관을 한바퀴 돌았는데, 프랑스어로 된 설명문을 더듬더듬 읽으며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아직은 더듬더듬 공부중인가 보다. 무려 8개국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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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사와 이 청년은 인연이 깊다. 학교 공부는 진작에 때려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즐거운 공부'만 하던 이 청년은 "어느날 이 박사의 <반전의 시대>을 읽고 생각이 반전되었다"고 말한다. 약 8개국어를 구사하는 청년답게 약 9개국어로 역사를 읽고 기록하는 이 박사에게 끌린 것이다. 이 박사는 이 청년을 미래의 삼봉이라며 나에게 보냈다. 아니 자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청년이 책을 읽고 보낸 감동의 메일을 보여주었으니. 나는 이 청년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무엇이 그토록 당신을 감동시켰냐고. 청년왈 "부강이 아니라 건강이요"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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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년은 이 세상이 '소인'들의 세상이라고 말한다. 사적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나도 사람들이 근시안적 태도에 빠져있다고 거들었다. 자신만 보이고 지금만 중요한, 한 문명에 갇히고, 반대파에게 규정된, 과거와 미래를 상실한 그래서 희망을 잃어버리고 여유가 없고, 입가에 미소가 사라진 세상이라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10년 아니 30년 뒤를 상상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젊은 청년의 통탄이 애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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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비탄(悲歎)으로 들리진 않았다. 아직 이 친구에게는 패기가 있었다. 우리는 2016년의 촛불을 보았다. 나는 이 촛불이 바로 '동학=개벽'의 현전이라고 말했다. 이제 개방의 시대, 개발과 개혁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그러니 당신같은 청년들이, 순종보다는 자기 스스로 '역사를 디자인'하는 청년들이 세상을 이끌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청년들이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친구가 없단다. ㅠ


ps. 다행이 이 친구는 중간중간 <논어>와 <장자>를 인용하는걸 보아 선비의 기질이 있더라고요. 사람을 찌르는 흉흉함은 없어 보였어요. 다만 '오만'이라는 함정에 빠질까 걱정이 되서, 큰 꿈만으로는 오만을 덮을수 없을것 같아,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나는 큰 꿈으로 나의 오만을 누른다. 너는 이미 너무 커서 꿈으론 부족하다. 세속의 꿈도 금방 이룰거 같아 걱정이다. 그러니 죽음 이후의 삶까지 고려해야 한다. 내세를 위해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라고 감히 조언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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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탁월 18세 청년 만난 자랑을 하고 나서, 어제의 대화를 하나 복기하면, 주로 평화 문제를 다루었는데, 그 친구는 남북통일을 위해 한국 헌법의 영토 조항을 수정하고 남북한이 서로의 주권을 인정한 협의체가 생기면 좋겠다는 바램을 내놓았고, 나는 그보다 먼저 중국, 러시어, 남북한, 베트남, 일본을 아우르는 극동 연방이 있어 그 안에서 논의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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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며 러시아의 가장 취약점을 말하려는데... 맙소사! 그 청년이 나즈막히 '부동항'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알았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반문했더니, '블라디보스톡도 일년중 상당기간 얼어있죠'라고 말한다. 나는 기가 팍 죽었고 대화는 이어졌다. 러시아가 부산항을 확보하고 우리는 가스라인를 확보하면 엄청난 윈윈이 될 것이고, 중국은 일대일로의 마침표를 찍을수 있을 것이라... 등 하나마나한 말을 횡설수설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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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개혁개방하면 스위스에서 공부한 김정은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스위스가 어떤 나라인가. 유럽 최대 빈국이 19세기 근 반백년도 지나지 않아 유럽 최대 부국이 되지 않았던가. 그리고 오늘 아침 호주가 북한의 희토류 생산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어쩌면 미래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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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화를 낭랑 18세와 나누었다니... 마치 꿈을 꾼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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