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과도한 전문화를 우려한다. 디자인분야는 이미 현실과 상당히 괴리된 상태다. 좁디좁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알콩달콩 잘 살면 좋지만 사실상 그렇지도 못하다. 지리멸렬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현실이 절망적일 뿐이다. 그렇다고 오랜기간 경험과 노력으로 쌓아온 노력을 버릴수도 없는 노릇이니. 무엇보다 큰 문제는 지나친 전문화를 알아주지 못하는 사회를 원망해야만 하는 자신을 탓해야 한다는 점이다. 열정과 노력을 탓해야 한다니... 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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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지만 우리는 지하철이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지 모른다. 인터넷도 인공지능도 수많은 기술이 우리를 놀래키며 편리를 제공하지만 우리는 그 원리를 모른다. 그냥 '전문가들이 알아서들 잘 하겠지'하는 나이브한 생각을 할 뿐이다. 이를 전문가들도 잘 안다. 그렇게 지식은 기술은 그들의 독점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시류를 잘타거나 운이 좋다면 전문성을 통해 권위와 권력을 손에 쥘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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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는 이런 흐름을 존중한다. 지식의 전문화는 지식의 소수 독점, 영웅적 지식인을 만들어 낸다. 반대로 다수는 지식에 소외되고 종속된다. 신민적 대중이 탄생한다. 이 방향이 지속된다면 신분이 생기고 계층이 계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구체제가 다시 도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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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사회도 비슷하게 시작되었다. 한제국, 로마제국의 멸망은 북방 민족의 침입으로 시작된다. 문맹률이 높아지고 지식의 독점이 이루어진다. 당시 한과 로마 제국도 지식의 전문화가 높았을까? 지식의 양극화가 심했을까? 이런 의문이 든다. 아무튼 중세는 문맹률의 급격한 증가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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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는 디자인된다>에서 우리 시대와 가장 닮은 시대로 로마 말기를 꼽았다. 이 시대는 중세 초기이기도 하다. 전세계가 기독교와 불교로 영성화 되던 시기였다. 우리 시대도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종교가 부각되고 해석보다는 느낌이 중시된다. 식자률은 최고지만 문해력은 떨어진다. 글자를 읽기 보다는 보는데 관심이 많다. 장단점이 있지만 문자의 패권이 상실되고 있음에는 확실하다. 11세기 문자대량생산=타이포그래피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그리고 이미지, 중세의 이콘(아이콘)이 부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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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현상이 과도한 전문성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불과 200년전까지도 강조되던 '교양'은 이제 비꼬는 용어가 되었다. 언제부터 교양이 추락했을까... 아무래도 21세기부터가 아닐까 싶다. 지배층의 추악함이드러나면서 각종 부패가 드러나고 한심한 정쟁, 명분 없는 전쟁을 지켜보던 시민층이 교양을 버리고 교회로 모스크로 절로 사원으로 향하고 있다. 과연 교양 없는 시민이 가능할까. 교양 없는 전문가가 맞는 것일까. 일만 잘하면 그만일까. 그럼 교양은 뭘까...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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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중세가 오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면 우리는 중세를 재조명해야 한다. 그때를 다시 꺼내 읽어야 한다.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은다. 결국 자꾸 읽어 이해하는 수밖에. 그렇게 어떤 분야가 함정이고 어떤 분야가 제단인지 구분해야 한다. 디자인은 함정일까 제단일까. 한국은 함정처럼 보이고, 외국은 제단처럼 보이니 헷갈린다. 현재에서 알수 없다면 과거에서라도 찾을 수밖에. 여튼 읽어야 한다. 그렇게 읽어 자신의 미래, 방향을 먼저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