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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Sep 12. 2017

창조과학 논란

'창조과학'이라는 말은 참으로 이상한 말이다. 과학은 가설이 실험적으로 검증(반증)가능할때만 성립하는데, '창조'라는 가설은 실험적으로 검증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의 거부감은 '창조'가 아니라 '과학'에 대한 믿을을 져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과학이 이 시대의 유일신이라면 이 현상은 이단심판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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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토마스 쿤이 논증했듯이 과학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계속 바뀐다. 쿤은 이를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말했다. 패러다임의 어원은 희랍어 파라데이그마이다. 당시 이 말은 판례, 표준 등을 의미했다. 오늘날로 따지면 어떤 내용을 담는 형식=틀이다. 즉 쿤은 패러다임=틀이 바뀌면 과학의 목적이나 방법, 역할 등도 함께 바뀐다는 것이다. 쉽게말해 과학은 영원불멸이 아니라 계속 바뀐다는 말이다. 이는 과학 분야에 충격을 주었지만, 이내 수용했다. 사실 과학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바로 유연성이다. 사람들은 이 유연성을 담보로 과학자들에게 진실을 의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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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은 검증 불가능하니 일단 과학이 아니다. 그런데 '과학'이란 딱지를 떼고, 지구의 기원을 생각해보면 1만~6000년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다. 성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식적 측면에서이다. 1만년전은 농업혁명의 시작이다. 인간은 정착을 하면서 자기가 사는 공간을 사유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자연의 패턴을 인식하고 삶에 응용해 소통 언어를 다듬고, 상상력을 동원해 신화와 종교를 만들고, 기술과 법이 정립되어 거대한 공동체를 형성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약 5000~6000년전에 문자가 탄생했다. 즉 말을 글로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자 매체가 등장하면 자연히 인식이 바뀌게 된다. 보다 정확히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고 할까. 그렇게 문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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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는 어떤 '사실'을 알게 되는 계기다. '인지'와 '사실'은 별개의 문제다. 인지가 없어도 세상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없어도 회사가 잘 돌아가듯이. 죽으면 끝이듯이. 뒷담화도 모르면 상관없듯이. 이렇듯 인간적인 입장에서 인지가 없으면 사실도 없다. 말하자면 인간에게, 개인에게 인지가 곧 사실인 되는 셈이다. 인지혁명, 미술사는 동굴벽화를 기준으로 4만년전으로 거슬러가지만 정확히는 알수 없다. 10만년 20만년도 가능하다. 하지만 2차 인지혁명은 대부분 1만년전으로 합의되는 분위기다. 3차 인지혁명이 5000년전이라는 점에는 별반 이견이 없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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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1만~6000년전에 지구가 시작되었다는 믿음은 '창조과학'의 사유가 아닌 '인지과학'의 사유다. 난 이점이 참 이상하다. 이 사람들은 과학이 인정한 사실을 왜 성경을 근거로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사람들은 왜 45억년전에 만들어진 '지구'와 1만년전에 만들어진 '지구개념', 5천년전에 만들어지는 '지구관'을 왜 엄밀하게 구분해서 접근하지 않고, "맞냐 틀리냐"로 퉁칠까... 이게 과연 맞는 과학적 태도일까? 참으로 어색한 광경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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