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반증을 통해 발전을 거듭한다. 반증이란 이론의 검증 과정에서 등장하는 예외적 결과다. 이 예외가 쌓여 기존 과학적 성과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과학적 입장이 등장한다. 그렇게 과학적 이론은 반증 과정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워왔다. 그리고 모든 반증이 사라질때 최종이론, 가장 완벽한 과학적 이론이 등장할 것이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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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같은 꿈을 꾸었다. 내가 처음 디자인 이론을 만들기 시작했을때 반증을 계속 수용하다 보면 언젠가 완벽한 디자인이론이 만들어지지라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 꿈이 어리석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시에 과학의 반증 이론 자체에 대해서도 의심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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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에서 1+1은 2이다. 현실에서 한사람과 한사람에 결혼하면 두사람이 아니라 세사람 혹은 네사람이 될수도 있다. 한 여자가 아이를 낳은 최고 기록이 60여명이니 60사람이 될 수도 있다. 수학자들은 이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1+1은 반드시 2가 된다고 말한다. 왜냐면 수학적 체계와 현실 체계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치 지구와 우주의 중력에 다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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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수학자들의 이런 태도가 아주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고집은 수학을 아주 유용한 도구로 만들었다. 만약 수학자들이 현실의 반증에 흔들렸다면 지금과 같은 엄청난 수학 체계가 만들어졌을까? 사람을 달에 보내고 우주선을 화성에 보내는 것이 가능했을까?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이 등장할 수 있었을까? 또 엄청난 사람들이 서로 교환이 가능하도록 정교한 금융체계를 구축할수 있었을까? 어쩌면 수학은 현실에 눈을 감음으로서 오히려 현실에서 가장 유용한 이론적 도구를 만든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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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가지 이론에 관심이 있다. 하나는 예술x디자인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말x글이론이다. 둘은 모두 언어x소통 이론이기도 하다. 즉 나는 언어이론에 관심이 있고, 이 언어이론이 소통을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도구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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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디자인을 하면서 또 언어학에 관심을 두었지만, 내 디자인이론이 나의 디자인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고, 언어학이 나의 말과 글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불만이 많았다. 디자인이론과 나의 디자인하기에 바탕이 되고, 언어학이 나의 말과 글에 도움이 되길 바랬다. 그런 바램을 갖고 디자인하기를 디자인이론에, 말과 글을 언어학에 반증적으로 꾸준히 반영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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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은 어떤 한계를 느낀다. 이론과 현실이 만날 수 없는 어떤 경계에 다다른 느낌이랄까... 마치 물리학이 입자와 파동이란 경계에 있는 것처럼. 이 경계에 서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둘을 이어주기 보다는 어쩌면 이론은 이론 세계에 현실은 현실 세계에 그대로 두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 이 편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마치 수학이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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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즘은 책도 읽지 않고, 글도 잘 쓰지 않는다. 심지어 종종 찾아듣던 유튜브 강의도 잘 찾지 않는다. 새로운 정보가 나에게 별반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확장 보다는 선택이 아닐까 싶다. 이쪽이냐 저쪽이냐. 어떤 쪽을 선택해야 서로에게 보다 더 유익할 수 있을까. 아무튼 당분간은 이 경계에서 고심을 거듭할듯 싶은데... 한편으론 걱정도 된다. 이러다 결국 선택도 못하고 이 경계에서 잠드는 것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