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외로움
지난 11번의 강의를 하면서 우리는 함께 가열차게 달려왔다. 기차에 비유하면 처음에는 칙칙폭폭 천천히 달리다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속도가 엄청 빨라졌고 지난주 11강 '믿음'에서 그 속도는 최고치에 다다랐다. 몇몇 학생들이 따라가기 버겁다고 호소했다. 폭주기관차에 타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선생님은 학생들을 업고 가는 마음으로 수업을 하시는데, 점점 갈수록 업고 있는 선생님과 업혀 있는 우리들 모두가 힘들어졌다. 그래서 나는 오늘만큼은 서로를 내려놓고 대화하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모두들 흔쾌히 동의했다.
변화는 그만큼 힘든 것이다. 한국말 말차림의 중요성을 알게 된 다는 것은 '회심回心'에 가깝다. '회심'이란 종교적 용어로 종교를 바꾸는 행위다. 한국말 말차림 수업은 한국말과 한국사람에 대해 갖고 있지 않았던 믿음을 새롭게 갖는 것이다. 말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사람은 한국말이라는 새로운 종교를 갖는 것이며, 한자 등 외국말을 믿던 사람은 종교를 바뀌는 과정인 셈이다. 그래서 선생님도 본인 스스로 개종에 가까운 변화를 겪었다고 하신다.
종교가 그렇듯 깨달은 사람이 있으면 함께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홀로 깨달으면 고독과 외로움에 시달리게 된다. 고독은 그마나 낫다. '고독을 즐긴다'는 말도 있으니까. 외로움은 견디기 힘들다. 깨달은 것은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면 그 깨달음이 무슨 소용일까? 선생님은 몇몇 분들과 그 외로운 시간을 버티다가 우리를 만나셨다. 그래서 그런지 외로움이 다소 해소되신거 같다. 우리는 선생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면서 되려 고독에 빠지게 되었다. 내 머리속에 본래 있었던 한국말 말차림을 아장아장 다시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이성민 샘은 아렌트를 통해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었다. 고독은 누군가 없어도 상관없지만, 외로움은 반드시 누군가 있어야 한다. '고독'는 '나'와 '내 안의 또다른 나'를 만나는 과정이다. 그래서 고독한 사람은 내 자신과 함께 있음을 느끼기에 외롭지 않다. 심지어 즐길 수도 있다. 반면 외로움은 내 자신이 온전히 하나가 된 상태다. 그래서 온전한 나와 대화 등을 함께할 상대가 있어야 한다. 없으면 외롭다.
최봉영 샘은 선생님 답게 '외로움'에 대해 바탕치기를 해 주셨다. 한국말에는 '외톨이' '외나무다리' '왼손' 등 '외'라는 말이 종종 들어간다. '외할아버지'의 '외'는 한자어 '外'이기에 한국말 '외'와 다른 경우다. '외'라는 말이 들어가면 왠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외톨이'는 안타깝고, '외나무다리'는 위태로우며,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에 비해 비정상적인 느낌을 준다.(요즘은 오히려 더 평가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아무튼 '외'라는 말은 그 자체로 함께하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나는 이야기를 들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유를 묻는 "왜"라는 말도 '외'와 바탕을 함께 하는 것일까? '결과'만으로는 외로워서 '원인'이라는 짝을 찾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미쳐 질문을 하진 못했다. 더 궁금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꿈에 주자를 만나셨다고 하셨는데, 느낌이 어떠셨어요. 그리고 왜 하필 주자인거예요?"
중국의 유학하면 우리는 가장 먼저 '공자'를 떠올린다. 그런데 선생님은 꿈에 공자가 아니라 주자를 만났다고 하셨다. 내 생각에는 주자보다 공자가 더 위대한 사람 같은데 '왜 공자가 아니고 주자일까?' 늘 궁금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꿈에서 주자는 몇권의 책을 가지고 방에 들어와 선생님께 <논어><맹자> 구절 몇개를 물어보셨다. 갑자스런 질문에 당황해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꿈에서 깨셨다고 하셨다. 별로 대단한 꿈은 아니었지만 꿈에 그리던 주자를 만났기에 다음날 이를 기록하기 위해 시를 한편 쓰셨다고 한다.
욕심을 버리고 하늘을 따르면
성현의 마음도 읽을 수 있고
한 길로 꾸준히 정진하면은
고인의 모습도 볼 수 있다네
(1985년 11월 9일)
선생님은 '공자'는 <시경>과 <춘추>를 쓰고 학당을 이끈 위대한 스승이지만 천하의 학문을 이룬 사람은 아니라고 하셨다. 공자는 제자백가 중 한명으로 공자가 살았던 당시에는 노자와 관자 등 다양한 스승들이 있었다. 반면 주자는 천하의 학문을 이룬 사람이다. 주자는 유학만이 아니라 불교와 도교, 제자백가의 학문들을 섭렵해 하나의 학문으로 집대성하였다. 한발 더 나아가 <논어><맹자><대학><중용> 사서와 <시경><서경><역경> 삼경을 정리했다. 사서삼경은 일종의 경전으로 당시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교과서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소학>를 써 아동교육을 정립하고 <주자가례>를 써서 예법을 통일하였다. 학문을 집대성해 우주의 원리와 사회적 도덕과 사람의 윤리를 연결짓고 이에 따른 교육과정과 정치제도, 의례의 법도까지 정립하였다. 우리가 조선시대의 관습이라 여기는 것은 모두 주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와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있어 주자는 한 사람의 현인만이 아니라 성인으로 까지 추대되었다고 한다. 선생님도 유학을 공부할 때는 주자가 성현(성인+현인)으로 느껴졌다고 하신다. 그래서 꿈에서라도 주자를 만나고 싶었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주자를 알면 우주의 원리와 사회적 제도와 도덕, 사람이라는 존재와 도리까지 모든 것을 깨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하신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흐릿한 느낌만 있을뿐 제대로된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고 하신다. 그러다 한국말에 눈을 뜨면서 성현으로서 주자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고 하신다.
지금 선생님에게 주자는 성현이 아니라 책략가이다. 성현은 모든 존재를 아우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주자도 시대의 자식인터라 모든 생명과 사람을 아우르지 못했다. 그는 기존의 귀족중심의 신분사회를 부정했지만 그가 새롭게 구축하려고 했던 사회는 민중 중심이 아니라 능력있는 사대부 중심의 새로운 신분사회였다. 서양의 혁명으로 치면 프롤레타리아(노동자)가 아닌 부르주아(자본가) 중심의 혁명을 꾀한 셈이다.
선생님은 모든 인문학자들의 목적은 '평화'에 있다고 하셨다. 문제는 '누구를 위한 평화이냐'이다. 주자에게 '누구'는 바로 사대부였다. 그는 사대부 중심의 평화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 정교하고 뛰어난 학문적 바탕을 마련하고 이를 갖고 사람들을 설득한 것이다. 이 설득은 결국 성공했다. 명나라는 제국이 되면서 주자의 학문과 제도, 의례를 국학으로 삼았다. 명나라를 따르는 조선 또한 주자를 국학으로 삼았다. 이후 명나라는 청나라로 바뀌었지만, 조선은 500년 동안 유지되었다. 즉 주자의 <소학>과 <사서삼경> <주자가례> 같은 교과서가 500년 동안 토시하나 안 바뀐 것이다. 그래서 조선에서 주자학은 학문적 참고서가 아니라 종교적 경전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그 흐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선생님은 언젠가부터 자신이 근대인임을 깨달았다. 지금은 주자가 살았던 시대와 완전히 다르다. 주자를 성현이 아닌 책략가로 보기 시작하자 선생님 자신도 책략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하셨다. 성현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평화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따져 이를 이루기 위한 책략을 세우기 위해 공부하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선생님 생각하는 '누구'는 사대부나 엘리트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 지구에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 나아가 우주에 함께하는 모든 존재들까지 아우른다. 그렇기에 주자를 더 공부해도 서로 책략이 달라 도움받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신다. 주자의 학문은 근본적으로 우리 시대가 추구하는 평화와 맞지 않아 아무리 요리조리 바꿔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선생님은 주자학을 떠났다. 대신 <주체와 욕망>(2000년)을 쓰며 근대를 상징하는 프로이트의 질문에 대답했고, 피아제를 통해 글보다 말의 중요성을 깨달아 지금의 한국말 바탕치기 연구에 이르게 되셨다고 한다.
말글놀이와 글말놀이
선생님은 나의 질문에 이어 새롭게 눈뜬 공부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지금까지 우리는 약 천오백년동안 글말놀이를 하며 학문을 했다고 하신다. '글말놀이'란 쓰여진 글을 중심에 놓고 말로서 서로 대화하는 공부이다. 글말놀이를 하려면 기준이 되는 경전이나 교과서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경전과 교과서를 하나의 기준이 아니라 올바름의 기준, 즉 진리로 여긴다. 그래서 글말놀이를 하는 사람은 경전과 교과서를 믿는다. 이는 자신의 올바름과 진리를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아니라 경전과 교과서라는 글매체에 한정해 가둔 것이다.
글말놀이를 하려면 먼저 문자를 알아야 한다. 읽고 쓰고, 해석할 줄 아는 사람만이 글말놀이에 참여할 수 있다. 가령 서양의 중세 스콜라 철학의 공부과정이 꼭 그랬다. 스콜라 철학의 공부는 3단계로 진행된다. 처음에 문자를 배워 낱말과 다발말(문장)을 모두 이해해야 한다. 두번째 선생님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자신이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한다. 세번째 자유롭게 토론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경전과 경전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여겨지는 선생님(사제)이 나보다 더 진리에 가까운 상황이 된다. 그래서 글말놀이는 자연스럽게 원본 텍스트를 중심으로 세력과 권력을 갖춘 종교적 믿음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불교와 유교에서 <팔만대장경>과 <사서삼경>이 중요하고, 현대 기독교에서 <성경>이 중요한 것이다.
글말놀이와 다른 공부방법은 말글놀이다. '말글놀이'는 말을 중심에 놓고 글은 보조자료로서 사용하는 경우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4대 성인은 대부분 글말놀이가 아니라 말글놀이를 한 분들이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당시에도 문자가 있었다. 그러나 문자매체는 보조자료로 쓰일 뿐이었다. 문자가 교육의 중심이 되는 과정은 플라톤 이후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대화체가 아닌 자신의 생각을 산문체로 썼다. 이후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을 읽으며 공부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주자의 책과 어록을 교과서로 삼아 공부하고, 기독교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을 기록한 <성경>을 경전으로 삼아 공부하듯이. 말 중심의 교육이 글 중심의 교육으로 바뀐 것이다. 붓다와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님은 모두 말을 통해 우주의 원리와 사람의 도리를 가르쳤다. 이 분들을 따르던 사람들이 이분들의 말을 글로 기록했다. 이후 2500년동안 이 기록에 수많은 각주가 달렸다. 말글놀이가 글말놀이로 전환된 것이다.
20세기 중반 비트겐슈타인은 근대 서양사람으로서는 거의 최초로 말글놀이를 발견한 사람이다. '그림이론'을 주장한 전기 비트겐슈타인은 글말놀이를 믿었다. 전쟁 등 이런저런 사건을 겪으며 그는 '회심=개종=메타노이아'을 한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그림이론'이 아닌 '언어게임'과 '가족유사설'을 주장한다. 글보다 말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선생님은 약 10여년전에 비트겐슈타인과 같은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하신다. 나는 지난 주 한국말 말차림법 11강을 정리하면서 이 깨달음을 얻었다. 사실 난 깨달음이 있는지도 몰랐다. 지난주 선생님은 내 글을 읽고 "윤선생이 이제 말글놀이로 돌아선 거야! 하하"라고 말하셨다. 나는 이 말을 듣고도 다소 어리둥절했는데 어제 선생님 강의를 들으며 비로소 그 말뜻을 알게 되었다.
한국사람들은 말놀이와 글놀이가 분화된 상태로 진행되었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한자라는 중국의 문자를 빌려와 글말놀이를 했다. 하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글말놀이를 한 것은 아니다. 7세기 신라의 원효는 한자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불교 지식과 사상을 전달해야 했다. 한자어를 모두 한국말로 바꾸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를 위해 원효는 다시 한국말을 곱씹어 살펴야만 했다. 즉 글말놀이에 앞서 말글놀이를 한 것이다. 조선의 퇴계도 주자학을 한국말로 모두 풀어냈다는 점에서 글말놀이에 앞선 말글놀이를 한 사람이다. 세종도 한글을 만들기 위해 먼저 말글놀이를 했다. 세종이 한글을 발명하면서 한자 공부가 더 수월해졌고, 급기야 퇴계가 한국말로 번역한 내용을 바탕삼아 한글로 쓴 사서삼경 언해본이 출판되었다. 한글이 발명되고, 한국말 풀이 경전이 나오면서 주자학은 더욱 깊게 조선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한국의 글말놀이는 뿌리가 깊다. 한글과 한국말 전용을 주장하거나 한자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글말놀이를 추구한다. 한국말을 주장하면서 정작 말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상황이다. 선생님은 오랜시간 글말놀이를 하면서 엄청난 장벽에 부딪쳤다고 하신다. <주체와 욕망>을 쓰면서 '主'를 '임 主'로 풀었는데 도무지 '임'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임자'라는 말을 평생 써 왔는데 정작 그 뜻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옛날 서적을 닥치는 대로 뒤져, 시조와 문장에서 '임'자를 찾아 분류해 보았으나 그 뜻을 알 수 없었다고 하신다. 글을 통한 뜻풀이에 한계를 느낀 선생님은 글이 아닌 말의 바탕을 찾기 시작하셨다. 말글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말글놀이를 통해 선생님은 '임'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셨다. 또한 '몸'이 무슨 뜻이지 안다. 이제 비로소 '주체'라는 말의 뜻을 또렷하게 알게 된 것이다.
장난, 놀이, 일
긴 대답이 끝나고 다른 학생의 질문이 이어졌다. "말글놀이를 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렇다. 우리가 경험하는 일과 감정, 생각을 모두 말로 담아낼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놀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선생님은 여기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놀이와 장난 그리고 일의 구분부터 선행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먼저 장난와 놀이는 재미를 위해 하는 것이다. 장난과 놀이는 즉각적 재미라는 목적이 같지만 과정은 다르다. 장난은 규칙이 없고 놀이는 규칙이 있다. 일에도 규칙이 있다. 놀이와 일은 규칙이 있다는 점에서 같지만 목적은 다르다. 놀이는 즉각적 재미를 추구하지만 일은 재미보다는 이익을 추구한다. 그래서 일은 이익을 위해 고통을 감수해야만 한다.
장난에서 놀이, 일로 진행되는 과정은 사람의 발달단계와 유사하다. 규칙이 없는 상태의 장난은 '저만' 아는 상태다. '저만' 아는 장난은 일방적인 것으로 남들과 공유하기 어렵다. 저들 혹은 남들과 함께 즐기려면 반드시 공공성을 가진 규칙이 있어야 한다. 규칙이 생기면서 장난은 놀이가 된다. 그런데 즉각적인 놀이로서는 무언가를 이루기 어렵다. 지금 하는 놀이가 미래의 이익이 되기 위해서는 놀이는 일이 되어야 한다. '일'과 '이루다'는 바탕을 함께 하는 말로 일은 곧 미래에 이익이 되도록 이루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 다소 재미가 없고 심지어 고통스러워도 꾹 참고 일을 하게 된다.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이 미래는 자기 자신만의 미래가 아니라 가족, 사회 나아가 지구와 우주까지 나아간다.
이런 점에서 선생님의 도덕성 발달단계인 '저만-저들끼리-남들까지-것들까지'는 장난-놀이-일과 연관이 있다. 이런 점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이가 먹고 키가 크는 것이 아니라 저만 혹은 저들끼리만 아는 것에서 남과 것들까지 아우르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의 바탕뜻은 '어우르는 사람'이다.
그럼 사람이 살아가면서 궁극적 목적은 '놀이'일까 '일'일까. 어떤 사람은 재미가 없으면 일을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에게 궁극적 목적은 놀이이다. 어떤 사람은 재미가 없어도 묵묵히 일을 한다. 이런 사람에게 궁극적 목적은 일이다. 가장 최선은 놀이와 일,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이다.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꾸준히 무언가를 해야 하고 그러려면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일에서 재미를 찾고, 놀이에서 이익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놀이와 일이 함께가야 삶에 재미와 의미가 모두 생긴다.
선생님
도 한국말 바탕치기가 일로 여겨졌다면 진작에 그만두셨을 것이라 말하셨다. 선생님에게 한국말 바탕찾기는 아주아주 재밌는 말글놀이다. 이 놀이가 비록 당장 무언가를 이루거나 이익이 되지 않더라고 먼 미래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시며 놀이의 재미와 일의 의미를 찾고 계신다고 하셨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그렇다. <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을 쓴 요한 하위징아가 이 강의를 들으면 아주 좋아했을텐데...
나는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글놀이가 안되는 것들은 장난이나 일로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 활동이 그렇다. 본인이 이해되지 않거나 개념이 잘 잡히지 않는 경우 디자인을 장난처럼 하게 된다. 또 이해되고 개념은 잡히는데 여기에 동의가 되지 않는 경우 디자인을 일처럼 하게 된다. 장난처럼 디자인을 하면 재미는 느끼지만 규칙이 없어 불안하다. 이 불안은 이 디자인이 소통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소통되지 않으면 일을 이루지도 못해 디자인의 목적성 자체가 상실될 것이다. 반면 일로서만 디자인을 하면 지속적으로 디자인을 하지 않게 된다. 그냥 클라이언트나 상황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며 그들이 원하는대로 디자인하게 된다. 영혼없는 디자인이 된다고 할까. 그런 디자인은 잘되던 안되던 크게 상관도 하지 않는다. 비록 내 손에서 나온 디자인이지만 내 맘속에 그 디자인에 1도 관심 없으니까. 일종의 책임 회피다.
그래서 나는 말글놀이가 안되는 디자인은 반드시 말글놀이로 가져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디자인은 기량을 갖춘 장인정신만이 아니라 기술로 나아가는 인문학정신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디자인학교에서 최봉영 선생님 강의를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말과 글을 외면한 디자이너들에게 말과 글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디자이너가 말글놀이를 하면 우리 사회 디자인도 '규칙 없는 장난'이나 '고통스런 일'이 아니라 하나의 재미와 의미를 두루 갖춘 놀이로서 거듭나리라 기대한다.
뒤늦게 느끼면서 앞으로앞으로 들어가는 것이 삶이고 공부다
또 한분의 질문이 이어졌다. "선생님처럼 글말놀이가 충분히 안되있는 상황에서 말글놀이로 나아가도 될까요?" 이 수업은 교과서나 교재가 없다. 오로지 선생님의 말로서 이루어지는 수업이다. 선생님은 그때그때 생각나는 말을 하면서 수업을 이어나간다. 그래서 이 수업은 글말놀이가 아니라 말글놀이 수업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학생은 '글말놀이'가 중심이 된 세상을 살다가 '말글놀이'에 의한 수업을 처음 접한 상황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
"말글놀이가 중요하니까 당장 글말놀이를 때려치고 말글놀이를 하세요!"라고 쉽게 대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선생님도 생각을 넓고 깊게 하려면 여러 나라의 글을 많이 접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여러나라의 글을 접하기 위해서는 일단 글을 해석할 나의 말이 있어야 한다. 앞서 '임'처럼 내가 이해하는 말의 바탕을 모르면 '임 主'라고 해석할들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공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말글놀이로 나의 말, 즉 한국말의 바탕을 이해한 뒤 글말놀이든 말글놀이든 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우선 중요한 것은 '글말놀이'와 함께 '말글놀이'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글말놀이만 있다고 생각하면 모든 생각을 글 중심으로 여기게 된다. 오로지 책에 답이 있으니 책만 많이 읽으면 어른이 되고 성현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 반면 말글놀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글에서 벗어나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나의 의지로 세상을 알고 남의 의지와 함께하는 다른 존재들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선생님은 칠판에 바야흐로 수평선을 하나 긋고 사람을 그리셨다. 이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서 무언가 행동을 한 뒤에 자신이 한 행동을 느끼면 이미 늦은 것이다. 가령 칼에 손이 베었음을 느끼면 이미 늦었다. 또 자동차 사고가 났음을 느끼면 이미 늦었다. '느낌=늧'의 바탕이 '늦다'와 함께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느끼는 순간 이미 늦은 것이니 사람은 일이 일어난 뒤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느낌을 위한 것인데, 뒤늦게 느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삶이라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불교는 이를 '공空'이라 말한다. 불교는 '색성향미촉-법' '안이비설신-의'처럼 '느낌에 의한 앎'에 근거를 두기에 뒤늦게 느낀 것들은 모두 허하고 공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삶의 덧없다.
반면 서양 사상은 '자유의지'를 강조한다. 칸트의 '자유'에 니체의 '의지'를 더한 것이 '자유의지'다. 느낌적 앎에 의 의하면 사람과 여타동물에게 자유의지 따위는 있을 수 없다. 느끼는 순간 이미 늦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인데 자유의지가 있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냥 주어진 상황를 수습하고 합리화시키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삶이 된다. 실존철학을 담은 소설들의 부조리함도 이런 생각에 근거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유의지'를 믿고 있다. 그 이유를 무엇일까. 바로 사람과 동물은 느낌에 앞서 '미리'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앞으로 걸어갈때는 끊임없이 미리 생각을 한다. "아 물을 마셔야겠다. 저기 정수기가 있으니 저쪽으로 가서 물을 따라야지"라고 결심하고 몸을 일으켜 정수기로 걸어간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지 미리 생각했기에 행동이 시작된 것이다. 미리 결심하면 그 다음의 상황은 '믿음'이다. '물마시기' 바램을 이루기 위해 묻고따지기를 멈추고 믿음을 바탕으로 행동을 결행하는 것이다. 물마시기 행동에는 수많은 믿음이 작동한다. 몇개만 나열하면 내가 딛고 있는 이 건물이 튼튼하다고 믿어야 한다. 정수기에는 물이 나올 것이라 믿어야 한다. 내가 들고 있는 컵에 물이 담길 것이라 믿어야 한다. 중간에 화살이나 총알이 날아오는 급작스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어야 한다. 등등의 믿음들이 있기에 나는 당당히 일어나 컵을 들고 물을 마시러 간다. 그리고 물 마시기를 이루어낸다. 촉촉한 물이 내 목젖을 넘어가는 느낌을 뒤늦게라도 느낄 수 있는 것은 모두 미리 계획한 나의 자유의지와 믿음을 바탕으로 한 행동이다. 그래서 인생은 공허하지 않다.
수업을 빠짐없이 경청하시는 김호철 선생님은 수업 소감에서 "뒤늦게 느끼면서 앞으로앞으로 들어가는 것이 삶이고 공부다"라는 말이 가슴에 남았다고 하셨다. 여기서 '들어가는 것'은 곧 '나아가는 것'이다. 비록 나는 뒤늦게 느끼게 되더라도 그 느낌에 앞서 나는 이미 생각으로 나아간다. 묻고따져 나온 앎과 믿음을 바탕으로 앞으로앞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공부이고 삶인 것이다. 나는 김호철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수업이 한국말 바탕을 넘어 참으로 심오한 사상을 담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스스로 묻고따져 자유롭게 생각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다 계획을 갖고 있다. 그리고 계획을 이루기 위한 의지를 갖게 된다.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묻고따지기를 멈추고 자신의 자유의지와 상황을 믿어야 한다. 이 믿음을 바탕으로 행동을 한다. 이 행동에 의해 어떤 결과를 이루고 그 결과에 대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느낌에 맞추어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여기서 결과에 대한 느낌이 '앎'이라면, 결과까지 이르는 자유의지는 바로 '삶'이다. 그래서 사람이다. 사람은 '앎'이 아니라 '삶'으로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사람'인 것이다. 즉 한국말 '사람'은 느낌적 앎보다는 자유의지적 삶은 담고 있는 말이다.
"말글놀이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무엇 이 좋을까요?"
마칠 무렵 다른 분의 질문이 이어졌다. 중국은 대화의 말글놀이와 편지의 글말놀이를 통해 학문을 했고 조선시 양반들도 편지를 통해 학문을 했다. 학문을 논하는 경연도 활발했다. 옛날에도 나름 글말놀이와 말글놀이를 해 왔던 것이다. 서양도 마찬가지다. 근대 서양을 편지공화국이라 말할 정도로 서양의 학자들은 편지를 통해 활발하게 소통했다.
옛날 책들 중 '어록'이라 붙은 것은 말글놀이 대화를 기록한 것이고 '서간'이라 붙은 것은 편지글들을 모은 것이다.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실록'은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조선학자들의 경우 '어록'은 별로 없고, '서간'과 '실록'이 남아 있다. 물론 서간과 실록은 모두 한문투로 기록되었다. '어록'의 경우 퇴계 관련 어록정도가 있을 뿐,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조선의 학자들은 말글놀이 보다 주로 글말놀이를 했기 때문이다.
퇴계는 원효처럼 한자로 된 유학 교과서를 한국말로 번역하는 노력을 많이 했다. 덕분에 퇴계는 한자만이 아니라 한국말 바탕치기를 해야만 했다. 그래야 사서삼경이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율곡의 경우는 일찍이 한자에 눈을 떠서 굳이 그런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사서삼경를 한글로 바꾸는 언해본 작업이 율곡에게 맡겨졌을때 율곡은 퇴계의 언해본을 크게 참고해야만 했다. 다산도 퇴계처럼 유학 교과서들을 새롭게 번역하는 과정에서 한국말에 눈을 뜬 사람이다. 그러나 퇴계나 다산의 경우 모두 12세기 주자가 집대성한 유학 교과서를 바탕에 두고 학문을 했기에 주자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다.
선생님은 학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교놀이라고 하셨다. 먼저 말과 글의 비교놀이를 해야 한다. 나아가 여러말과 여러글의 비교놀이를 해야 한다. 비교를 통해 무엇이 같고 다른지 묻고 따져서 여러 관점을 고루두루 아는 것이 중요하다. 선생님은 종종 현미경, 망원경 은유를 하시는데 고루 아는 것은 '현미경'으로 사물을 보듯 섬세하게 따지는 것이고, 두루 아는 것은 '망원경'으로 사물을 보듯 큰 맥락에서 살피는 것이다.
두번째는 동양과 한국을 분리해야 한다. 보통 동양이라 말하면 중국문명권을 말한다. 한국은 중국문명권 아래 오랜시간 있었지만 말차림은 크게 달랐다. 그래서 서양과 동양으로 나누기 보다는 서양과 중국, 한국으로 구분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이다.
세번째는 한국말의 바탕을 알아야 한다. 한국사람은 한자든 서양말이든 여러나라의 말과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국말로 번역해야만 한다. 그런데 정작 한국말을 모르면 번역해도 소용없게 된다. 비교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말의 바탕을 알고 있으면 중국과 서양의 말과 글에 비교가 가능하다. 한자로 해는 '日'이다. 한자는 꼴을 보고 만든 글자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모양이 많이 변해 본래의 꼴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꼴이 아닌 한국말 풀이를 해야 한다.
'日'은 '날 일' '해 일'이라 말하는데 '날'과 '해'가 무슨 말인지 모르면 '日'과 비교가 불가능하다. '산山'의 경우도 '뫼 산'이라 말하는데 '뫼'가 무슨말인지 모르면 '산'과 비교가 불가능하다. 한국말로 '해'는 '하+이'로 '하다'와 바탕을 함께한다. '날'도 '나다'와 바탕이 같다. 해가 뜨면 집에서 나와 일을 한다. 그래서 '날'이고 '해'이다. '뫼'는 '모+이'로 모든 것이 모여있는 것이 바로 '뫼'이다. 한자 '산山'은 모양을 본뜻 것이고, 한국사람에게 '뫼'는 모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사람이 생각하는 '山'과 한국사람이 생각하는 '뫼'는 같은 대상을 가르키지만 관점은 크게 달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선생님은 뉴튼의 법칙을 말하며 강의를 마무리하셨다. 과학의 일반법칙을 대표하는 뉴튼의 법칙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진다. 1. 관성의 법칙, 2. 가속도의 법칙, 3.작용-반작용의 법칙이다. 선생님은 일찍이 이 법칙을 인문학 법칙으로 재해석 하셨다. 모든 사물은 힘을 갖고 있기에 관성의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 우리 눈앞에 고정되어 있는 사물도 우주안에서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우주에서 볼때 지구는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고 있기에 지구 안에 있는 사물과 사람도 지구와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다만 함께 움직이기에 고정된 것처럼 보일 뿐이다.
두번째 가속도 법칙은 서양말, 중국말과 관련이 깊다. 'I go to school'은 말하는 사람이 'I'에 힘을 가한 것이다. 그래서 'I'는 'school'을 향해 가속도를 갖게 된다. 반면 세번째 작용-반작용 법칙은 한국말에 가깝다. "나는 학교에 간다"라고 말하면 '나'와 '학교'는 서로 작용과 반작용 관계가 된다. 한국말은 '내가 학교에 가는 것'을 마치 나와 학교가 함께 '간다'라는 일을 벌이는 것처럼 말해지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자연과학인 만유인력의 법칙과 인문학 법칙이 유사하다는 깨달음을 얻고 너무 기뻐서 선생님의 선생님을 찾아뵙고 이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당시 이야기를 듣고 계셨던 선생님은 병상에 누워계신 상태였다고 하며 과거를 회상하셨다.
말그림놀이
디자인학교 선생님이자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 작가님은 수업을 참관하시고 이 수업은 모든 예술가와 디자이너가 반드시 들어야 하는 수업이 될 것 같다며 격려하셨다. 나 또한 강의를 기획하기 전 최봉영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디자이너들이 한국말에 눈을 뜨면 디자인 작업에 특히 한글 타이포그래피에 큰 영감을 줄리라 확신했다. 게다가 디자이너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에 비교적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 최봉영 샘의 급진적인 이야기에 별로 반감을 가지지도 않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디자인 학교에서 최봉영 선생님 강의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위에 있는 글씨는 2000년대 광고 아트디렉터로서 활약하신 김호철 선생님의 글씨다. 김호철 선생님은 디자인학교 2기에 입학해 이 강의를 듣고 있다. 강의가 끝나면 인상깊은 낱말과 다발말을 독특한 글씨로 기록하신다. 아래 그림은 요즘 선생님 글을 포스터 이미지로 바꾸는 김재민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너무 멋지고 반가워 소개한다. 김재민 디자이너는 페이스북에서 선생님의 글을 읽고 이 작업을 시작한듯 싶다. 그의 페이스북에 가면 여러 포스터들이 있는데, 앞서 '뫼 山'를 예시로 들었기에 '뫼'를 표현한 것을 가져왔다. 앞으로 이런 작업들이 더 많아지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