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 사회가 느끼는 갈증의 일면을 조금 알게 되었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잘 배우겠는가? 배우고 싶어도 배울 곳이 없는데 어떻게 배우겠는가? 논리적 문제 해결방식을 배워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일을 효과적으로 하겠는가? 선생이나 상사나 코칭보다는 일률적으로 상대평가 등수만 매기려고 하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제대로 클 수 있겠는가? 키우진 않고 실적만 챙기는데 어떻게 사람이 성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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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전에 대학원 학생 하나가 멘토를 갖고 싶다고 했다. 그때 난 단칼에 그런건 없으니 꿈도 꾸지 말하고 했다. 게다가 우린 윤호섭 선생님 같은 훌륭한 스승이 있는데 무슨 멘토냐며 무안을 주었다. 돌이켜보니 좀 후회스럽다. 그때 이렇게 말할걸 “아 그렇구나... 같이 한번 찾아보자. 안되면 나라도 해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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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가 된다는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걸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차기 때문이다. 그 부담을 안고 살아갈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렵다면 여러사람이 나눠서 부담하면 된다. 멘토 더치페이라고 해도 되나? 음 좀 말이 이상하긴 하지만... 아무튼 여러 선생이 부담을 나누면 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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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려면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학교다. 그래서 이 칼럼의 저자가 질문을 받은 순간 학교를 떠올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멘토는 하나일 필요가 없고, 하나여서도 안된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의 멘토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멘토도 멘티도 부담이 없다. 즉 맨토:멘티 구성이 1:1이 아니라 여러명:한명으로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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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학교 깔대기로 돌아오면, 어쩌다 보니 디자인학교가 그런 곳이 되었다. 하지만 왠지 부담이 없다. 선생님들 각자가 딴소리를 내며, 반대되는 조언을 한다. 학생들은 그걸 모두 듣고 웃으며 끄덕인다. 끄덕임은 양쪽의 이야기를 듣고 균형을 맞추는 과정일 것이다. 이러니 서로가 부담없다. 각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각자가 알아서 소화하고, 멘토와 멘티가 서로에게 배우니, 참으로 이상적인 상황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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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과정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그렇다. 이 순간을 함께 하는 분들은 좋은 기억을 가질 것이고, 좋은 추억을 공유할 것이다. 디자인학교가 할일은 이를 조금이라도 지속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