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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Aug 03. 2019

절대시간

올리버 색스의 <화성의 인류학자>는 작년 <뉴로트라이브>에 숫하게 언급되어 읽게 되었다. 정말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하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귀한 내용이 가득 담긴 보물창고 같다. 보물 중 일부를 소개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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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의 경우에는) 어떤 장소에 있다는 느낌이 정상인에 비해 불분명하다.... 공간이 자신의 몸으로 한정되고, 자신의 위치를 지나쳐온 대상들이 아니라 얼마나 오랫동안 움직였는가에 의해 판단한다. 시간으로 위치를 측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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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보물을 발견하자 마자 시각장애인들은 순차 인식을 하는 '절대 시간' 개념을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마치 정상인들이 무시간의 절대 공간에 대한 꿈을 갖고 있듯이. 지금 읽고 있는 조지 레이코프의 <몸의 철학>에선 시간의 은유로 위치(공간) 변화가 자주 사용됨을 밝힌바 있다. 마치 우리가 시계의 바늘 변화를 통해 시간을 파악하듯이, 위치로 시간을 측정한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은 거꾸로 촉각과 청각에 의한 순차적 변화를 통해 공간과 사물, 사건을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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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레이코프는 시간 은유에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시간을 대상으로 여겨 내가 고정되어 있고 강물처럼 시간이 나를 지나가는 은유, 다른 하나는 대상이 고정되어 있고 내가 대상을 지나가는 은유. 정상인은 두가지 경우를 모두 인식하는 반면 시각장애인은 후자의 신체인식에 가깝다. 훨씬 분명하게 시간을 인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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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시간을 두려워한다. 언젠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시간이 멈추거나, 죽음 이후에 시간이 멈추길 기대한다. 하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른다. 시각장애인은 그걸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시간과 더불어 살아간다. 시각이 정상인 사람들처럼 전체를 동시에 볼 수 없지만 촉각과 청각으로 순차적 시간을 통해 사건을 인식한다. 즉 절대시간 속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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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인도 가끔은 이 절대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깊은 사유를 위해 눈을 감을때 그렇다. 눈을 감으면 전체상이 보이지 않기에, 또 감각정보량이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에 집중할 수 있다. 집중해 순서와 인과관계를 따져본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은 항상 이 상태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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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작가 소포클레스의 비극에는 종종 시각장애인이 등장한다. 대체로 그들은 현자이다. 때론 미래도 본다. 그래서 그들의 판단은 존중받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우리와 다른 감각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귀함을 잊고 있는건 아닐까. 그렇기에 '정상'과 '비정상=장애'를 구분하고 단정하는 것은 아닐까. 깊게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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