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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Oct 21. 2019

존비어체계와 이중성

요즘 유니클로 광고가 큰 논란이다. 광고 제작자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많은 이들이 광고의 설정과 대사에 크게 반발하며 불매운동의 결의를 다진다. 한국인들의 불매 운동을 보며 나는 이 나라 사람들이 상당히 무서운 집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집단성이 수천년동안 다소 독립된 민족성과 왕조를 유지하는 동력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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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이런 생각은 존비어체계에서 확증하게 된다. 전 세계에서 호칭과 연동된 존비어체계는 한국과 일본이 거의 유일하다. 한국보다 일본이 훨씬 더 강력한 존비어체계를 갖는데 그들은 이 체계가 내면화되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 반면 한국은 존비어체계를 갖고 있으면서도 존비어체계가 없는 중국문명과 가까워서 그런지 존비어체계가 내면화 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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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이중성' 문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존비어체계는 생각과 말을 다르게 해야 하기에 속말과 겉말의 이중성이 존재하게 된다. 가령 싫어하는 사람과 밥을 먹을때 속으로는 "밥을 잘도 쳐먹는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상대가 높은 사람인 경우 "진지를 잘 드시네요!"라고 말해야 한다. 말은 행동이기도 하기에 존비어체계에서는 생각과 행동(말)이 다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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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영은 이 지점에서 한국과 일본의 흥미로운 차이를 지적한다. 한국은 고려 후반이후 문인들이 지배해왔다. 과거에 급제하거나 경전을 읽으면 존중받았고 계층 및 계급이동이 가능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싸울때 몸보다는 말로 싸우길 선호한다. 말은 존비어체계라는 한계가 있기에 주로 말이 아닌 글로 싸웠다. 공교롭게도 당시 한국의 글은 한자라 존비어체계가 없어 논쟁하기도 좋았다. 지난 700년간 한국인들은 몸보단 글로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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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일본인은 2차대전 이전까지 무인들이 지배했던 사회다. 말이나 글보다는 몸으로 싸웠기에 한번 싸움이 일어나면 죽음에 이르거나 신체적으로 큰 피해를 봐야만 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극단적인 상황이거나 승리를 확신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싸움 자체를 걸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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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존비어체계를 사용하는 한국인과 일본은은 당연히 이중성을 갖기 마련이다. 한국인은 말과 글로 논쟁해 왔기에 비교적 승패가 모호하고 피해가 덜하다. 반면 일본은은 몸으로 싸워왔기에 승패가 확실하고 피해가 막심히다. 그래서 일본인은 극단적 상황이 아니면 이중성이 드러내지 않는다. 반면 한국인은 이중성이 가끔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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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이중성에 관대하지만 한국인은 이중성을 엄청나게 증오한다.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라는 책이있다. 저자 오구라 기조는 한국인들의 원칙성을 강조한다. 말과 행동, 마음과 몸의 분리가 아니라 일치를 추구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존비어체계는 그런 상황을 용납하지 않는다. 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그래서 한국인들에게 '한'이 서린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한이 분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주 시위에서 나는 공손하게 "문재인 대통령님 물러나세요~"라는 문구는 보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반말로 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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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성이 강한 일본정부가 갈등을 일으킬때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의외로 불매운동의 역풍을 맞았다. 일본인들은 특유의 이중성때문에 뭉치기 어렵지만, 한국인들은 이중성과 일관성을 왔다갔다 한다. 어떨때 흩어지고 어떨때 뭉치는지 종잡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일본 문제에 있어서는 확실히 잘 뭉치는듯 싶다. 이중성이 해소되는 흔치 않은 창구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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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국과 비슷하다. 일본을 잘 분석했다고 평가받는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읽으면 일본분석인지 한국분석인지 헷갈릴 정도다. 미국인의 시선에서 두 나라와 문화는 거의 유사할 정도로 일본과 한국의 정서는 통한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은 엄청 다르다. 언어적으로도 일본은 '나'가 강조되고, 한국은 '우리'가 강조된다. 이토록 다른 두 나라가 어떻게 그렇게 비슷하게 보일까 늘 의문이었는데, 이제 그 이유가 존비어체계에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존비어체계는 의외로 많은 통찰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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