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선배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세상 쓸데없는 학문이 경영학 같아요" 이 말을 들은 선배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가 뭔가 착각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대답을 했다. "경영학은 몰라도 경제학은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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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뒤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를 쓰면서 나는 나의 무식함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그래서 모든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마음속 학부전공은 인문학 전반이었다. 인문학은 보통 역사, 철학, 문학으로 여겨지는데 문학은 왠지 나와 잘 맞지 않아 주로 역사와 철학을 공부했다. 이 분야 사람들은 역사와 철학 전공이 아니면 다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 마음 잘 안다. 나도 디자인 전공안하면 다소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래서 나름 지독하게 공부했다. 운좋게 이 공부를 책으로 매듭지을 수 있었다. 나는 <역사는 디자인된다>를 쓰면서 주변에 이 책이 나의 학사논문이라 말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이 책은 디자이너가 디자인 관점에서 쓴 역사철학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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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를 마쳤으니 석사를 시작해야 한다. 내 마음속 석사 전공은 미술사였다. 일단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를 읽었다. 그리고 이 책이 어떤 맥락에서 쓰여졌는지 읽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읽었다. 역사를 알고 미술사를 공부하니 기존 미술사 책들이 놓친 것들이 보였다. 좋은 책도 많았지만 허세로 도배된 나쁜 책도 있었다. 특히 이것저것 짜집기한 유명한 미학자의 미술사 책은 최악이었다. 오히려 수능강사 출신의 미술사 책이 훨씬 나았다. 그러다 발견한 책이 양정무의 <미술이야기> 시리즈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 난 미술사 책을 더이상 쓸 필요가 없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양정무의 미술이야기는 10권으로 기획되어 있다. 현재 6권이 나왔다. 1권 구석기 미술부터 시작해 6권은 북유럽 르네상스를 다룬다. 남은 4권으로 바로크, 로코코, 인상파 등 현대미술까지 다룰 듯 싶다. 이 책들은 너무 훌륭해서 전세계에 번역 출판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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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난 뭘 하지?" 이 고민을 하다가 시각언어와 관련된 미술사와 이론을 구축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각언어 강의안을 만들고 관련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본래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2권에서 디자인의 바탕을 다루고 싶었기에 시각언어와 관련된 미술사는 나의 공부 취지와도 연결되었다. 그런데 시각언어 분야의 이론적 바탕이 너무 경험에 의지하거나 자의적으로 쓰여져 있었다. 객관적으로 참고할만한 이론이 없다보니 결국 또 외도를 시작했다. 그래서 미술사와 더불어 뇌과학, 신경학, 언어학 공부를 시작했다. 이를 토대로 내 나름의 시각언어 이론, 객관적으로 디자인을 살필 수 있는 디자인이론을 구축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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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은 최봉영 선생님 덕분이다. 선생님의 한국말 말차림 덕분에 언어=말의 바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지난 수개월동안 선생님께 한국말을 배우면서 지금까지 공부하고 강의했던 시각언어 이론을 정리했다. 지난 몇개월동안 이 글을 쓰면서 아주 힘들었지만... 이젠 속이 시원하다. 나름 석사 논문 초고를 완성한 기분이랄까. 이 글은 현재 브런치에 공개되지 않은 글로 등록되어있다. 올해 안에 여유를 갖고 정리해 출판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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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것은 박사과정이다. 내 마음속 박사과정 전공은 뭘로 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첫단락에 말한 대화가 떠올랐다. '경영학'.... 요즘은 왠지 경영학이 인문학의 끝판왕이란 생각이 든다. 과연 기업가보다 사람에 대해 더 궁금한 사람이 있을까? 주변에 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기업가들이 종종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업의 경영이야말로 인문학의 최정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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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인문학하면 '정치'를 떠올린다. 그 이유는 인문학은 사람의 이타심에 바탕을 두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경제와 경영은 바탕은 왠지 '이기적인 사람'이 떠올라 그런지 인문학으로 여겨지기 보다는 사회학으로 여겨진다. 하긴 사회학도 인문학이긴 하지만... 아무튼 최근 내가 알고 있는 기업가들은 대부분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위하려는 태도가 돋보인다. 그래서 경제, 경영학에서 다루는 자본가들이 모두 이기적이라는 편견이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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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가 말하는 경영학은 경제학에서 수요와 공급, 가격 이론을 떼어내어 만든 기존의 경영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알고 싶은 경영학은 사람을 바탕에 두고, 사람을 위하고 사람에서 보람을 찾는 살림학이다. '사람 경영학' 혹은 '살림 경영학'이라고 할까. 아무튼 요즘은 이 경영학을 나의 박사과정으로 삼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왠지 경영학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도 있을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