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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Sep 29. 2017

과학의 불편함

닐 포스트먼의 저작들을 읽고 있다. 이를 통해 최근 현대과학의 급격한 발전을 목도하면서 느끼는 불편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된다. 과학은 자연을 객관적으로 대상화한다. 이것은 본래 문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인간은 인간의 관점에서 자연을 대상화함으로써 문화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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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도 자연이다. 그래서 우월의식을 가진 인간은 자신보다 하찮다고 판단한 인간을 대상화한다. 이것이 경영의 본질일 수도 있다. 경영에서 고객은 왕이다. 왕의 관료는 경영진이다. 경영진의 노예는 노동자이다. 고객은 경영진을, 경영진은 노동자를 대상화한다. 그런데 노동자는 곧 소비자=고객이다. 즉 경영은 서로 사슬 구조로 얽힌 상호간 대상화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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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인간이 그랬듯 자연을 대상화하며 시작하였다. 과학의 언어는 수학이다. 과학과 다른 학문의 차이가 있다면 가설을 '반증'할때 수학적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수학적 반증은 소설의 서사, 사회학의 설명과 다른 언어구조를 가진다. 가령 수학에서 1+1은 반드시 2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에서 1+1은 2라고 말하기 어렵다. 사회학은 이렇게 말한다. "한 여자와 한남자가 만나서 아이를 낳았다"라고. 즉 인간의 언어세계에서 1+1은 3이나 4가 될 수도 있다. 소설은 더욱 예측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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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사실이 당위를 잡아 먹었다. 올바름의 가치판단은 정확함에 종속되었다.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은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렇방식으로 과학적 사고가 우리를 지배한다. 그러자 모두가 과학이, 과학자가 되려한다. 과학의 본질은 수량화다. 인간 집단을 다루는 사회학, 인간 개인을 다루는 심리학은 각종 숫자를 제시하며 과학이 되려고 노력한다. 터무니없는 골상학은 비판받았지만, 신경과학은 뇌과학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인공지능으로 바톤터치 되면서 급격히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다. 즉 인간이 본격적으로 대상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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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과거처럼 인간이 인간을 대상화하는 것이 아닌, 기계가 인간을 대상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과학의 꿈이다. 왜냐면 인공지능 같은 기계가 인간을 대상화하면 늘 논란이 되는 과학자의 주관적 판단까지 배제 할 수 있어서 절대적 객관성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사와 설명의 언어구조가 아닌 수학적 언어구조를 가진 기계가 인간을 대상화하고 있다. 1+1은 반드시 2어야만 하는 그 기계 말이다. 이런 세상에서 개인은 모두 '1'이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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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어쩌면 인간은 인류 최초로 우리 자신이 우리가 모르는 어떤 대상에 의해 대상화되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가까운 시일내에 그런일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아니 어쩌면 이미 그렇게 되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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