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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Nov 15. 2018

차이에 대하여

얼마전 선배와 커피에 대해 나누었던 가벼운 대화가 자꾸 생각난다. "저는 커피맛을 잘 모르겠어요. 다 똑같은 거 같아요"라고 말했더니, 선배는 "그렇게 말하면 안돼. 사람들이 '신문은 다 거기서 거기야'라고 말하면 신문쟁이들이 얼마나 섭섭하겠어"라고 응수했다. 나는 크게 깨달았다. 커피맛의 차이를 모르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는 것을. 나 또한 디자인 맛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을 얼마나 원망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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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영어로 taste다. 이 말은 취미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취미는 영어로 hobby다. 이성민 선생님은 <철학하는 날들>에서 이 두 단어의 미묘한 차이를 지적하는데, hobby는 다소 즐겁고 재밌는 취미를, taste는 판단 능력이 강조된 취미를 말한다. 맛을 느낀다는 것은 판단력을 갖는 것이며, 판단력은 차이를 느끼는 힘이다. 차이를 알면 즐거움과 재미가 있다. 이렇듯 한국말 '취미'에 모두 내포된 즐거움과 차이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즉 취미는 "차이를 판단할 수 있기에 즐겁고 재밌다"는 문장을 함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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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김건우 선생님이 쓰신 하버마스와 루만에 대한 글을 읽었다. 화장실 앞에 서서 주르륵 읽었는데, 이상하게도 항상 루만에 대한 글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뭔가 나와 궁합이 맞는다고 할까? 물론 나는 하버마스도 루만도 잘 모른다. 그럼에도 김 선생님이 논하는 두 학자의 차이가 극명하게 다가왔다. 차이가 느껴지니 글이 재밌었고 결국 공유했다. 덤으로 김 선생님의 정성스런 답글도 얻었다. 오늘은 출발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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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알쓸신잡'을 같이 보던 와이프가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항상 마음에 품고 있는 단어가 있어요?" 나는 그런 단어가 없는데도 대뜸 지어냈다. "응, 어제 보다 나은 나"라고 말했다. 그리고 반문했다. '나는 어제 보다 나은 날들을 살고 있을까?' ................................................................................................

요즘은 읽기가 게으르다. 지금처럼 줄창 쓰기로 나날을 보낸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제 보다 나은 날은 커녕 급격히 쇠퇴하는 상황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소모하는 것이기에 읽기 없는 쓰기는 참으로 허망하다. 죽어라 읽어도 현상유지가 될까 하는 판에 죽어라 쓰고 있는 상황이라니. 나는 소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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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간간히 읽고 있는 책이 <작은 마을 디자인하기>이다. 두 건축가의 편지인데 주로 건축과 커뮤니티 문제를 다룬다. 이성민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책이라 귀하게 읽고 있는데... 사실 별 감흥은 없다. 좀 뻔한 내용이랄까.... 그런데 이 책을 읽은 이성민 선생님의 글은 정말 재밌다. 어떤 차이를 느끼셨기 때문이다. 나는 그 차이를 읽으며 감탄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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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맛 처럼 무엇이든 차이를 모르면 재미가 없다. 즐거움도 없고 의미도 없고 아름다움은 더더욱 없다. 하지만 차이를 모르는 것을 숨겨선 안된다. 공자가 말했듯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 아는 것(不知爲不知是知也)'이다. 이럴 때는 차이를 아는 귀인을 찾아 곁에 두면 된다. 그러면 차이에 대해 듣는 즐거움이나마 얻을 수 있다. 차이를 알아가게 될때 비로소 사람은 성장하고 성숙한다. '어제보다 나은 나'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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