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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문화도시 연결포럼, 브랜딩

by 윤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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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부산 영도포럼에서 발제하는 글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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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최봉영 선생님은 <주체와 욕망>(사계절출판)에서 ‘현재와 미래’ ‘우연과 규칙’ 두 가지 프레임으로 ‘장난’ ‘놀이’ ‘일’을 구분합니다. ‘장난’과 ‘놀이’의 차이점은 규칙입니다. ‘장난’은 규칙이 없고 ‘놀이’는 규칙이 있습니다. 혼자 추는 막춤과 함께 추는 군무의 차이랄까요. 장난과 놀이의 공통점은 현재적 즐거움을 위한 활동입니다. 장난과 놀이는 즐거움이 목적이기에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반대로 ‘일’은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합니다. ‘일’은 미래의 손익을 만들어가는 활동이기 때문이죠. ‘일’은 과정이 힘들더라고 결과가 좋으면 보람이 생깁니다. 과정이 즐거워도 손해가 나면 좌절하게 되고요. ‘일’도 ‘놀이’와 마찬가지로 규칙이 중요합니다. 법이나 도덕 등 사회적 규칙을 제대로 지켜야만 이익의 정당성이 인정되죠.


우리 삶에서 규칙 없는 ‘장난’은 아주 중요합니다. 어린 아이는 ‘장난’을 통해 새로운 경험에 도전합니다. 어른들도 ‘장난’을 통해 창의력을 발휘하죠. 예술가는 장난치기를 통해 우연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냅니다. 장난으로 한 실험 덕분에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일어나기도 하고요. 반면 ‘놀이’와 ‘일’은 반드시 규칙이 있어야 합니다. ‘놀이’는 즐거운 과정을 ‘일’은 유익한 결과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놀이’와 ‘일’은 함께하는 것이 좋습니다. 과정이 즐겁지 않으면 결과도 안좋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논어>에 ‘好之者不如樂之者(호지자불여락지자)’라는 말이 있듯, 무슨 일이든 ‘즐기는 사람’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현재 정부는 ‘공공예술’과 ‘공공디자인’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현대 예술은 사실상 ‘장난’에 가깝습니다. 예술의 역사 흐름을 보면 현대예술은 고전예술의 규칙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입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규칙에 구속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규칙 지키기보다 규칙 깨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죠. 이런 태도를 가져야 새로운 창조가 가능하니까요.


보통 공공예술하면 세금이 들어가고 공공장소에 만들어지는 예술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현상일 뿐 본질이 아닙니다. 공공예술은 공공이 ‘예술의 자율성’ 즉 ‘장난치기’를 보장해주자는 취지입니다. 창의적 혁신은 대부분 규칙 없는 ‘장난’에서 비롯되니까요. 다시 말해 공공예술이란 ‘규칙 없는 즐거운 장난’과 ‘창의력 높은 실험적인 장난’이 무너지는 것을 우려하여 생긴 개념입니다. ‘공공’이 예술가들 혹은 시민들의 자유로운 창의적 활동을 보호하는 것이죠. 그래서 공공예술을 할 때는 되도록 규칙이나 규정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반면 공공디자인은 규칙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 디자인 분야는 굳이 ‘공공’이라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태생적으로 공공적이기 때문이죠. 디자인 역사 흐름을 보면 현대 디자인 분야는 고전예술의 규칙(형식)에서 벗어나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규칙(형식)을 만들려는 노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산업이든 공공이든 디자이너는 혼자 디자인 하지 않습니다. 디자이너는 항상 클라이언트와 사용자를 고려해서 디자인을 하죠. 디자인 과정 자체가 여러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활동이기에 반드시 공공적인 규칙이 필요합니다. 마치 우리가 도덕과 법을 지켜야 함께 살아갈 수 있듯이요. 다만 디자인 규칙은 법이나 도덕처럼 엄격하지 않고 유연하죠. 그래서 우리는 ‘공공디자인’을 새로운 디자인 분야로 볼 것이 아니라 디자인에 있어 공공성이 두 번 강조된 개념으로 보아야 합니다.


디자인은 그 자체로 과정이 중요한 ‘놀이’이지만 이 과정이 미래의 결과인 이익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일’이기도 합니다. 산업에서 디자인은 철저하게 ‘일’입니다. 산업디자인 분야는 기업의 사활을 걸고 ‘일’로서 디자인을 합니다. 디자인이 미래의 이익만이 아니라 기업의 생존까지 좌우하니까요. 행정기관 입장에서도 도시 브랜딩은 미래의 이익을 위한 ‘일’입니다. 하지만 주주의 이익과 시민의 이익은 경우가 다릅니다. 어쩌면 시민의 이익은 ‘일’이 아닌 ‘놀이’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문화적 즐거움으로 볼 때 디자인은 ‘놀이’가 될 수 있고, 산업적 이익으로 볼 때 디자인은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놀이든 일이든 디자인에 규칙이 중요하다는 점은 잊지말아야 합니다. 때문에 도시 브랜딩은 반드시 공공디자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역이나 도시 브랜딩을 공공예술로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행정적으로 공공디자인이지만 그 과정을 살펴보면 ‘규칙’이 없는 ‘장난’에 가까운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경우 항상 결과가 아쉽습니다. 이익은 커녕 시민들의 반발과 원성 등 오히려 손해를 끼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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