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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Oct 02. 2019

분열에 대하여

요즘은 분열이 대세다. 유명 보수 정치인과 진보 논객이 '분열'을 내세우며 오랜만에 존재감을 과시한다. 나도 분열에 관심이 많다. 디자인 과정은 '갈등과 대화, 타협'의 순환 과정이기에 디자이너는 항상 분열을 대면하며 살아간다. 요즘은 분열 통합 조력자인 디자이너를 퍼실리테이터라고 말하는데 왠지 나는 어감상 '디자이너'가 더 좋다. 아무튼 분열 바람을 타고 나 또한 디자이너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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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분열은 새삼스런 주제가 아니다. 20세기 한국은 큰 비극을 두차례 겪었다. 한번은 일본에게, 또 한번은 북한에게. 제국지배와 전쟁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그 가족들은 분노하였다. 일본에게 희생된 사람들은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북한에게 희생된 사람들은 김일성도당에게 분노했다. 그렇게 두 분노가 부딪치며 분열이 시작되었다. 이해가 간다. 나도 내 가족이 누군가에게 희생당했다면 크게 분노했을 것이다. 이 분노가 분열의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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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이념의 탈을 쓰고 나타났다. 일본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은 배타적인 반제민족주의로, 북한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은 배타적인 반공애국주의로 나뉘었고, 각 진영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제국주의자 혹은 빨갱이라 부르며(혹은 종북, 친일이라 부르며) 대립했다. 둘 모두 '희생자'였기에 폭력적으로 크게 부딪치진 않았다. 그러다 전두환이라는 깡패가 등장해 폭력을 휘둘렀다. 폭력은 폭력을 낳았고, 우리 사회는 극도로 분열되었다. 이런 점에서 5.18은 엄청난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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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열은 소모적 논쟁을 낳았지만 긍정적 측면도 있었다. 극도로 대립하는 세력은 미국이라는 보스 아래서 정당정치로 이어졌고 독특한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중국, 일본, 북한이 모두 일당독재라는 점을 가만하면 한국의 정당민주주의는 정말 특이한 상황이다.(김종필 만세! 최장집 교수는 여전히 배가 고프지만...) 게다가 군부정권 이후 최근 30년동안 두 정당이 번갈아가면서 정권을 차지했다. 민주적으로 정권을 차지하려다 보니 중간 온건 세력을 포섭해야만 했다. 포섭하려면 노력해야만 했고, 꾸준한 경제성장과 공정한 정치사회적 제도가 구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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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권력기관인 국정원, 경차, 검찰, 법원 등 관료의 힘이 비대하게 커졌다. 급기야 지난 정권에서 그 폐혜가 심각해졌다. 때문에 중간 온건 세력인 시민들은 다시 일어났다. 30년전 군부정권 같았으면 이미 탱크로 밀어버렸겠지만 이제 감히 그런 일을 저지를 정치인은 없다. 한번 대통령 탄핵을 경험한 시민들은 권력기관 따위는 별로 두렵지 않았다. 2016년 이후 한국 사회는 거대한 사회적 목소리를 포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난 30년의 분열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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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세기 분열이 희석되고 있다. 요즘은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도 해결하고자 노력했던 지역차별이 희미하다. 종북과 친일 프레임도 먹히지 않는다. 오히려 파시즘이나 포퓰리즘, 무능력, 불공정 등의 단어가 설득력을 얻는다. 과거의 분열동력이 상실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오랜 미국의 우방인 일본은 중국이랑 가까워지고 있고, 오랜 중국의 우방인 북한은 미국과 가까워지려 한다. 한국으로선 이런 국제정치가 당혹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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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기회다. 우리 앞에는 새로운 분열이 기다리고 있다. 친미파와 친중파라는 국제적 분열이. 나는 이 분열이 경제적 문제에 한정되길 바라지만 현대 자본주의는 정치경제적 문제라 필연적으로 친미 정당과 친중 정당으로 이어질 것이라 본다. 다시 19세기로 돌아가는 것일까? 아니 그렇지만도 않다. 대한민국은 건국 70년인 쌩쌩한 국가다. 친미 한국과 친중 북한이 서로의 우방과 가까워지는 현상은 어쩌면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생각지도 않게 친일과 친중이 연합하고 친북과 친미가 같은 정당으로 묶일 수도 있다. 그만큼 세상의 복잡도는 커지고 있다. 이럴때일수록 선명한 분열이 중요하다. 복잡하면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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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민중은 이 분열의 틈에서 크게 자라야 한다. 거대하게 자란 시민 세력이 건장해야 이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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