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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방역을 잘하는 인문학적 이유

by 윤여경 Oct 13. 2020

오늘 아침 <뉴스공장>에서 김어준이 "한국이 개방을 유지하면서 방역에 성공한 특이한 사례"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나아가 "지금까지 기술행정 측면에서만 얘기해 왔는데 인문사회학적인 측면에서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그 이유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누군가 안다면) 그걸 교과서에서 가르쳤으면 좋겠다"며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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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대한 원조 대답은 한국과 사람에 대해 오랜시간 연구하신 최봉영 샘이 갖고 계신지만, 어깨너머 배운 나의 소견으로 대신하면, 방역에 성공한 인문사회학적 이유는 '한국말'에 있다. 한국말은 영어와 달리 주체성이 강하지 않다. 영어는 주어 다음에 동사가 나오고 목적어가 나오는 구조다. 그래서 주어가 목적어에 능동적 동사 행위를 하게 된다. 그래서 주체성이 엄청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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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은 주어에 해당되는 '곧이말' 다음에 곧이말을 맞이하는 '맞이말'이 나온다. '맞이말'을 영어로 치면 '목적어'나 '보어'에 해당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동사에 해당되는 '마침말'이 나온다. 그래서 마침말은 곧이말(주어)만이 아니라 '곧이말'과 '맞이말'을 함께 고려해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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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의 구조가 이렇다보니 주어가 목적어에 어떤 행위를 가하는 느낌이 아니라 '곧이말'과 '맞이말'이 함께 일을 벌이는 느낌을 준다. 즉 영어는 동사가 주어 다음에 있어 주어의 행위를 강조하는 반면, 한국말은 곧이말(주어)과 맞이말(목적어)이 나열된 다음 마침말(동사)이 등장하기에 곧이말(주어)과 맞이말(목적어)를 모두 주체로 여기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한국말은 주체성보단 정체성이 강하다. 한자어 '정체성'을 한국말로 번역하면 '함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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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 한국말은 그 구조상 서로가 서로를 배려한다는 의미다. 한방향의 '일방적 주체성'이 아닌 양방향 '상호적 주체성'이 강하다고 할까. 이 '상호 주체성'을 한자어로 '정체성', 한국말로 '함께성'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말을 쓰는 한국사람들은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즉 '우리'를 위해서 서로 조심한다. 한국말 덕분에 스스로 방역에 잘 협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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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반대 급부도 있다. 한국사람은 상대가 나를 배려하지 않으면 극렬하게 저항한다. 이 또한 '함께성'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사람은 어느 한편의 권위에 잘 종속되지 않는다. 동학, 3.1운동, 광주항쟁, 민주화운동이나 탄핵 등에서 알 수 있듯 한국사람은 권위를 과도하게 남용하는 정부에 극렬히 저항한다. 그래서 상대가 아니다 싶으면 방역이고 뭐고 없다. 지난 8.15집회에서 목격했듯이. 또한 특이하게도 한국은 수천년동안 중국제국에 편입되지 않았다. 북한을 봐라. 미국과 중국이 권위를 앞세우면 북한은 핵깽판을 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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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함께성을 해친다. 그래서 한국사람은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거짓말'은 '겉짓말'로 누군가 겉짓을 해 '겉과 속'이 달라진 경우를 말한다. 즉 '너와 나, 우리'의 '함께성'을 중요시 여기는 한국사람은 '겉과 속'의 함께성도 중요시 여긴다.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쓴 오구라 기조는 한국사람들을 잘 관찰했지만 '한국사람은 원칙적'이라는 이상하고 엉뚱한 결론에 이르렀다. 그가 원칙적이라 느낀 것은 한국사람이 '겉과 속'의 함께성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이다. 한국사람은 별로 원칙적이지 않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유연하다. 그래서 'K-팝'이나 '기생충' 같은 영화가 가능한 것이다. 오히려 일본사람이 겉과 속은 다르면서 원칙적인 것 같다. 이를 한자어로 '고집'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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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이유를 묻는 김어준의 질문이 너무 반가웠다. <뉴스공장>만이 아니라 다른 언론도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최봉영 선생님을 모셔 한국사람이 왜 훌륭하게 방역에 대처하는지 그 이유를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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