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어떤 강의를 경청하는데, 한 청중이 질문을 했다. "타이포그래피랑 뇌과학이랑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라는 취지의 질문이었다. 다소 도발적인 질문이었지만 선생님은 당황하지 않고 조곤조곤 잘 답하셨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대강 뇌지도와 비슷한 취지를 말하셨던 것 같다. 글자와 뇌의 영역과의 관계랄까. 실제로 뇌지도는 어느정도 만들어져 있다. 타이포그래피와 연관해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기에 일리있는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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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하게도 계속 이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나라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그러다 문득 책장에서 라마찬드란의 <뇌는 어떻게 세상을 보는가>가 눈에 띄었다. 분량이 얼마 안되지만 알찬 내용으로 가득한 책이다. 특히 공감각에 대한 설명이 탁월하다. 난 이 책을 읽고 색맹이 장애가 아닌 예술가로서의 자질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실제로 이 책은 가장 중요한 나의 첫 강의 슬라이드 바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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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세모와 동그라미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름을 부르며 모양과 소리의 관계를 묻는다. "샤삭은 세모인가요 동그라미인가요?" 더불어 맛, 냄새, 촉각까지 묻는다. 대부분 세모에서 탁한 소리를 연상하고 매운맛, 따가운 느낌을 받는다. 심지어 동서양을 구분하는 관념에도 영향을 준다. 이게 바로 공감각이다. 짐작대로 라마찬드란에게 배운 것을 응용한 것이다. 그는 뇌의 감각 지각 영역이 가까워서 모든 감각이 연결되어 지각된다고 말한다. 어떤 감각의 정보가 부족하면 다른 감각이 보완한다. 보완한 감각은 섬세하고 예민해서 다른 이들이 간과한 것들을 느낀다. 색맹은 색이 안보여서 다른 형태 같은 공간 지각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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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는 이미지이자 소리다. 이미지는 기표요 소리는 기의다. 기표와 기의가 만나 기호, 즉 글자가 형성된다. 바로 공감각의 가장 최전선에 글자가 있다. 글꼴은 우리에게 말을 한다. 이미지로서 시각만이 아니라 글자가 담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물론 글꼴 이미지에 따라 다른 소리가 들릴 것이다. 크기도 중요하다. 조판에서도 마찬가지다. 글자간격, 글줄간격도 영향을 준다. 나아가 맛과 냄새, 촉각도 느껴질 것이다. 실제로 타이포그래픽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 다른 감각들에 대한 환유적 표현으로 글꼴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글꼴만이 아니라 모든 이미지가 그렇다. '시각'이란 말은 그냥 분석을 하기 위한 개념틀일뿐. 시각만 따로 떼어서 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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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 나는 타이포그래피와 뇌의 관련을 여기에서 시작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그게 타이포그래피가 중요한 이유예요. 당신이 어떤 글꼴, 어떤 크기, 어떤 조판을 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목소리가 다르게 들리고, 다른 맛이 나고, 다른 냄새와 촉각이 느껴지죠. 자 이제 어쩔 것인가요. 여전히 무색무미무취의 글꼴을 아무렇게나 나열해도 괜찮은가요? 지금 이 글에선 어떤 느낌이 드나요? 여전히 보이기만 하나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