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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Dec 29. 2019

디자인담론

2008년 이즈음 이지원 선생과 디자인읽기를 시작했다. 그때는 별로 아는 것이 없었지만 취지와 의지가 있었다. 디자인읽기의 취지는 담론이었다. 우리는 위에서부터의 담론을 기대할 수 없었고, 아래로부터의 담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의지에 여러분들이 공감했고 참여해 어느순간부터 디자인읽기는 많은 이들의 공론장이 되었다. 물론 냉소하는 이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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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디자인읽기의 한계는 공론이었다. 공론만으로는 담론을 끌어내지 못했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후일 리처드 로티를 읽으면서 원인을 찾았다. 로티와 하버마스는 모두 의사소통에 있어 담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하버마스는 목적을 중시하는 반면 로티는 개인의 이론을 중시한다. 즉 로티는 이론이 없는 소통은 의미가 없으며 공허할 뿐이라 주장한다. 나는 크게 공감했다. 목적도 이론도 없는 디자인 분야에 무슨 얼어죽을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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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나의 목적은 이론 만들기가 되었다. 철학, 경제학, 정치학, 과학, 사회학, 역사 등을 공부하면서 지난 수년간 디자인 분야 전체를 아우르는 이론을 만들고 있다. 어느정도 졸가리는 세웠는데 여전히 많은 한계를 느낀다. 디자인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조각들은 찾았는데... 이 파편화 된 조각구슬들을 어떻게 꿰어 하나의 목걸이로 만들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이 이론이 윤여경의 이론이 아니라 디자인의 이론이 되도록 할 수 있을까. 이것이 나에게 놓여진 커다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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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담론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이론에서 담론으로 관심이 넘어갔다. 다행히 이 담론을 함께 할 귀한 분들이 디자인학교에 계신다. 모두들 자신들의 이론이 어느정도 확고한 분들이다. 디자인학교를 함께하는 이지원 샘과 김의래 샘은 물론이고 성재혁 샘, 정연두 샘은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만의 확고한 이론을 구축했다. 문제는 이분들의 디자인 바탕이 이론이 아니라 실기라는 점에 있다. 여기서 실기란 말보다는 그리기에 가깝다는 의미다. 담론을 이루려면 디자인을 '짓는' 실기에 앞서 디자인을 '느끼는' 이론이 요구된다. 전자가 방법론이라면 후자는 인식론이다. 사실 방법론은 인식론에서 나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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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인식론은 처음 바우하우스에서 시작되었다. 올해는 바우하우스 설립 100주년이었는데 디자인계에서는 별로 관심없었다. 역시 기대했던바다. 이론과 담론이 없는데 바우하우스 따위에 관심이 있을리가. 아무튼 바우하우스의 인식론을 모더니즘이라고 하는데 이 모더니즘 디자인이 인식되면서 갖가지 방법론이 등장했고 결국 전쟁의 포화에서 안전했던 스위스에서 꽃을 피웠다. 모더니즘 디자인의 인식론을 찾으려면 독일로 가고, 방법론을 찾으려면 스위스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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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담론에 반발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은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디트로이트의 크랜브룩 아카데미에서 비롯되었다. 이 학교의 선생인 캐서린 맥코이는 형식의 자유로움 즉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바우하우스 담론을 저격한다. 1984년에 창간된 잡지 <에미그레>는 기능 중심의 디자인이 아닌 표현 중심의 다양한 그래픽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이 담론을 이끌었다. 이 담론은 미국과 유럽 전역에 영향을 준 것을 물론이고 모더니즘 방법론의 본고장인 스위스에도 영향을 주었다. 당연히 일본과 한국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일본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담론은 쏙빼고 형태만 취했다. 그것이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른채 그저 스타일을 베끼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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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방법론으로 승화된 학교는 칼아츠가 아닐까 싶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디자인학교의 선생님 다수가 칼아츠 출신이다. 다행이다 싶은 점은 이분들이 모더니즘 방법론도 함께 가르친다. 즉 디자인학교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방법론이 고루 포진되어 실기 교육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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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아쉬운 것은 담론이다. 담론이 만들어지려면 디자인을 느끼고 발견하는 이론들이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언어학 담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영어권 문화에 박식한 이성민 샘을 디자인학교로 모셔왔다. 이분은 라캉과 지젝, 아렌트 등 현대철학을 번역하시던 분으로 언어에 대한 이해가 탁월하다. 그러던차 이성민 샘을 통해 최근 최봉영 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통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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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영 샘은 이미 앞선 글에서 많이 언급했기에 굳이 반복하지 않겠다. 선생님은 올해 11월 한국어 문법을 어느정도 완성하셨다고 한다. 이분의 글과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바, 다소 과장하자면 세종이 한글을 발명했다면, 최봉영샘은 한국어 문법, 어쩌면 최초의 교착어 문법을 발견한게 아닐까 싶다. 나는 이분의 글을 읽으면서 굴절어 혹은 고립어와 완전히 다른 교착어로서의 한국어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우리가 매일매일 말하고 쓰는 이 한국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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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영 샘은 디자인학교와 의지를 함께 하고 싶어하신다. 선생님은 선생님의 가치를 알아본 우리의 가치를 존중하셨다. 굴절/고립어적인 어떤 한 주체의 발견이 아니다. 교착어적으로 말하면 임자와 임자가 상호 관계의 어울림을 발견한 것이다.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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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야 담론의 희망이 느껴진다. 영어와 한국어의 말바탕을 아는 이들. 이미지언어의 바탕을 이들. 각기 나름의 이론을 갖고 있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이 얼마나 기쁜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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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은 디자인학교에서 담론의 장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담론이 별건가. 이론을 가진 사람들이 여기 함께 있는데. 모여서 이야기나누면 담론은 저절로 형성될텐데. 이제는 바우하우스도 크랜브룩도 부럽지 않다. 모호이 너지도 캐서린 맥코이도 옛사람이다. 바로 지금 여기가 로도스다. 을지로 대림상가 디자인학교가. ㅎㅎㅎ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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