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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Sep 29. 2017

종교와 믿음

창조과학이 한창 논란이었다. 사람들은 말도 안된다고 여기지만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과학과 종교는 종이의 양면처럼 밀접하다. 맞고 안맞고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보다 더 앞선 문제, "왜 믿는지, 왜 믿지 않는지" 그 원인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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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억은 기독교, 16억은 이슬람교를 믿는다. 이 종교들은 모두 유일신을 믿는다. 불교는 15억이다. 불교는 '덧없음=空=0'을 믿는다는 점에서 유일신으로 분류할 수 있다. 논란이 있겠지만 힌두교와 유교는 무교(巫敎)는 다신교이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시대라지만, 근현대사를 살피다보면 실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 유대인과 무슬림의 갈등은 여전히 숙제다. 크로아티아 가톨릭과 세르비아 정교회의 비극이 불과 얼마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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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믿음이다. 그래서 이상하다. 종교가 믿음이라면 현대 종교는 과학이다. 가령 날씨에 대한 정보를 바티칸이나 절에 문의하지 않는다. 기상청을 더 신뢰한다. 늘 틀린다고 불평하면서도 믿음을 거두지 않는다. 또한 많은 이들이 혈액형 분류가 사회과학 연구인양 말한다. 적성검사, 아아큐검사 등 이런 검사들이 말도 안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믿음을 거두기가 어렵다. 이토록 사람들이 믿는 현대의 과학은 늘 그 믿음을 져버린다.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밝히며 자신이 틀렸다고 고해한다. 이런점이 사람들에게 더 많은 신뢰를 준다. 이상한 점은 그 새로운 사실도 언젠가 틀릴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 가설이 사실인마냥 믿는다. 참으로 믿음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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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종교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믿지 않는다. 믿기보다는 주장에 가깝다고 할까. 믿으라고 주장할 뿐이다. 자신도 믿지 않으면서 상대에게 강요한다. 왜 그럴까? 종교는 죽음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는데, 사람들은 과학기술이 언젠가 영생을 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종교에서 구원을 구한다. 정말 영생을 믿는걸까? 내가 보기엔 죽음 이후의 내세보다 현세의 번영과 성공을 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를 종교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긴 조로아스터교가 형성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종교의 의미를 현세에서 찾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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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는 사실이 당위를 잡아먹었다. 쉽게 풀면, 정확함이 올바름을 잡아먹었다. 올바름을 주장하기 앞서 정확함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항상 사람들은 올바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과학적 기준을 찾는다. 올바름의 가치판단이 과학적 권위에 종속되어 있다. 심지어 법이나 도덕조차 그러려는 경향이 있다. 과학이 항상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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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종교가 아니다. 과학과 종교의 믿음은 종류가 다르다. 과학의 믿음이 사실이라면 종교의 믿음은 신념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알 수 있는 것을 믿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알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은 사실을 믿는 것으로 과학이다. 알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은 신념을 지키거나 주장하는 것으로 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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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전통의 종교가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은 바로 '신념'이다. 신념은 올바름에 대한 믿음, 세상을 보는 세계관, 가치판단의 기준이다. 그 신념이 살아있고 이를 따를때 인간은 자유로우며 독립적이며 주체적이 존재가 된다. 그 신념의 기준은 알수 없는 것에 대한 존중이다. 그래서 알 수 없는 점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의지한다. 그렇게 24억, 16억, 15억 등의 거대한 종교가 형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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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치명적 단점은 도덕적 판단 기준의 결여다. 비록 현재는 종교가 보완하고 있지만 종교적 신념은 단순히 도덕적 판단 기준에 그치지 않는다. 그 이상의 숭고한 무엇을 지향한다. 사실여부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효율성을 꼼꼼히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냐 소수냐를 따지는 것이 아닌... 개인의 평화와 공동체의 안정이라는 거대하고 숭고한 정치적 목적을 동반한다. 나는 이런 종교적 신념이 정치에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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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논란을 빚은 박성진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국제사회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종교의 정치화에 대한 이야기다. 폴란드의 해방운동을 이끌었던 '자유주의연대'는 가톨릭교도들이었다. 소비에트(SU)와 유럽연합(EU)에 저항하는 헝가리 총리는 독실한 청교도이다. 러시아는 점점 정교회 사회가 되어간다. 애초에 국경이 모호했던 이슬람 국가들의 국경도 불안하다. 일찍이 40년전 이란에서는 무슬림 혁명이 일어났다. 인도의 모디 총리는 독실한 힌두교도이며, 나는 오바마와 트럼프가 당선될때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중국에는 공맹의 르네상스가 진행되고 있으며, 동남아의 여러 국가들은 여전히 불교가 국교이다. 과연 우리 시대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제도적 제약이 없다고 해서 진정한 종교의 자유가 있을까...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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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억 인구가 각자의 종교를 가지고 있다. 핵폭탄은 합리적으로 계산적으로 효율적으로 관리가 가능하지만, 종교는 그렇지 않다. 어쩌면 더 무서운 핵폭탄은 종교다. 이런 점에서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는 20세기 선배들의 주장은 옳다. 하지만 그 주장이 권위가 되고 권력이 되고자 하면, 게다가 합리성과 효율성이 상실된다면... 종교는 언제는 들불처럼 따오를 것이다. 이미 그 불씨는 당겨진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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