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강의에서 말글놀이를 강조했지만 이번주는 글말놀이를 해야 할듯 싶다. 이번 강의는 이례적으로 선생님이 강의 원고를 작성하셨다. 그리고 이 원고를 읽고 푸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원고는 두개다. 하나는 공자, 노자, 부처 등 축의 시대 성인들에 대한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에 대한 내용이다.
성인들의 말씀
사람의 감정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된다. 좋음과 싫음. 이를 생물학에서는 접근과 회피라고 말한다. 좋으면 접근하고 싫으면 회피하니까. 좋은 감정은 즐거움과 기쁨이다. <논어> 첫구절에도 즐거움과 기쁨이 강조된다. '깨닫고 익히면 기쁘고(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친구가 찾아오면 즐겁다(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싫은 감정은 괴로움과 슬픔이다.
사람은 괴로움보단 즐거움을, 슬픔보단 기쁨을 원하기에 '생각과 말'로서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때문에 축의 시대 성인들은 모두 '생각과 말'을 중요시여겼다. 특히 '말'은 곧 사람의 생각을 표현하는 사무침(소통)이기에 더욱 특별하게 묻고 따져볼 필요가 있었다. 이런 점에서 공자, 노자, 부처, 소크라테스, 예수는 모두 '말'을 중심에 놓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묻고 따진 분들이라 볼 수 있다. 이분들은 아주 넓고 높고 깊게 '말'을 묻고 따졌기에 후대의 사람들은 이분들의 '삶'과 '말'을 보편적 잣대로 삼았다. 그래서 이 분들은 성인이 되었고, 이 분들의 말은 고전이 되었다. 덕분에 2500년 동안 이분들의 말에 각주가 길게 달렸다.
축의 시대 성인들은 각자의 말을 갖고 말에 대해 묻고 따짐으로서 무엇이 좋고 싫은 것인지 섬세하게 무리지어 구분했다. 그런데 공자와 부처, 소크라테스 등 성인들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살았기에 '말'이 서로 달랐다. 그래서 당연히 말에 대한 태도도 다를 수 밖에 없었다.
공자는 사람들이 뛰어난 조상들이 남겨준 바른 말을 가지고 생각을 바르게 함으로써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일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공자는 사람들이 바른 말을 가지고 바른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가리키는 낱낱의 이름을 바르게 해야 한다고 보았다. 공자는 이러한 것을 “이름을 바르게 하는 일(=正名)”이라고 불렀다.
일단 공자는 '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사람은 말로서 생각하고 말로서 소통하며 살아간다고 믿었다. 그래서 공자는 '말'을 통해 혼란스러운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공자는 특히 '뛰어난 조상들'이 남겨준 말에 주목했다. <서경>과 <시경>에 나오는 말이 뛰어난 조상들이 남겨준 말이다. 이 말들을 바탕으로 삼고 모범으로 여기면 '좋음'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자의 사상은 '정명正名'이란 말로 잘 요약된다. '正'은 한국말로 '바르게'이다. '정명'이란 말로서 주어진 '名'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공자는 '名'을 중요시 여겼기에 우리는 '정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名'이 무슨 뜻인지 또렷하게 알아야 한다. 한국사람들은 '名'을 '이름'으로 풀어 '이름 名'이라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사람에게 '名'이 무엇이고 한국사람에게 '이름'이 무엇인지 바탕치기를 할 필요가 있다.
한자로 '名'은 '저녁 夕'과 '입 口'의 조합이다. 왜 중국사람들은 '이름'을 '저녁에 하는 말'로 여겼을까? 낮에는 밝아 사물이 보인다. 소통하기 위해서 사물을 직접 가르키며 이것, 저것이라 말해도 된다. 하지만 밤에는 어두워 사물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 저것을 가르킬 수 없는 상황이다. '책'이니 '임금'이니 '물'이니 사물의 이름을 말해야만 한다. 저녁(夕)에는 말(口)로 하는 이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名'이 된 것이다. 그럼 한국말에서 '이름'이란 무엇일까? 한국말 이름은 '일컫다'이다. 사물을 어떤 소리로 일컬어 말한 것이 '이름'이다. '일컫다'는 '일같다'와 바탕을 함께 한다. '일같다'는 '일갖다'이다. 즉 '이름'이란 어떤 대상이 갖고 있는 일과 꼴이 같은 것을 일컬어 말한 것이다.
중국사람에게 '名'은 저녁에 하는 말이고, 한국사람에게 '이름'은 사물의 일과 꼴을 일컬은 말이다. '저녁에 하는 말'보다는 '일컬음'이 훨씬 더 '이름'의 본래 바탕뜻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긴 '일컬음=이름'을 그림으로 표현하기란 참으로 곤란하다는 점에서 '名'이라 그린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신神'처럼 누구도 모르는 것은 아무렇게나 그려도 되기에 그리기 쉽지만, '개'처럼 누구나 아는 것은 아무렇게나 그릴 수 없기에 그리기 어렵다. 그래서 일상에서 누구나 말로서 이해하고 있는 것을 문자로 그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아무튼 어떤 대상을 '이름'으로 부를때는 그 대상이 갖고 있는 기능과 모양 나아가 역할을 주목하게 된다. 특히 사람의 경우는 임금, 신하, 부모, 자식 등 기능이나 역할에 이름을 부여한다. 그래서 공자는 '정명'을 말하면서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를 강조한다. '군군'이란 '군주의 이름을 바르게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군군신신부부자자'는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자식은 자식답게"이다. 이 말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이름의 역할에 걸맞게 행동하면 평화가 온다는 의미다. 즉 공자는 '名=이름'을 바탕으로 세상의 평화를 도모한 것이다.
공자 이후 수천년동안 이런 전통속에 살아간 중국사람들은 여전히 '이름=역할'을 중요시 여긴다. 한번 이름이 정해지면 그 이름=역할 안에 자신을 가둔다. 세계의 모든 공산당이 몰락했음에도 여전히 중국 공산당의 권위가 유지되는 것도 이런 측면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또 중국과 같은 거대한 국가에서 혼란없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자가 정한 이름의 규율을 지켜야만 한다. 최봉영 샘은 <한국사회의 차별과 억압>에서 중국에는 존비어체계가 없었기 때문에 위아래의 '예禮=규범'가 갖춰지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유학'과 같은 질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셨다. 공자의 유학은 혼란스런 중국의 정치 상황에서 규범(禮)을 확립하기 위해 이름(名)의 역할을 바르게(正) 하는 '정명(正名)'사상을 주장했던 것이다.
노자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말이 무엇인지 묻고 따져서, 말로써 이를 수 있는 것과 이를 수 없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고 보았다. 노자에게 말은 어떤 것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고자 하는 임자의 뜻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이런 까닭으로 노자는 사람이 어떤 것을 “도(道)”라고 말하게 되면 그것은 이미 “도(道)”라는 것이 아니고, 어떤 것을 “이름(名)”으로 말하게 되면 그것은 이미 “이름”이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자는 공자와 달리 '이름'을 믿지 않았다. 이름은 어떤 대상의 가능성 중에 하나를 가르킨다. 어떤 사람이 '신하'라고 불린다고 해서 그 사람은 영원히 '신하'인 것은 아니다. 그는 아버지일수도 있고 자식일수도 있다. 사람은 하나의 이름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이름을 가질 수도 있다. 게다가 '신하'가 쿠테타를 일으켜 '임금'이 될 수도 있다. 이렇듯 '이름'이란 어떤 대상이 가진 전체 중 일부의 일과 꼴을 일컫은 말일뿐이다.
노자가 '이름'만이 아니라 '말'조차 온전히 믿지 않았다. 말 또한 이름처럼 사물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사실 어떤 사물이 말로 불려지기 이전에 그 사물은 그냥 절로 존재했다. 말은 사람이 경험을 어떤 소리에 가둔 것에 불과하기에 우리가 미처 경험하지 못해 말로서 담아내지 못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사실 말은 세상의 아주 작은 일부만을 가르킬 뿐 대부분은 여전히 그냥 절로 존재한다.
노자 <도덕경>의 첫 문장인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이란 이런 노자의 뜻을 잘 요약한다. 이 문장을 풀면 "'도=대상'를 '도=소리'라고 말한다고 '도=대상'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듯 '이름=대상'을 '이름=소리'로 말한다고 '이름=대상'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가 된다.
노자는 이 문장을 통해 '말'과 '이름'이 가진 한계를 지적했다. 하지만 노자 또한 말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 말을 사용한다. 이것은 상당한 모순이다. 차라리 비트겐슈타인처럼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라"라고 끝냈다면 모를까. 노자는 저 말을 이해시키기 위해 또 많은 말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자를 읽고 '허무하다' '허전하다' '공허하다'라는 말을 하곤한다. 무의식중에 이런 모순을 느꼈기 때문일까?
하지만 노자는 말로서 담아내지 못한 것들이 동시에 함께하고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사람의 생각에 한계가 있을수 있음을 상기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요즘 환경문제의 근본원인은 사람이 세상을 너무 사람 중심으로만 보았기 때문이다. 지구에는 사람말고도 수많은 생명들이 함께 살아간다. 동물만이 아니라 나무와 곤충, 공기, 바위 등만이 아니라 바이러스처럼 우리가 미처 감각으로 경험하지 못한 수많은 생명체가 동시에 존재한다. 한때 나는 환경공부를 하면서 이런 인식을 하기 위해 <노자>와 <장자>를 읽었다. 노자는 어떤 측면에서는 허무할 수도 있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절실하다.
공자는 말과 이름을 중요시여겼고, 노자는 말과 이름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래서 중국사상에서 공자와 노자는 늘 서로 대비되어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한다. 덕분에 중국사람들은 말을 잣대로 삼아 말의 안쪽과 말의 바깥쪽을 모두 인식할 수 있었다.
부처는 사람들이 말로써 생각한 것을 바탕으로, 함께 잘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는 말로써 어떤 것을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어떤 것의 본모습을 바르게 깨달아야 한다고 보았다. 부처에게 말은 어떤 것을 가리키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것을 바르게 깨닫기 이해서는 말을 넘어서 나아가아야 한다고 말한다. 부처는 바르게 깨닫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 나날의 삶이 이루어지는 바탕인 처자식과 이웃과 나라와 세상을 버리고 홀로 즐거움과 괴로움, 기쁨과 슬픔의 바탕을 마주하여 좋아함과 싫어함을 버려야 한다. 사람들이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는 것은 모두 비어 있는 것에서 비롯하는 비어 있는 것이 지나지 않는다.
흔히들 중국사상을 '유불선'이라고 말한다. '유'는 공자를 따르는 사람들이고 '선'은 노자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불'은 부처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공자와 노자를 살폈으니 이번엔 부처를 살펴보자. 부처는 노자처럼 말과 이름의 한계를 깨달았다. 노자와 부처는 모두 말로서 담아내지 못하는 것들을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노자는 말 이전에 있는 그냥 절로 하는 것들을 주목했다면, 부처는 말로서 생각하는 것의 한계를 주목했다. 부처는 사람은 말의 한계에 머물지 말고 말 넘어에 있는 본질에 이르러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려면 일단 말을 떠나야 한다. 말은 경험에서 비롯되기에 말을 떠난다는 것은 곧 경험을 떠난다는 의미다. 세상의 말과 경험을 버리고 가리고 등져야 비로소 내 안의 깊은 존재에 다다르게 된다. 그러면 말=경험에서 오는 고통과 근심이 사라지게 된다. 즉 부처는 괴로움과 슬픔 등 고통과 근심의 근본 원인이 '말'에 있다고 본 것이다.
선생님은 깨달음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보셨다고 한다. 가령 내가 세상을 가려서 말=경험을 잊고 끝내 깨달음을 얻어 고통과 근심이 살아졌다고 치자. 그러면 결국 나만 홀로 세상에서 벗어난 것이 아닐까. 나와 함께했던 세상은 여전히 말과 경험에 의한 괴로움과 슬픔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나만 홀로 깨닫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선생님은 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홀로 깨닫는 것은 허무함을 느끼셨다고 한다. 게다가 불교의 가르침 또한 말로서 행해진다. 노자의 경우처럼 말을 넘어야 하는 상황에서 계속 말에 집착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이다. 그래서 불교의 이론도 도교의 이론처럼 공허해지는 경우가 있다.
'저만-저들-남들-것들'로 구분된 선생님의 도덕성 발달이론에 적용하면 부처는 '저만'의 깨달음이고, 공자는 '저들과 남들'에 대한 깨달음이고, 노자는 '것들'까지에 이르는 깨달음이다. 그래서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부처와 공자, 노자이 모두 모여야 전체 프레임이 완성된다. 그래서 중국사상은 유불선 모두가 중요하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함께 써온 말을 묻고 따져서 바른 말을 가지고 바르게 생각함으로써,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일을 더 낫게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바른 말을 가지고 바르게 생각하게 되면, 眞理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예수는 사람들이 말로써 생각한 것을 바탕으로, 함께 잘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나날이 주고받는 말을 넘어서, 전지전능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말을 따라야 한다고 보았다.
소크라테스와 예수는 공자처럼 모두 말을 믿었다. 공자는 조상의 말이 진리에 가깝다고 여겼고, 예수는 하느님의 말에 진리가 숨겨져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공자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을 말하며 뛰어난 조상들의 말을 믿고 따랐다면, 예수는 하느님의 말을 믿고 따랐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쓰는 말을 묻고 따졌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과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으며 말 속에서 진리를 찾으려 했다. 노자와 부처와 달리 말에 '진리'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소크라테스와 예수에 대한 이야기는 삼가해야 한다고 하셨다. 공자, 노자, 부처와 달리 이 분들은 우리 사회에서 강력한 믿음체계를 갖추고 있다.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와 예술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 선생님이 직접 쓰신 글로서 대신한다.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258967642219081&id=100043175420677
성인들과 거리두기
정리하면 공자와 소크라테스, 예수는 말을 믿었고, 노자와 부처는 말의 한계를 지적했다. 축의 시대 성인들은 모두 말을 중심으로 말안과 말밖의 문제를 묻고 따져 사람들의 생각을 자극했다. 이분들의 통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분들의 말씀을 전혀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성인'이라 부른다.
요즘은 '거리두기'가 중요하다. 선생님은 우리시대는 물리적 거리두기만이 아니라 정신적 거리두기도 필요하다고 하셨다. 정신적 거리두기란 지난 2500년 동안 우리의 정신을 지배해온 축의 시대 성인들과의 거리두기이다. 축의 시대 성인들의 말씀은 인문학의 뿌리이자 줄기이다. 그런데 이 뿌리와 줄기에서 멀어져야 한다니... 왜 그래야 하는지 지금부터 살펴보자.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원하는 것은 '오래 사는 것'이다. 현재 지구에는 약 70억명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인구가 이렇게 늘어난 이유는 사람들이 오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큰 변고가 없으면 80세를 훌쩍 넘어 100세를 바라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인은 오랜 숙원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인의 숙원은 성인들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 경험에서 얻은 현대 기술력 덕분이다. 오래된 고전과 말씀은 보편적 생각에 다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주진 못한다. 결국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문제는 축의 시대 성인들이 살아가던 시대와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때와는 다른 새로운 관점이 요구된다.
지난 200년 동안 세상은 급격하게 변화했다. 축의 시대 성인들의 말씀은 농경사회에서는 나름의 해결책을 주었지만 산업사회에서는 별반 도움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말 때문이다. 산업혁명 등 각분야의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면서 사람들의 말도 급격히 변화했다. 지난 수천년동안 이어진 말 중 상당수가 새로운 말로 대체되었다. 그래서 우리 시대에 좋음과 싫음, 즉 즐거움과 기쁨을 얻고 괴로움과 슬픔을 피하기 위해서는 우리 시대에 쓰여지는 말을 다시 묻고 따져보아야 한다.
성인들의 말씀은 여전히 유용하다. 하지만 과거처럼 성인들의 말씀에 각주를 다는 것만으로 현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성인들과의 거리두기를 통한 새로운 인문학이 요구된다. 여기서 '거리를 둔다'는 것은 버린다는 것이 아니다. 성인의 말씀 안에 나를 가두어서는 성인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성인들의 말씀이라는 단단한 껍질을 벗겨 새롭게 나아가야 비로소 성인의 말씀에 의미가 생긴다. 성인의 말씀에서 벗어나 그 말씀의 맥락을 보아야 한다. 말씀에서 벗어난 다는 것은 스스로 묻고 따지기를 시작했다는 의미다. 믿고 따르기가 아니라 묻고 따지기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실 묻고 따지는 행위는 성인들과 거리를 두는 것만이 아니라 나 자신과 거리를 두는 것에 가깝다.
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자가 주장한 '극기복례(克己復禮)'가 떠올랐다. 나를 극복하고 분별의 예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또 아우구스티누스의 '메타노이아(Metanoia)'도 떠올랐다. 가던길을 새롭게 묻고 따져 영적인 전환을 이룬다는 의미다. 사람은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어 살아가는 존재다. 여기서 '느끼고 아는 것'은 나와 가까운 것이고, '바라고 이루는 것'은 나와 거리를 두는 것이다. 느끼고 아는 것을 바라고 이루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 대해 거리를 두어 스스로를 묻고 따지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알았던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결국 성인들도 역시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극복했다. 새로운 문제해 당면해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 '나 자신과 거리두고', '믿고 따르던 종교'와 거리를 두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남으로서 새로운 관점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이렇듯 성인들의 가르침 또한 '정신적 거리두기'라는 점에서 우리는 그 가르침을 따라 '성인들과 거리두기'를 시작해야 한다.
말과 어울림
성인들의 말씀에 대해 묻고 따지는 거리두기가 가능한 이유는 문자 덕분이다. 말씀이 문자로 기록되었기에 사람들은 오랜시간에 걸쳐 성인들의 말씀을 묻고 따질 수가 있었다. 반면 한국말은 묻고 따지는 거리두기기 없었다. 한국말은 문자로 기록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말은 말해지는 동시에 증발되기에 글로 써놓지 않으면 거리두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지금 한국말 거리두기가 가능한 이유는 '한글'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년 한국말이 한글로 잘 차려졌기에 우리는 비로소 한국말을 묻고 따질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은 한국말을 금광이라 여긴다. 한국말에서 기존 성인들과 다소 다른 새로운 관점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관점들은 모두 우리시대에 새롭게 요구되는 것들이다. 우리는 한글로 쓰여진 한국사람들의 말씀을 주목해야만 한다. 그 이유는 한국말에 숨겨진 새로운 관점을 통해 한자와 알파벳에 숨겨진 관점과의 상호적 거리두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글과 한자, 알파벳의 기록들이 서로 거리를 두는 글말놀이를 통해 우리는 현재 당면한 문제들을 새롭게 풀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어울림' 바탕치기를 하셨다.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한 사람은 그 자체로 '온'이고 '알'인 상태고, 다른 한 사람도 그 자체로 '온'이고 '알'인 상태다. 각각의 낱낱으로 존재하면서 더불어 살아간다. 둘은 동시에 존재하고 함께 살아가지만 서로 만나는 것은 항상 지난 상태이다. 서로가 서로를 감각으로 느낄때는 항상 늦기 때문이다. 앞선 강의에서 '늧=느낌'은 '늦다'와 바탕이 같다고 말했다. 자동차 사고에서 그렇듯 느꼈을때는 조치를 취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이다.
느낌=늦음은 두 사람의 거리와 상관이 있다. 빛은 초당 30km로 움직인다. 두 사람의 사이가 2m라면 별 상관이 없다. 태양에서 떠난 빛은 지구에 약 8분이 걸린다. 가령 두 사람이 태양과 지구의 거리만큼이나 멀리 있다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보았을때는 이미 8분이 지난 상황이다. 8분은 길다. 8분 사이에 다른 사람에게 무슨일이 일어났을까? 이미 느꼈을때는 늦은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는 동시적이지 않고 누적적이다. 둘의 관계는 시간이 누적됨으로서 깊어진다. 이 누적된 시간은 감각이 아닌 생각에 축적된다. 이 축적된 생각이 나의 시간이다. 사람은 이 시간을 줏대로 삼아 상대방을 만나는 것이다.
한국말에서 시간은 '때' 혹은 '께'이다. 한국말의 가장 큰 특징은 '함께함'이다. 한국말은 함께하는 낱말들을 먼저 나열하고 맨 뒤에 함께함을 풀어낸다. 그래서 한국사람은 '함께함'을 중요시여긴다. 한국말 '어'는 이쪽과 저쪽 나아가 여러쪽이 함께 '있는' 상태이기에 함께성을 의미한다. 한국말 '울'은 이쪽과 저쪽 혹은 여러쪽이 함께 '하고' 있는 상태이기에 함께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함깨성+함깨함=어+울='어울'이 된다.
한국말에서 '울'은 함께하고 있는 것들에 많이 쓰인다. '시울'은 눈시울이나 입시울처럼 서로 함께하는 신체에 해당되는 말이다. 저울을 양쪽이 함께한다. 거울, 개울, 터울 등의 말도 모두 이쪽과 저쪽이 함께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거울에 내 몸이 비친 모습을 보려면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 개울도 물 사이가 가까운 상태다. 멀면 개울이 아니라 강이나 바다가 될 것이다. 이렇듯 서로 어울리려면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가까워야만 한다.
신체적 가까움은 시공간의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정신적 가까움 즉 생각과 말에 의한 가까움은 시공간의 한계가 없다. 그래서 '말'과 '글'의 세계는 수천년 이전의 성인들과 수천년 이후 사람들이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세계다. 특히 '말'은 수많은 사람들의 관점이 수많은 시간동안 누적된 매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로서 미리 생각해 알고 바라는 것을 믿고 행동해 삶을 이루어간다. 때문에 우리 시대의 말에 대해 묻고 따진다는 것은 수천년 아니 수만년전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고, 미래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의 어울림이다.
아래 글 역시 선생님이 직접 쓰신 '어울림' 이야기이다.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260338252082020&id=100043175420677
사람의 살림 살이
나에게 있어 한살림은 각별하다. 나는 원주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원주에 있었다. 원주는 한살림 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한살림의 생협에 저금하고, 한살림 급식을 먹었다. 가끔 한실림 본산인 밝은신협에서 결혼식을 할때면 친구들과 몰래 들어가 국수를 먹었다. 관계자들은 알면서도 기꺼히 받아주고 챙겨주었다. 심지어 한살림 생협 창구에 있던 누나를 흠모하기도 했다. 정작 그땐 몰랐다. 30대 중반 그린디자인 공부를 하면서 비로소 내가 한살림의 그늘 아래서 자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살림은 단순히 친환경 농작물을 판매하는 협동조합이 아니다. 한살림 운동을 시작한 장일순 선생의 강연을 읽으면서 한살림 운동은 자본주의를 대체하기 위안 대안 운동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9년은 한살림 선언 30주년이었다. 작년 나는 한살림 선언문을 몇차례 정독했다. 이번 강의에서 선생님이 '살림'을 다루실때 나는 한살림 선언문이 떠올랐다. "선언문에 살림 이야기가 있었나?" 다시 찾아 읽어보니 아풀싸... 한살림 선언문에는 생명, 생태, 문명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데 정작 '살림'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생태운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살림'이란 말을 많이 접했을 것이다. '살림'은 한살림만이 아니라 원불교와 천도교 나아가 동학 사상에 있어서도 중요한 개념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자생된 종교와 운동 모두 '살림사상'이라 불러도 무방이다. 그런데 나도 그들도 그 어디에도 정작 한국말 '살림'의 바탕이 무엇인지, '사람'의 바탕이 무엇인지, '살이'의 바탕이 무엇인지 묻고 따진 사례를 찾기 어렵다.
사람은 '살려서 살아가는 임자'다. 사람을 살리려면 살리는 힘이 필요하다. 살리는 힘은 바로 '살림'이다. 사람은 살리는 힘을 갖고 있는 존재가 살려주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 나를 살리는 힘을 갖고 있는 존재는 나를 낳아주고 길려준 부모와 가족들, 친구들, 깨끗한 물과 공기, 지구에 함께 생존하는 생명체들, 태양과 달, 의식주와 같은 사물들, 내 몸에 있는 유익한 세균들과 바이러스 등 나와 함께하는 여러 존재들이다. 이 외에도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존재들이 나를 살려준다. 그래서 사람은 단순히 살아가는 생명체가 아니라 누군가와 무언가에 의해 '살려서 살아가는' 생명이다.
사람은 살림을 갖고 살아가는 일을 한다.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기에 함께 살아갈 갖가지 것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살아가는 임자)은 살림(살리는 힘)을 갖기 위해 갖가지 것들을 살리는 일을 해야만 한다. 이 일이 바로 '살이'이다. 그래서 '살이'란 '살아가는 일'이다.
이제 사람과 살림, 살이의 의미를 알았으니 '사람의 살림 살이'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위의 내용을 종합하면 '사람의 살림 살이'란 사람들이 살리는 힘을 갖고 있는 갖가지 것들을 살려서 함께 살아가는 일은 하는 것이다.
살림 쓸것(자원), 살림 밑천(자본), 살림 쓸돈(자금)
사람의 살림 살이가 이루어지려면 살림에 쓸것이 필요하다. 살림 쓸것은 '살리는 힘을 갖고 있는 쓸모있는 것'이다. 살림 쓸것은 크게 3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태양, 하늘과 땅, 공기처럼 지구에 살아가는 생명은 누구나 저절로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저마다 따로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과거 사람들은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했다. 사냥이나 채집, 농사를 통해 음식을 확보하고 누에에서 실을 빼서 옷을 짓고, 짚을 묶어 집을 지었다. 세번째는 시장에서 사고파는 일을 통해 마련하는 것이다. 스스로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누군가가 만든 것을 가져와야 한다. 남의 것을 함부로 가져올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만든 것중 상대가 원하는 것과 바꾸어야 한다. 이렇듯 교환에 의한 마련하는 것이 바로 사고파는 일이다. 그리고 시장은 사고파는 일을 따로 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
'살림 쓸것'을 한자로 쓰면 '자원'이다. 자원 중 절로 가질 수 있는 것은 자연물이고, 필요한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은 용품, 물품이고, 시장에서 사고파는 것은 상품이다. 사람은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 수 없기에 반드시 시장에서 사고파는 일을 통해 필요한 물건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가진 물건도 남들에게 필요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물건이 있어야 시장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필요한 물건을 만들려고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분업화가 이루어졌다. 어떤 사람은 농사를 잘 짓고, 어떤 사람은 음식을 자하고, 어떤 사람은 물건을 잘 만들고, 어떤 사람은 짐을 잘 옮기고, 어떤 사람은 거래를 잘 조율했다. 이 분업화가 점점 고도화 되면서 시장의 기능은 더욱 활성화 되었다.
인류의 초기 시장은 침묵교역이었다. 일정한 공간에 물건을 가져다 놓으면 필요한 사람이 어떤 물건을 갖고 와서 바꿔 가는 것이다. 가령 물고기가 있으면 과일을 놓고 물고기를 가져가는 방식이다. 이 과정은 서로 대면하지 않고 침묵과 양심에 의지해 이루어졌다. 이후 교역은 집단의 대표가 직접 대면해 교환하는 방식이 되었다. 교역이 활성화되면서 정기적으로 교환할 장소가 요구되었고 교환을 위한 매개체도 요구되었다. 교환한 장소는 앞서 언급한 시장이고, 교환의 매개체는 돈이다.
돈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지폐나 화폐가 아니다. 한국말로 '돈'는 '돌다'와 바탕을 함께한다. 돈은 교환의 매개체로서 시장을 돌리는 역할을 한다. 초기에 돈은 곡식이나 옷감, 가축 혹은 사람과 같은 이동가능한 물건이었다. 곡식과 옷감의 경우 이동가능하고 쪼개기도 쉽기에 오랜시간 돈의 역할을 했다. 그러다 금과 은 같은 돌, 마노조개와 같은 희귀한 물건들이 돈의 역할을 대체했다. 금과 조개는 그 자체로 쓸모는 없었지만 시장을 돌리는데 유용한 매개체가 되었다. 특히 금과 은의 경우 희귀했기에 지배층의 입장에서 볼때 사람과 시장을 통제하는 용도로서 아주 유용했다.
집단과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지배층은 금과 은처럼 무거운 물건이 아닌 좀 더 가볍고 손쉽게 사용하며 보관가능한 새로운 교환 매개체를 찾았다. 11세기 송나라에서는 지폐와 같은 화폐를 발행했다. 이 화폐를 갖고 있으면 시장에서 어떤 물건과도 교환이 가능했다. 이것을 지배층이 보증해 주었다. 하지만 지배층은 이 화폐의 양을 조절하지 못해 시장의 위기를 초래하곤 했다. 이 위기는 집단 전체의 위기로 이어졌기에 결국 지배층은 시장을 강력하게 통제해야만 했다. 그래서 중국 등 동아시아문명의 시장은 19세기까지 지배층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었다.
다시 살림 이야기로 돌아오면, 집단과 시장이 커지면서 점차 사람의 살림 살이는 스스로 해결하기 보다는 시장에서 교환을 통해 마련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그러려면 화폐와 같은 돈이 필요하다. 앞서 말했듯이 돈과 화폐는 다르다. 화폐는 돈의 한 종류일 뿐이다. 돈의 종류는 화폐만이 아니라 곡식과 옷감, 가축, 땅, 조개, 금과 은, 사람 등등 여러가지가 있다. 이 돈들은 모두 사람이라면 누구나 필요한 살림이기에 시장에서 교환이 가능한다. 필요한 물건이 있는데 가진 것이 없으면 몸으로 때워야 한다. 그래서 내가 가진 힘과 체력도 돈이 될 수 있다. 이렇듯 시장에서 교환가능한 사물들을 통틀어 '자본'이라고 말한다.
한국말에서 '자본'에 해당되는 말은 '밑천'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살림 밑천'이다. 살림 밑천은 사람들이 사고 파는 일을 통해서 살림에 쓰일 것을 마련하기 위해 쓰는 돈을 말한다. 시장이 활성화 될수록 이 '살림 밑천=돈=자본'은 더욱 중요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리 살림 밑천을 확보해 두어야 한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유용한 살림 밑천은 아파트와 같은 '부동산'이다. 한국사람들은 평생동안 모은 돈을 부동산에 뭍는다. 그래서 한국사람들 자본의 80%가 부동산에 몰려 있다.
부동산은 한국의 특수한 경우고, 사실 우리 시대 가장 유용한 자본은 바로 '화폐'이다. 정부가 보증하는 화폐는 송나라때 시작했다. 이후 여러나라에서 거듭 발전해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형성시켰다. 현대사회는 시장이 고도로 발달되었기에 현대 학문에서 경제학은 가장 중요한 학문이다. 이 경제학의 최대 관건은 생산과 소비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이 안정을 위해 가장 중요한 지표는 '가격'이다. 이 가격은 돈과 화폐에 의해 결정된다. 화폐의 경우 정부가 마음껏 찍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늘 위험하다. 그래서 돈처럼 희귀한 물건에 의해 화폐의 양이 결정된다. 이를 경제학에서 금본위제, 은본위제라고 말한다. 19~20세기 주요 국가들은 합의를 통해 금의 양에 근거해 화폐량을 조절했다. 그러다 1970년대에 이르러 미국이 이 약속을 깨고 금이 아니라 달러를 기준으로 삼았다. 미국은 달러를 근거해 각국의 화폐를 통제하려 하였다. 이것이 바로 환율 체제이다. 이때문에 현대 사회는 '돈'이 아니라 '화폐'가 더 중요하게 되었다.
한국말로 '화폐'에 해당되는 말이 '쓸돈'이다. 살림 쓸돈이라고 할까. 이를 한자어로 하면 '자금'이다. 자금의 '금'이 '쇠 金'라는 점에서 금은과 같은 금속 물질을 가르킨다. 본래 화폐는 금화나 은화와 같은 금속이었으니까. 그리고 현대사회 '살림 밑천=자본'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는 '살림 쓸돈=자금'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금이 있어야 한다. 특히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자본주의
현대사회는 시장을 고도로 발달시켜 사고파는 일을 최대한 활성화시킨 체제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에서 산업혁명 이후 사회와 시장은 역전되었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시장이 사회통제력 아래에 있었는데, 지금은 사회가 시장통제력 아래에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사람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사람보다 자본이 더 중요해졌다. 사람을 살리는 힘의 밑천이 자본인데, 이제는 자본을 살리는 힘의 밑천이 사람이 된 것이다. 참으로 희안한 상황이다.
그래서 현대사회를 '자본주의'라고 말한다. '주의'는 영어로 '~ism'이다. 일본사람들은 'ism'을 '주의'라고 번역했다. 선생님은 'ism'을 한국말로 '임자 삼기'라고 번역하셨다. 에고이즘은 에고를 임자로 삼기이고, 민주주의는 민중을 임자로 삼기, 물질주의는 물질을 임자로 삼기이다. 그러면 자본주의는 자본을 임자로 삼기가 된다. 나는 이 번역이 괜찮은데, 선생님은 찜찜하셨는지 '자본을 임자로 삼기'가 아니라 '자본을 보람으로 삼기'로 하자고 하셨다. 자본은 살림 밑천이니 자본주의는 '살림 밑천을 보람으로 삼기'가 된다.
자본주의는 시장이 중요하다. 시장은 크게 두가지 행위자가 있다. 자본생산자와 자본소비자이다. 자본생산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분업'이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바늘생산을 예시로 들어 분업화의 생산 효율성을 강조했다. 분업으로 생산하면 수십배가 아니라 수백수천배 생산 효율성이 높아진다. 그럼 왜 이렇게 많이 만들어야 할까? 자본생산자가 분업으로 물건을 많이 만드는 이유는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팔기' 위해서다. 많이 만들었는데 못팔면 자본생산자는 망한다. 그래서 <자본>에서 마르크스는 자본가는 '목숨을 건 도약'을 한다고 말했다. 분업으로 대량생산을 한 자본생산자는 목숨을 걸고 팔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생산품을 시장의 물건이란 의미의 한자어 '상품'이라고 말한다.
분업과 상품은 자본주의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 분업으로 만들어진 상품들은 시장에 진열되고 자본소비자들은 숙고의 과정을 거쳐 맘에 드는 상품을 고른다. 분업의 효율성이 높으면 상품의 가격이 떨어져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에 더 많은 자본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분업으로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어떤 상품을 매력적으로 만들어내냐에 따라 자본생산자의 생사가 갈린다.
재밌는 점은 자본생산자와 자본소비자가 딱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본생산자는 자본을 생산하고 벌어들인 자금으로 상품을 소비한다. 즉 자본생산자는 곧 자본소비자가 된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자본'이라는 임자에 속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사회는 '자본주의=자본을 임자로 삼기'라도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자본생산자의 목적은 '독과점'이다. 독과점이란 시장의 왕의 되겠다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시장이 국가를 지배하는 체제이기에 시장의 왕이 된다는 것은 곧 세계의 왕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생산자와 자본소비자 모두 '독과점'을 목표로 살아가게 된다. 이를 위해 국가와 지식 등 공동체의 힘이 동원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 및 국가 중심체제이다. 개인과 국가는 기업을 앞세워 세계의 다른 개인 및 국가와 경쟁한다. 개인은 자신의 능력을 개발에 기업에 기여하고, 국가는 군사력을 갖고 기업의 밑천(자본)과 쓸돈(자금)을 보호한다. 경찰력은 국가 내 개인들의 밑천(자본)과 쓸돈(자금)을 보호한다. 이렇듯 현대 자본주의는 개인과 국가, 기업의 삼위일체 관계로 이루어진다. 이 중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둘도 무너진다. 기업이 실패하면 개인도 실패하고 국가도 실패한다. 또한 IMF 보았듯 국가도 실패하면 개인도 기업도 실패한다. 그래서 국가와 기업이 실패하지 않기 위해 상호적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반면 한두명의 개인은 실패해도 큰 무리가 없다. 자본주의에서 '개인=사람'은 자본의 한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류 사회는 자원과 자본, 자금을 마련하는 방식에 따라 사회구조가 달라졌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살림 살이는 아주 단순했다. 소규모 공동체가 그때그때 살림에 필요한 물건을 사냥하거나 채집하고 만들어 썼기에 딱히 시장이 없었다. 자본과 자금은 커녕 소유 개념조차 딱히 없었기에 단순하게 먼저 본 사람이 그것의 임자가 되었다.
신석기 농경시대가 오면서 먹고 남은 잉여생산물을 사고팔 여유가 생겼다.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특정기간에 수확한 생산물을 보관하는 과정에서 '소유'가 시작된다. 소유한 물품을 시장에서 상품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되면서 '소유'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그래서 이를 통제할 힘이 필요해졌다. 사회와 시장을 지배하는 사람들은 경쟁을 낮추기 위해 미리 자원과 자본, 자금이 누구의 것이 될 수 있는지 정해 놓았다.
소유의 기준은 크게 3가지이다. 먼저 '영역'이다. 지배자들은 특정 경계를 소유의 영역으로 긋고 이 경계 안의 모든 것들을 우리의 것이라 선언했다. 둘째는 '신분'이다. 영역안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경쟁을 막기 위해 신분을 구분해 미리 소유관계를 정한 것이다. 셋째는 '자본'이다. 사람이 살림 살이를 하기 위해서 당연히 살림 밑천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영역에 대한 지배력'은 국가의 군사력과 법적 강제력에 해당된다. 영역 지배력은 안과 밖의 문제로 안에 있는 모든 것들에 규범력이 발휘되는 가장 강력하고 근본적인 지배력이다. 영역지배력은 사람만이 아니라 동식물들도 같고 있는 지배력이다. 둘째는 '신분에 대한 지배력'은 위아래의 문제로 사람의 능력으로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다. 신분 지배력은 영역내 사람들을 대상으로 군인과 사제 같은 특정 계층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이다. 마지막 셋째는 '자본'은 이미 소유하고 있는 자원, 자본, 자금력이다. 이 지배는 수평적 관계다. 사실 자본력은 지배라기 보다는 서로 등가로 교환하는 관계에 가깝다. 하지만 자본을 많이 가진 사람이나 공동체는 이 자본력을 기반으로 사람이나 물건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이 세가지를 고루고루 두루두루 갖추어야 세계의 다른 국가들과 경쟁할 수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유명한 역사학자 E.H.카는 <20년의 위기>라는 책을 썼다. 이때 20년은 1919년 1차대전 종전과 1939년 2차대전 발발 사이의 20년이다. 이 위태로운 시기를 분석한 E.H.카는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력으로 세가지를 꼽는다. '군사력, 경제력, 설득력'이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세가지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세가지 지배력을 잣대로 삼아 인류 사회의 체제를 살펴볼 수 있다. 국가가 형성되기 초기 씨족사회는 주로 영역지배력에 기대어서 사람들의 살림 살이를 꾸렸다. 집단이 커지고 국가가 제대로된 구조를 갖추게 되면서 평등했던 씨족사회는 불평등한 신분사회가 되었다. 전쟁과 전투 과정에서 공을 세운사람, 국가형성에 크게 기여한 능력있는 사람들은 귀족이 되었다. 국가는 이 사람들에게 소유권을 크게 부여함으로서 다른 사람들의 소유를 크게 축소시켰다. 이는 국가의 경찰력과 군사력으로 보호되고, 때론 종교와 지식에 의한 설득력으로 보증되었다. 즉 전제왕권시대 국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살림 살이는 영토내 수직적 신분 질서에 따라 자원과 자본, 자금의 소유가 결정된 것이다.
18세기부터 산업혁명, 미국독립혁명, 프랑스혁명 등 각종 혁명들이 일어나면서 전통의 신분사회가 무너졌다. 이 흐름은 동아시아에까지 미처 20세기 초 한국의 신분체제도 무너졌다. 동아시아 신분제도를 무너뜨린 사람들은 서양사람들이다. 이들은 비록 군사력을 앞세우긴 했지만 이들의 목적은 영토가 아니라 자본에 있었다. 산업혁명으로 이미 자본화된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은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저렴한 원료 확보과 대량생산된 상품을 판매할 시장이 필요했다. 즉 서양 국가들의 목적은 영토와 신분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를 촉진할 자본시장 확보에 있었던 것이다.
동아시아의 자본주의
비록 200년전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서양 자본주의 국가들에 의해 강제로 시장을 개방하고 체제를 부정당했지만 21세기 초 현재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세계 자본시장를 호령하고 있다. 이미 한국과 중국, 일본, 베트남의 경제규모는 여타 다른 대륙의 경제규모를 크게 상회한다. 이는 일찍히 동아시아국가들이 자본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사실 동아시아는 영영지배력과 신분지배력의 체제아래서 자본지배력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7세기 당나라때부터 과거제도를 통해 사람자본 확충에 많은 힘을 기울여 왔다. 12세기 송나라에 이르러서는 과거시험에 누구나 응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신분제를 능력제로 바꾸었다.
이 제도는 고려와 조선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양반은 사대부를 주축으로 한다. 사대부는 혈통으로 이어받는 신분이 아니라 능력으로 인정받는 신분이다. 조선에서 양반은 3번 과정에서 낙방하면 향방으로 신분이 내려갔다. 일본의 경우 19세기 후반 메이지유신으로 사무라이 계급이 지배를 하게 된다. 사무라이 계급은 글보다는 칼에 능한 양반들이다. 능력있는 사무라이 사람자본이 일본을 지배하면서 일본의 오랜 신분제가 무너졌다. 이를 통해 일본은 단시간동안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 한국과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요즘은 베트남이 주목받는다.
베트남이 뒤늦은 이유는 공산주의 사회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정치는 미국 자본주의와 소련 공산주의의 냉전상태였다. 1차대전에서 패배한 러시아는 볼세비키 혁명에 의해 공산주의 체제를 구축한다. 공산주의는 자본지배력을 억제하고 영역과 신분지배력을 통해 수평적 자본배분을 추구한 정치체제이다. 하지만 수평적 자본을 분배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자본이 필요하다. 그래서 공산주의 국가들은 초기 수직적 질서를 통해 민중들에게 자본생산을 압박했다. 앞에선 수평을 앞세우고 뒤에선 수직을 더 공고하게 만든 것이다. 이 기묘한 질서는 결국 생산력의 약화로 20세기 말 몰락했다. 공산주의를 추구했던 국가들중 대다수가 자본주의로 전환되었고, 중국과 북한, 쿠바 정도만 기존의 공산주의 체계를 유지했다. 그래서 베트남은 뒤늦게 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한 것이다.
20세기 후반 공산주의는 몰락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여전히 공산주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중국이 급격히 부상했다. 중국은 강력한 자본력을 기반으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동거를 잘 유지하고 있다. 경쟁에 있어 다양성이 필요할 때는 자본력을 앞세우고, 힘을 집중할 필요가 있을때는 공산주의를 앞세운다. 그래서 현재 중국의 국가 경쟁력은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막강해졌다. 트럼프가 위기를 느낄 정도로.
중국과 한국은 여러가지 긴장속에서 발전하고 있다. 일본은 한계에 다다랐고, 베트남은 급부상중이다. 핵에 의한 영역과 신분지배력이 확고한 북한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아무도 알 수 없다. 공산주의 체제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조선왕조와 비슷한 체제를 유지했던 북한은 공산당 중심의 수직적 신분관계를 통해 일찍이 자본화에 성공했다. 중국의 경제학자 원톄쥔 교수에 따르면 1970년대 북한의 도시화률은 70%에 달라고, 북한 농촌은 어느 나라보다 빨리 기계화되었다. 하지만 소련의 석유지원이 끊기고 소련중심의 공산주의 사회시장이 무너지자 북한의 자본력과 경쟁력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위협을 느낀 북한은 핵미사일을 갖추어 스스로를 보호하려 했지만 오히려 경제제재를 받게 되었다. 김정은 체제이후 지난 몇년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전염병이 세상을 휩쓸고 중국과 미국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어떤 선택을 할까? 아니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아니면 해야만 할까?
오늘날 사람들은 영역 지배력과 신분 지배력과 자본 지배력을 여러가지로 아우르고 어울러서 더욱 많은 살림 쓸것을 갖고 쓸 수 있는 정치경제체제를 만들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람들은 국가라는 것을 이와 같은 정치경제체제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수단처럼 여기게 되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함께하는 가운데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정치경제체제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위 인용글을 선생님이 이번 강의를 위해 정리하신 글의 마지막 뭉치말(문단)이다. 우리는 현재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느꼈을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하지만 늦었다고 느낄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도 있듯이 이제라도 느꼈다면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수업을 듣는 학생이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서로 도와야 한다" 선생님은 '자본이 임자인 사회'에서 벗어나 '사람이 임자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기 보다는 서로 도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한국말에서 '돕다'는 '또'와 바탕을 함께 한다. 돕는다는 것은 '나만' 혹은 '너만'이 아니라 '나도, 너도'라는 태도를 갖는다는 의미다. '나도 너도'라는 태도를 가지려면 서로 '복福'과 '덕德'을 주고 받아야 한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살리는 힘을 받는 것이고, '덕을 베푼다'는 것은 살리는 힘을 주는 것이다.
복과 덕을 주고 받으려면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알아듣고 알아차려야 한다. 그래야 서로 알아내고 알아주고 알아하게 된다. 이 6알이 고루두루 갖추어지면 자연스럽게 서로를 돕게된다. 현재 전세계가 코로나19로 많이 힘들다. 아마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이다. 이럴때 자본주의 경쟁을 강조하면 환경은 더욱 파괴되고 각종 전염병이 더욱 극심해져 사회는 급격히 무너질 것이다. 비록 지금은 모두 힘들지만 이럴때 서로 도와야 한다. 사람들만이 아니라 지구의 모든 것들과 함께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경쟁이 아닌 서로 도와 함께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사람의 살림 살이도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