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요 묻따풀 강학회에서 인상적인 내용은 강학회 시작전 선생님이 말씀하신 역사에 대한 내용이다. 나는 역사의 구조를 바꾸는 사건에 관심이 많다. 중세와 근대의 역사구조 차이는 바로 '신분제'이다. 신분제 변화는 역사에 있어 대지진에 해당된다. 신분제의 구성 혹은 신분제 존재 여부에 따라 사람들의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
서양 역사에서 신분제는 노예제에서 농노제로 전환된 것이다. 소위 서양중세라 부르는 시기는 기독교와 결탁한 기사형 봉건제(코미타투스)와 봉건영주와 농노들의 계약인 장원제로 구성된다. 이 제도는 르네상스를 지나며 서서히 붕괴되는데,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 노예제가 부활하는 등 신분제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서양에서 신분제가 깨진 사건은 미국의 독립이다. 미국은 존 로크의 통치이념에 따라 신분제 없는 자유국가를 확립한다. 미국독립에 영향을 받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고 나폴레옹 덕분에 이 혁명은 전 유럽에 전파된다. 그 후에 몇차례 연쇄 혁명이 일어나면서 결국 서양에서 신분제가 사라진다.
물론 신분제가 사라졌다고 신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귀족은 자본가로, 농노와 노예들은 노동자로 거듭났다. 하지만 과거처럼 신분을 세속하지 않았고, 노력과 운에 따라 신분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의 폭이 넓어졌다. 처음엔 그 기회가 넓고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기회의 폭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중국문명은 송나라에 확립된 과거제를 통해 신분제가 사라질 여건이 마련되었다. 원나라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신분제가 사라졌고, 지배세력과 역할에 따른 신분만 남았을 뿐이다. 적어도 과거의 노예제도처럼 노예신분이 세속되진 않았다. 노력과 운에 따라 얼마든지 신분이 바뀔 기회도 있었다. 물론 그 기회의 폭은 현재에 비해 상당히 좁았지만. 베트남과 태국, 일본과 몽골 등의 국가들도 대개 제도적인 노예신분제가 있지는 않았던듯 싶다.
유독 세속노예제가 있었던 곳은 '고려-조선'이 아니었을까 싶다. 특히 조선의 경우 19세기말까지 신분제가 제도적으로 확고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과거제가 있었지만 이 또한 노비들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과거제는 오히려 이 신분제를 확고히 하는 장치로 작동했다. 조선은 명나라를 이은 소중화를 자처했지만 노비신분제만 놓고 본다면 사실상 송나라 이전의 중세사회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오랜 제도가 바뀌는 것은 순간이지만 새로운 제도가 사회에 자리잡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조선초기 부모의 시신을 태우지 말고 땅에 묻으라고 명령했다. 이 명령이 자리잡기까지 약 200년이 걸렸다. 노비제가 사라진 시기가 고작 100년전이다. 현재 대한민국엔 노비제도가 없지만 노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마르크스는 고대, 중세, 근대의 역사적 구분를 계급갈등의 역사로 본다. 역사가들은 근대에 이르러 신분제가 사라졌다고 말했지만, 그는 근대사회에도 여전히 노예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르크스의 말에 일부 동의하면서도 일부는 부정한다.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는 19세기로 노예제와 농노제가 막 사라져가는 시대였다. 그의 시선에선 분명 신분제가 여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언젠가 이 신분제가 사라질 것이라 믿었다. 마치 기독교의 천년왕국을 꿈꾸듯. 하지만 100년이 더 지난 지금 오히려 새로운 신분제와 노예제가 싹트고 있다.
신분제만을 놓고 볼때 나는 한국사회가 마르크스가 살았던 19세기와 비슷한 상태라고 본다. 그래서 어떤 측면에서 한국사람들은 19세기 중반의 영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역사는 시공간에 따라 또 그 주체들에 따라 무척 달라지지만 과거 비슷한 유형의 역사적 변화의 맥락은 참고할만 한다. 마치 미국의 외교관들이 고대그리스의 전략을 참고하듯이.
신분제와 노예제는 역사의 구조를 바꾸는 아주 중요한 지표다. 나는 한국사회의 노예제의 인식적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각자가 스스로 똑똑해지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한국사람들은 똑똑해지기 위한 길을 밖에서 찾았다. 안에서는 도무지 찾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한국말'에 빠지면서 밖이 아닌 안에서도 충분히 똑똑해지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밖보다 훨씬 더 풍부한 생각자원이 내가 말하는 한국말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려운 말로 하면 한국말을 즉자적인 상태가 아니라 대자적인 상태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국사람들은 세익스피어를 거대한 땅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자신들의 말을 중요시 여겼고, 자신들의 말에 자부심과 자긍심이 있었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말을 대자적으로 살폈다. 이 과정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똑똑해졌으리라... 나아가 노예, 농노, 노동자 의식에서 벗어났으리라 생각한다. 마르크스 또한 여기에 길이 있다고 여겼기에 세익스피어의 비극들을 외우고 또 외우지 않았을까 싶다. 마르크스의 후예들이 여기저기서 교육활동에 전념한 것도 우연히 아니다. 지금까지조차.
한국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노비 의식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말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말을 통해 노비 의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주 특수한 길이다. 이 길은 선택된 번역자들만이 갈 수 있는 독특한 길이라 일반 대중에겐 힘든 길이다. 나의 말을 무시한채 남의 말에 빠지면 대자적 상태는 커녕 남의 말에 종속되어 새로운 굴레에 사로잡힌다. 노비 의식에선 벗어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식민지 의식이나 사대 의식에 다시 사로 잡힌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람들은 한국말 공부를 마치 국뽕에 빠지거나 민족의식에 사로잡히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말 공부는 오히려 반대다. 국뽕의 잘못된 점을 깨닫고 민족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싶다. 최근 나는 한국말 공부를 거듭할수록 이 공부가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 공부가 노비 의식과 연결될것이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처음 한국말에 입문할때는 상상조차 못했다. 앞으로 이런 사실들을 얼마나 더 깨닫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