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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Sep 01. 2017

뜻밖의 편지

어제는 어떤 재소자분에게 뜻밖의 편지를 받았다. <역사는 디자인된다>의 독후감이었다. 정말 놀라워 두번 세번 읽었다.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곧 출소하신다니 다행이다. 출근해 서둘러 점심을 먹고 답장을 썼다. 비록 개인적 답장이지만... 책 홍보 겸사 답장의 일부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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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윤여경입니다. 정성스런 손글씨와 달리 컴퓨터로 작성하는 편지, 양해 부탁드려요. 아무래도 저희 세대는 손글씨보다 인쇄글씨에 익숙한터라... 이렇게 써야 글이 됩니다. 선생님이 보내주신 편지를 받고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독서를 하시고, 또 이렇게 관심과 격려를 표출해주시니 너무 감사하고 감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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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의 정도만 다를 뿐, 사람들은 모두 갇혀 사는듯 싶습니다. 저 또한 15년째 회사라는 공간에 갇혀 있습니다. 남는 시간을 쪼개어 독서를 합니다. 독서를 하다가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기록합니다. 이 기록들이 축적되고 발효되니 이렇게 한권의 책이 만들어졌네요. <역사는 디자인된다>는 어떤 자료의 수집보다는 꾸준한 독서와 기록의 반복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결과물입니다. 회사라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었다고 할까요. 또 제가 역사가가 아닌 디자이너라, 게다가 정보그래픽디자이너라 정보를 도식화해서 역사를 살피다 보니 독특한 역사관도 생겼고요. 아무튼 여러 우연들이 겹쳐서 졸저가 나왔고, 그 계기로 선생님과 귀한 인연이 닿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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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대로 쓰다 보니 역사적 사실보다는 역사의 관점, 그러니까 ‘역사론’ 같은 책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이 책을 기반으로 미술의 양식사를 새롭게 구성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역사의 큰 틀을 살폈다면, 이제는 구체적인 양식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10여년이 걸렸으니, 앞으로 10년을 더 바라보고 공부해야겠지요. 아무튼 묵묵히 씩씩하게 해나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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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책에 대한 평가를 듣기가 참 어렵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몇몇 선생님, 선배의 좋은 평가가 그나마 위안이었습니다. 모두 공부를 많이 하신 또 여전히 열심히 하고 있는 분들이거든요. 그 외에 좋은 평가를 해주신 동료들과 후배들도 대부분 독서량이 상당한 분들이었어요. 그 외에 어렵다는 투덜거림이 많아 요즘은 글쓰기를 연습하는 중입니다. 그러던 차 선생님에게 감동의 편지를 받았네요. 재독 삼독을 넘어 오독을 목표하신다니... 제 보람도 오제곱이 되네요. 제 책을 좋아하시니 분명 선생님도 공부에 대한 열망을 갖고 계신 분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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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출소하신다니 반가운 소식이네요. 험한 세상을 다시 이겨내시려면 쉽지 않으실듯 합니다. 저도 다소간 아픔을 겪으며 이를 잊고 싶은 마음에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으면 아픈 기억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는 듯 했거든요. 그것이 습관이 되어 지금은 책을 읽지 않으면 딱히 할 일이 없네요. 아무튼 독서는 여러모로 유용합니다. 요즘말로 가성비가 높다고 할까요. 또한 대부분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터라, 저처럼 무식하게 접근하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도리어 우호적입니다. 효율적 가벼움도 중요하지만 비효율에서 오는 무거움도 어떤 역할이 있나 봅니다. 그 덕을 톡톡히 보는 요즘입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되실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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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책을 쓰면서 따로 가진 자료는 없습니다. 그저 여러 책들을 읽다가 느낀 통찰을 정리했을 뿐입니다. 굳이 꼽으라면 E.H.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좋은 가이드가 되어 주었습니다. 따로 드릴 자료가 없어. 책 한권을 함께 보내드립니다. 제 책을 감수해주었던, 또 제가 역사 선생님으로서 존경하는 분입니다. 현재 3년 코스로 유라시아를 기행하고 있습니다. 마치 신라의 혜초, 근대의 유길준처럼요. 그 분의 역사적 관점이 듬뿍 담긴 책입니다. 저보다 젊지만 몇 길 위에 있는 분이고요. 좋은 통찰을 얻으시리라 믿습니다. 그럼 건강하시고 인연과 기회가 된다면 또 연락 주고 받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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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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