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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Oct 06. 2017

장애인 학교

얼핏 서울시 교육감이 "모든 구에 장애인학교를 만들겠다"는 기사를 본듯하다. 나는 이런 생각이 불편하다. 왠지 나는 이 말이 "모든 구의 교육에서 장애인을 격리하겠다"로 읽히기 때문이다. 소통의 편의상 어쩔수 없이 사용하지만 '장애인'이란 표현도 불편하다. 여튼 격리는 또 다른 격리를 낳는다. 게다가 교육격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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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격리 의도가 아닌 배려하려는 마음과 의지는 안다. 하지만 잘못된 교육디자인이 절망적인 상황을 불러올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베버의 망령을 다시 부르면 "정치는 필연적으로 악마와의 계약을 내포한다"라는 언명을 잊지 말자. 물론 취지는 '폭력'을 우려한 것이지만 정부의 정책이 사회적 강제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사회적 폭력이다. 정치인은 배려도 폭력이 될수 있다는 점을 절대 잊어선 안된다! 가끔 드는 예인데, 원숭이와 물고기가 친했다. 홍수가 나서 원숭이는 황급히 나무로 피했다. 그런데 물고기가 위험에 처한 모습을 보고 위험을 무릅쓰고 물고기를 구해 나무로 데려왔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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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75년생이다. 국민학교 시절 같은 반에 장애인 친구가 더럿 있었다. 동네에는 바보 형과 누나가 늘 있어 놀림의 대상이었다. 중학교에 올라오니 장애인학급이 생겼다. 우리는 특수반이라 불렀다. 동네에 바보 형과 누나들은 사라졌다. 정신병원이나 천사원에 갔겠지. ㅠ 고등학교에 올라오니 특수반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모아 놓는 반이었다. 학교에서 더이상 장애인을 볼 수 없었다. 모두 장애인 학교로 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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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페북에 보수단체 집회에 장애인이 등장해 무술을 시현하는 영상이 돌았다. 사람들은 모두 보수단체를 욕했지만, 난 생각이 달랐다. 저분들은 그래도 장애인과 함께 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안다. '함께' 아니라 '이용'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 장애인의 표정을 봐라. 살아있는 얼굴이다. 진보단체에는 눈을 씻고 봐도 정신지체 장애인을 찾기 어렵다. 껴주지도 않는다. 그냥 관리 아니 배려의 대상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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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에 관련한 선생도 학생도 격리는 좋은 해법이 아니다. 세상에 한두가지 장애없는 사람이 어딨나. 나는 장애인 교육은 '함께'로 가야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개별적 지도는 필요하다. 학령인구는 줄어들고 선생님은 넘쳐나니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학교는 반드시 함께다녀야 한다. 같은 반에서 함께! 그래야 함께 사는 방법도 배우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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