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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러 생각

인간 관계론

by 윤여경


최봉영 샘의 <주체와 욕망>에서 문명별 세계관의 구분을 읽다가 또 하나의 관계론을 발견했다. 일단 지금까지 발견된 관계론을 나열하면 인과론, 연기론, 부분론, 쪽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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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론은 원인과 결과를 중시하고, 연기론은 원인과 연결된 인연을 중시하고, 부분론과 쪽론은 이쪽 저쪽의 상호성을 중시한다. 상호성은 두가지로 구분된다. 중국형 부분론은 중심의 나가 가장자리에 있는 여러 역할과 상호적이라면, 한국형 쪽론은 중심의 쪽이 없이 가장자리에 있는 쪽들이 상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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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발견한 관계론은 '독립론'이다. 근대 서양을 설명하는 개별자-합체를 읽다가 이것을 발견했는데, 근대 개인주의가 바로 독립론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은 중심과 주변이라는 관계 도식 자체가 없다. 전체는 없고 오로지 개체 하나만 있을 뿐이다. 개인은 오로지 자기 자신이 전체이고 다른 사람도 전체로 여긴다. 혹은 아예 존재를 인정하지 않거나. 즉 연결된 전체에 대한 개념 자체를 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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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관계론이 대체로 대자적이라면, 독립론적 태도는 즉자적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에 의해 메타화 시킬 생각이 없다. 상대는 오로지 나의 즉자적 욕심을 실현할 도구로 여길 뿐이다. 만약 상대방의 도구성이 인정되면 계약을 한다. 계약 상태는 전체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계약이 싫으면 그냥 계약을 떠나면 되니까. 루소가 일반의지에서 주장했듯이. 이제 샤르트르 같은 실존주의자들이 왜 그렇게 대자를 주장했는지 다소 이해가 간다. 실제 삶은 즉자적으론 도무지 안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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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이를 개별자-합체라 말하셨다. 나는 이 합체가 두가지로 나눠진다고 본다. 하나는 네트워크 연결자, 다른 하나는 계약자이다. 전자는 왠지 규정되지 않은 느슨한 관계이고, 후자는 규정되어 상호 종속된 관계이다. 개인주의 사회를 지향하는 사람의 관계가 대체로 이럴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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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독립론이 전체의 대자 관계를 해체하는 혁명적 사건을 낳는다. 우리 사회는 지금도 여전히 혁명중이다. 큰 관계를 해체하는 큰 혁명은 대체로 끝났고, 자잘한 관계들을 해체하는 작은 혁명들이 일상에서 일어난다. 어쩌면 내가 한국형 쪽론에 매력을 느낀 것은 이 작은 혁명에 신물을 느껴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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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우리 사회의 관계는 크게 5가지로 구분할수 있다. 흥미롭게도 한국에는 이 다섯가지가 혼종되어 있다. 그래서 관계가 너무 혼란스럽다. 만약 누군가 이 관계들을 제대로 이해하면 대체로 현대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또 사람들이 어떤 관계적 태도를 갖고 있는지 알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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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론 : 모든 관계 부정(개별자-합체)

인과론 : 모든 관계 종속(통체-종속자)

연기론 : 모든 관계 인연(통체-연기자)

부분론 : 모든 관계 역할(통체-부분자)

쪽론 : 모든 관계 쪽(개별자-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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