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여경 Aug 19. 2017

미국의 비너스, 자유의 여신상

간만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들렸다. 2층 전시실에는 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관점들이 모인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발견한 자유의 여신상 사진을 보고, 로마의 비너스가 떠올랐다. 과연 우리 시대는 로마의 반복인가. 그 반복의 끝인가...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다양한 양식의 작품들 또한 로마 말기와 닮았다.


아래는 미키마우스와 아톰의 몽타주, 미국과 일본 이콘의 몽타주이다. 만약 우리 시대가 종교의 자유, 즉 다신교의 시대라면 이 조합이야 말로 거대한 신도를 거느린다. 게다가 이 도상 뒤에 숨은 서사는 또 어떠한가. 귀여운 뒤에 숨은 디즈니의 허상과 원전의 허위가 예쁘게 포장되어 우리 품에 안겨 있다.


마지막 사진은 벽에 쏘인 희망의 빛을 구현했다. 누군가는 저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가 되고 싶겠지. 스타가 숭배되는 사회, 돌려받지 못한 사랑이 용인되는 사회의 단면 또한 중세를 연상시킨다. 성자=스타, 성물=디즈니, 성당=백화점, 성지 순례는 마치 패키지 여행을 방불케 하지 않는가.


남북의 패턴은 반복된다. 문명이 시작되고 처음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인더스와 황화가 그리고 북방의 도리스와 흉노가 득세한다. 이후 남쪽의 그리스와 로마, 하나라, 페르시아 득세한 후 북방의 게르만이 득세한다. 다시 남쪽 비잔틴과 이슬람이 득세하고 북방의 바이킹과 몽골이 등장한다.(이때 중국은 거꾸로 당나라가 북방, 이후의 송나라가 남쪽이다.) 다시 남쪽 이탈리아와 오스만, 명나라 이후 북방의 서유럽과 미국이 등장한다. 지금 우리는 북방 문명의 흐름 속에 위치한다. 북방이 득세면 국가와 민주가 남쪽은 제국과 법치가 중요시된다. 북쪽은 이미지, 남쪽은 문자와 개념을 중시한다.


패턴이 그러니까, 아니 자꾸 그렇게 생각해서 로마니 중세니 하는 소리가 아니다. 이들 문명이 어떻게 역동적으로 변했는지를 추적하면 정말 놀랍다. 북방의 문명이 득세하고 문맹률이 올라가고 개념보다는 감각이 중시되는 흐름이 바로 로마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이다. 닐 포스트먼은 전파매체의 등장으로 인쇄매체인 책에서 이미지 소통으로 전환되면서 우리 시대에 아이들이 사라졌다고 하면서, 중세가 그랬다고 한다.


만약 말이다. 우리시대가 그때와 닮았다고 판단한다면, 우리는 우리시대의 과거와 현재, 미래 모습을 구조적으로 조망할 기회를 얻는다. 그러면 상당히 유용한 분석이 가능해진다. 무엇보다 불안과 공포을 극복하고 희망을 갖게 된다. 단순한 지식만이 아니라 어떤 의지를 발휘할 기회를 얻게 된다. 우리는 우리 시공간에 갇혀있다. 개인의 경험 쪼가리로 세상을 함부로 판단하고 재단할수 없다. 결국은 숭고함의 환상, 우연의 선물, 의심과 허무에 빠질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우리 시대를 알고 싶어 우리 시대와 닮은 시대를 살핀다.



매거진의 이전글 디자인캠프를 돌아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