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과 한글

by 윤여경

"선생님 디자인을 한국말로 뭐라 말하면 좋을까요?"


최봉영 샘 디자인학교 특강에서 나온 질문이다. 잠시 고민을 하시다가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냥 '디자인'이라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나는 요즘 한국말 공부의 재미에 빠져있다. 아장아장 한국말을 배우며 새롭게 깨치는 것이 여간 많은게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말은 현재 한국사람들이 일상에서 말하는 말이다. 그것이 한자든 영어든 일본말이든 이슬람말이든 북한말이든 상관없다. 한국사람이 한국말로 여기고 있다면 모두 한국말이다.


문제는 선택이다. '사유'와 '사고' 그리고 '생각' 중 우리는 어떤 말을 쓰면 좋을까. 사고의 경우 '사고난다'라고 말하면 자동차 사고가 연상되어 탈락. '사유'는 왠지 멋져보이고, '생각'은 왠지 친근하다. 옛날에는 멋져보이고 싶어서 '사유'를 많이 썼는데, 요즘은 '생각'만 주로 사용한다. 그 이유는 '사유'는 '사유하다' 외에 '사유난다' '사유든다'를 쓸 수 없는 반면, '생각'은 '생각하다' '생각난다' '생각든다'가 모두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유'라고 말할 때보다 '생각'이라고 말할때 더 말맛이 난다.


두번째 매력은 한국말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소리+표현이다. 대강 나열하면 '나, 이, 는, 기, 가, 다, 지, 하, 오, 어, 아, 바, 음, 라, 말, 그, 저, 것' 등이다. 지금 나열한 단음절은 한국말에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할게요'라는 말도 '하+ㄹ+거(것)+이+오(요)'처럼 단음절들의 조합이다. 얼마전 선생님이 멍멍 '개'의 바탕치기를 하셨는데, '개'는 '가+이'이다. '가'와 '이'의 바탕뜻을 알며 한국말 '개'의 바탕뜻을 짐작할 수 있다. 단음절 낱말은 아주 심오한 의미를 품고 있는데 '가'라는 낱말 하나갖고도 삼십분 정도는 얘기할 수 있을 듯 싶다.


또 하나는 한글은 한국말이 아니다. 한글은 한국말을 잘 표현하는 문자매개체일 뿐이다. 그래서 진짜 한국말은 한글 표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말 '소리'에 있다. 한국말은 옛날의 소리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 이유는 지금까지 한국말을 표기한 문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글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로 불과 40년전이다. 이전에는 문자하면 '한자'를 떠올렸다. 약 천오백년동안 한국사람은 말과 글자를 따로 썼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말은 문자가 없었기에 그 가치가 보존되었다.


한글은 참 위대하다. 일본말은 히라가나의 발음에 갇혀 발음이 축소되었고, 영국말도 적은 숫자의 알파벳 발음에 갇혀있다. 그래서 발음기호까지 동원해야 한다. 반면 한글은 간단한 원리로 다양한 소리를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기에 가장 훌륭한 문자이다. 세종이 만들때 있었던 '아래 아'와 '반치음'이 있다면 소리와 형태로서 더 훌륭한 문자가 될 수 있다. 문자에 점, 선, 동그라미, 네모, 세모가 모두 있다니 얼마나 멋진가! 점선면 갖고 놀던 칸딘스키가 봤다면 놀라서 까무라쳤을 것이다!


앞으로 한국말은 한글로 제대로 표기되어 보존되어야 한다. '동물 말과 말소리' '하다와 하늘'처럼 다양한 소리를 'ㅏ'라는 하나의 자소로 퉁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말 연구와 한글 연구의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 한국말은 소리 바탕치기를 통해 바탕뜻을 분류하고, 한글은 섬세한 소리를 담을 수 있는 모음과 자음의 확보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사실 힘쓸 것도 없이 세종이 만든 애초의 취지를 그냥 살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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