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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교육과 개발자교육

by 윤여경

어제 디학 입학설명회를 하면서 깨달았다. 디자인 교육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요즘은 개발자가 귀하다. 그래서 개발자가 되기 위한 교육이 성행한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만큼 앞으로 이 기조는 상당기간 지속될 듯 싶다. 그럼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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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발자가 아니지만 개발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접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느낌 개발자의 가장 중요한 소양은 두개로 좁혀진다. 하나는 '논리력', 다른 하나는 '창의력'이다. 통상 창의력을 높히기 위해서 예술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대부분 우리 시대 예술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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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예술은 '우연'이다. 보통은 어떤 규칙이 있고, 그 규칙에 근거해 현상이 일어나는데, 예술은 바탕이 되는 규칙이 없다. 아니 모든 규칙 자체를 부정한다. 왜 그런지는 여기서 설명하기 어렵고, 내 수업을 들어야 한다. 아무튼 현대 예술은 규칙이 없기 때문에 모든 현상을 우연적 느낌에 의지한다. 우연적 느낌이 두려운 예술가는 모방을 추구한다. '모방'은 아무래도 좀 그래서 '재현'이라고 바꿔 말한다. '예술은 재현이다'라고 말하면 그럴싸하니까. 아무튼 현대 예술은 '우연' 아니면 '재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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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디자인도 비슷하다. 아니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둘은 너무도 다르다. 현대 예술과 현대 디자인을 구분하지 못하면 디자인에도 규칙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현대 디자인은 규칙이 있다. 물론 이 규칙은 법처럼 모두가 지켜야 하는 규칙은 아니다. 디자이너 나름대로 그 규칙을 바꿀 수 있는 아주 유연한 규칙이다. 어쨌든 디자인에는 아주 유연한 규칙이 있다. 왜 디자인은 규칙이 있냐고 물으면 이 또한 내 수업을 들어야 한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점은 디자인은 태생부터 규칙을 원하는 사람들이 추구한 미적활동이었다. 그래서 좋은 디자인 교육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디자인에 규칙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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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개발 공부로 돌아오면, 개발자가 되려면 먼저 디지털 세계의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 규칙을 이해하고 이 규칙안에서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 때론 창의력을 통해 기존의 규칙을 바꿀 수도 있다. 규칙을 알기에 규칙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디지털 규칙을 달리 말하면 '논리'라고 말할 수 있다. 디지털 세계에는 '우연'이 없다. 디지털 세계의 모든 현상은 논리 구조가 만든 필연이다. 만약 당신이 디지털 세계에서 어떤 우연을 발견했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 현상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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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계의 '논리력+창의력'구조는 디자인 세계의 '논리력+창의력'구조와 상당히 닮아 있다. 나는 이 현상을 알고 있었지만 디자인 교육과 연관짓지는 못했다. 그런데 어제 디학 입학설명회를 하면서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 디자인 교육은 개발자 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한 기초 교육이 될 수 있겠구나..." (왜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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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에게는 하나의 편견이 있었다. '개발=논리' '디자인=창의'라는 강력한 편견이. 개발과정에는 논리력과 창의력이 모두 요구되고, 디자인과정에도 논리력과 창의력이 모두 요구된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안다. 개발이든 디자인이든 결국 같은 현상의 다른 측면이란 사실을.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다. 순서. 둘 중 무엇을 먼저 교육하면 좋을까. 나는 디자인교육을 바탕으로 삼고, 그 위해 개발자교육을 하는 것이 좋은 접근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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