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를 공부하면서 관념(정신)과 욕망(몸)이 별개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가끔은 부딪치고 모순되는 두개의 가치가 요즘 나의 화두다. 정신과 몸의 이율배반은 늘 문학적 소재였는데, 나는 이 문제를 디자인적 과제로 보기 시작했다. 나는 디자이너로서 둘의 갈등을 대화로 이끌고 타협시켜야 한다. 인간이 고귀함을 추구한다면 정신과 몸, 둘 모두 고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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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지 검사들의 호부사를 보다가 서지현 검사의 이 표현이 크게 와 닿는다. 정의는 관념(정신)의 문제이고 생존은 욕망(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의와 생존은 별개일까. 아니면 공통의 과제일까. 정의와 생존이 공통의 과제일때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반면 둘이 별개의 문제가 될때 문제가 된다. 지금 시민과 검찰내부의 정의와 생존이 어긋난다. 어쩌면 검찰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이게 아닐까 싶다. 시민들에겐 검찰개혁이 정의와 생존이 공통의 문제지만, 검찰내부의 사람들에겐 정의와 생존이 별개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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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말하면 검사들에겐 생존이 정의가 되고, 시민들에겐 정의가 생존이 되는 상황이다. 나름의 정의를 추구하면 검찰내부에서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다. 대통령과 조국은 이 점을 살펴야 한다. 검찰개혁과 동시에 '생존이 정의'인 검찰 내부의 상황이 '정의가 생존'이 되도록 배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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