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이 기능을 지배한다

by 윤여경

최근에는 '형식은 기능을 따른다'라는 명제에 상당한 의심을 갖게 되었다. 이건 구호이지 현실이 아니라는.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에서 형식은 기능에 좌우되지 않는듯 싶어서다. 형식보고 기능을 따르라고 아무리 외쳐도 결국 기능은 형식이라는 한계에 종속된다. 일례로 최근에는 스마트폰이라는 형식이 기능을 재창출한다. 스마트폰만이 아니라 인쇄, TV도 그랬다.

-

한국과 일본은 독특하게도 존비어체계가 있다. '비어'라는 말은 '상대를 하대한다'는 뉘앙스가 있어 부정적 의미가 내포된다. 영어나 중국어 등 다른 언어들은 '존어'와 '비어'의 구분이 없어서 그냥 '평어'라 부른다. 그런 측면에서 '비어'를 '평어'로 바꾸었으면 한다. 그러면 다소 부정적 의미가 희석된다. 아무튼 이 존평어 탓에 한국에는 위계질서가 확고하다는 평가들이 많다. 그래서 수평의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많은 이들이 한국의 존평어 체계에 대한 불만이 많다.

-

말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평어'체로 글을 쓴다. 왠지 존어체는 구어체적 느낌이 나서 간간히 쓰이거나 연설문 등 특별한 경우에만 쓰인다. 그런데 최근에 몇몇 유명 저자들이 글을 존어체로 쓰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가라타니 고진의 번역도(조영일 역) 대부분 존어체로 쓰여졌다. 요즘 배우는 선생님의 추천도 있고 해서 최근 나도 존어체 글쓰기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

처음에는 '습니다'체로 글을 쓰고, 그 글을 '이다'체로 바꾸려 했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아니 불가능했다. 이미 '습니다'라고 쓴 글을 '이다'로 바꾸려면 많은 문장과 단어가 삭제되거나 추가되어야 했다. 즉 말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때 알았다. 글을 어떤 방식으로 쓰느냐에 따라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글쓰기에서 태도는 곧바로 문체에 반영된다는 것을.

-

이렇듯 나는 요즘 글쓰기 실험을 하고 있다. 외부에 기고하는 글은 모두 '습니다' 로, SNS나 블로그에 기록하는 글을 모두 '이다'로 글을 쓴다. 전자는 대화형식이고, 후자는 독백형식이다. 상황에 따라 말을 달리 하듯이, 매체에 따라 글쓰기를 달리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쓰고 있는 이글은 누군가를 대상으로 말하기 보다 우선 나 자신에게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일종의 다짐이거나 기억을 외부화 시키는 행위에 가깝다.

-

그러다보니 존평어체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부정적이 보다는 긍정적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 그래서 외국어를 배우면 한국어를 메타적으로 사고 할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외국어 사용 기회가 전혀 없으면 외국어는 늘 망각된다. 마치 독에 물을 부어놓았는데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가 어느날 오랜만에 독을 열어보니 물이 전혀 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약간의 구멍으로 이미 물이 다 새어나갔듯이 기억에도 분명 구멍이 있다. 그래서 외국어 공부를 포기한지 오래다. 그런데 우리말은 늘 사용한다. 존어와 평어 모두 밥먹듯이 늘상 사용하는 언어다. 어쩌면 일상의 두 언어 시스템, 수직적 태도의 존어, 수평적 태도의 평어가 서로를 메타적으로 사고할 기회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

공자는 충忠과 서恕를 강조했다. 충은 '내가 받고 싶은 것을 상대에게 베풀라'는 의미고, 서는 '내가 받고 싶지 않은 것을 상대에게도 삼가하라'는 의미다. 전자는 수평적 태도, 후자는 수직적 태도다. 우리 언어로 치면 '충=수평=평어', '서=수직=존어'라 말할 수 있겠다. 두가지 태도가 모두 언어로서 구별되고 있는 셈이다. 이 좋은 기회를 글쓰기로 가져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럼 우린 왜 지금까지 '평어'적 글쓰기에 익숙했을까... 잠깐 고민해보았다. 일차적으로 떠오른 생각은 우리는 한자문화권에서 오랜 글쓰기를 했고, 영어문화권에서 글쓰기를 했다. 물론 한자에는 아예 존어와 평어의 구분이 없다. 영어문화권에 들어오면서 우리는 언문일치를 추구했고, 한자를 한글로 대체했다. 이후 사람들은 한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영어문화권에도 존평어 구분이 없기에 언문일치의 한글이었음에도 주로 평어적 글쓰기만을 사용했다.

-

나는 우리말의 두가지 형식이 우리글의 두가지 형식에 그대로 반영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형식이 기능에 제약을 가하듯 분명 두가지 형식이 있는데 굳이 한가지 형식만을 사용할 이유는 없는듯 싶다. 상황에 따라 형식을 달리 사용한다면 더 다양한 사고와 태도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수평을 이해하려면 수직을 알아야 한다. 역지사지, 상호간 메타적 접근을 해야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런점에서 어쩌면 존어와 평어의 구분은 적폐가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일지도 모른다.

keyword
이전 19화타이포그래피과 뇌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