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문장은 인지언어학에서 말하는 인지의미론의 핵심이다. 인지언어학 이전의 언어학은 '형태(형식)'를 규칙성의 중심에 두었다. 아무래도 형태와 형식을 중요시하다 보니 언어규칙 또한 형식화 되었고, 의미 또한 형태(형식)를 따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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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을 중심에 두면 변화의 여지가 크게 줄어든다. 형식만을 중시하던 세상이 바로 근대 이전이다. 조선시대와 중세는 모두 특정 형식에 갇힌 시기였다. 어떤 본질적 가치를 중심에 두고 그 가치를 표현한 형식을 신성하게 여겼다. 그 의식과 태도, 행동 패턴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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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본+민주 사회는 '형식'보다 '기능' 혹은 '의미'를 중요시 여기는 사회다. 이런 사회는 본질적 가치나 특정 형식을 거부한다. 늘 상대적 가치를 따져보고 더 적절한 형식이 있다면 과감히 바꾼다. 그래서 세상이 엄청 빠르게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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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빠르게 변하면 형식과 규칙 등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특정 형식과 규칙에 억압되지 않고 맥락과 기능, 의미에 따라 형식과 규칙을 유연하게 바꾼다. 현대의 가장 주요한 특징을 하나 꼽으라면 '유연성'이란 생각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 '형태은 기능을 따른다' 등 근현대의 주요한 언명, 명제들은 대부분 딱딱한 형식보다 말랑한 기능과 의미를 중요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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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에서 '-만'은 특정 대상만을 중요시 여기는 태도다. 반면 '-도'는 상대성을 중요시 여긴다. "나도 할 수 있어" "이런 대안도 있어" 등등. 최봉영 선생님은 이 '-도'의 태도를 한국말의 '쪽'이라 본다. 한국말은 동사가 맨 뒤에 나온다. 때문에 영어처럼 동사 앞의 주어만을 강조하기 보다는 목적이 되는 대상도 함께 강조한다. 가령 "나는 학교에 간다"는 '나' 쪽과 '학교' 쪽이 함께 '간다'라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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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의 태도는 개인이나 집단이 특정 주체나 목적을 중요시 여기는 태도라고 본다. 이는 개인의 분열된 마음을 다잡고, 집단의 분열을 막는 아주 중요한 태도다. 가령 과거에는 신이나 이념, 전쟁이라는 특정 가치와 목적만을 공유했기에 거대한 제국 형성이 가능했을 것이라 본다. 그만큼 가치과 목적의 억압, 이에 따른 희생도 엄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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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도'의 태도는 분열의 가능성이 아주 높다. 특정 가치와 목적이 세상을 지배하지 않는다. 개인과 사회는 계속 되는 분열을 겪으며 변화한다. 이 분열은 엄청난 자유와 성장을 낳지만 때론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겪게 한다. 나는 본질적 가치보다는 맥락에 맞는 능력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가 바로 이 '-도'에 의한 쪽 사회라고 본다. "나도 더 잘하고 싶다"는 멘탈리티는 우리를 엄청난 경쟁에 밀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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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민주주의', '개인주의'에서 '-주의'는 '-만'으로 번역할 수 있다. 자본도 민주도 개인도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주의'가 붙으면 자본만, 민주만, 개인만 중요시 여긴다. 또한 '-만'은 어떤 형식화를 초래한다. 가령 '권위'는 능력차이에 따른 차별인데, '권위주의'는 '권위' 자체가 형식화 된 상태를 말한다. 이 상태에선 본래 권위에 내포된 능력의 유연성이 사라지고 특정 능력만 혹은 상태만이 고착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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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몸담고 있은 '디자인' 분야는 형식보다는 기능을, 형태보다는 의미를, 주체보다는 상호적인 쪽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분야다. 그래서 언제나 유연하고 변화무쌍하다. 어쩌면 디자인의 이런 태도가 현대 사회에서 디자인 분야의 엄청난 성장을 가져왔는지도 모른다. 디자이너로 20년을 살아온 나 또한 이런 태도가 몸에 배어 있는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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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 선생님이 번역한 키스 도스트의 <프레임 혁신>은 디자이너의 역량으로 두가지를 꼽는다. '역설'과 '프레임 전환'이다. 디자이너는 어떤 문제를 만나면 늘 새로운 질문을 던져 역설적 선택을 추구한다. 역설을 통해 프레임을 전환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쉽게 말해 기존 형식과 규칙을 바꾸는 것이다. 나는 이런 접근이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 적합한 문제 해결방식이란 생각이다. 어쩌면 디자인의 이런 접근 때문에 현대 사회가 빠르게 변하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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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언어'에 빠져있다. 나의 오랜 숙제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인데 언어의 실마리를 풀어야 인간의 실마리를 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과거 언어학은 언어를 진리형식으로 보았다. 규칙과 형식 중심으로 언어를 재단하고 있었다. 그럼 인간도 진리형식이어야 하나? 인간이 인공지능도 아니고... 언어학이 아직까지 그랬다면 금방 흥미를 잃었을 것이다. 난 디자이너니까. 다행이 인지언어학은 그렇지 않다. 형식과 규칙의 유연성을 수용한다. 언어 접근 자체가 디자인/디자이너의 태도와 너무 궁합이 잘 맞는다. 이 글의 제목처럼. 그래서 이 지루한 공부를 이어갈 수 있는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