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봉영 샘의 성리학 설명을 읽으며 성리학이 가진 가장 큰 맹점을 찾은듯 싶다. 성리학은 몸과 마음이 통합된 상태를 강조한다. 나 자신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로서 유지되어 상대방인 너와 만나는 관계다. 이 관계는 계속 해서 변화하며 이 관계 변화를 잘 이해해서 적절하게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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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몸과 마음은 분리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은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나아가 마음과 마음까지 분리해서 생각한다. 가령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스스로에게 정신차리라고 다짐시켜 웃는 얼굴로 실천할 수 있다. 마음의 분리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우린 늘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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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몸과 마음과 마음을 분리할 수 있는 능력은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이자, 사람만의 독특한 능력이다. 최봉영 샘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느낀 점은 이런 능력은 아무래도 말 때문인듯 싶다. 사람의 언어가 다른 동물과 사람을 구분짓는다는 점에서 언어 연구는 사람 연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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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은 사람의 생각 능력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부정한다. 양능과 양지는 일종의 지각적 상태에 머무름이다. 중용의 적절함은 동물들의 행동과 다르지 않다. 동물은 모자람과 지나침이 없이 가장 적절한 지각상태를 유지하니까. 반면 사람은 생각으로 지각을 억제할 수 있기에 늘 모자람과 지나침의 우를 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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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는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면서 생각하지 않은 아이히만에게서 '악'을 발견했다. 그녀는 이를 '악의 평범성'이라 명명했다. 나는 방금 성리학이 몸과 마음을 분리하지 않고 통합하려 함으로써 생각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이 생길 우려를 발견했다. 실제로 중국과 조선의 양반들, 관리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던가. 정명이라는 역할극 뒤에 숨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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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금은 이해가 된다. 왜 조선의 양반들이 '인의예지'를 강조하면서 그토록 서민들을 괴롭혔는지. 이를 스스로 자각하기 어려웠는지. 모두 생각하지 않으려는 성리학의 가르침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런 점에서 성리학 문명은 다소 야생에 가까운 동물 문명이었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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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동물 문명에서 배울 점이 있다. 중용도 그렇고... 또 사람도 본래 동물이니까. 하지만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인 언어와 생각이 있는 한, 최소한 동물보다 나은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문명은 사실 동물보다 나을 것이 없다. 성리학처럼 욕심을 긍정한 개인주의 사회는 중용처럼 욕심을 절제시킬 언어 자체가 없으니까. 상황논리로 친다면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게 성리학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