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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Oct 09. 2017

딥러닝과 해마

https://brunch.co.kr/@itschloe1/8


대부분 용어가 익숙치 않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몇가지 포인트가 눈에 띄는데... 놀라운 점은 '딥러닝' 설명이 마치 인간 뇌의 변연계 중추인 '해마'의 작동방식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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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는 인간의 기억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5분이내의 단기기억은 뇌의 전전두엽(전장)에서 담당한다. 추론은 좌뇌 전전두엽, 인식은 우뇌 전전두엽으로 역할이 분리된다. 추론과 인식이 늘 그렇듯, 새로운 경험이 들어오면, 바로 재구성된다. 우리는 이를 '망각'이라고 부른다. 이때 좌뇌의 역할이 크다. 편집증 환자의 경우 엄청난 기억력을 발휘하면서 정작 그 의미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좌뇌가 오작동하기 때문에 우뇌가 장악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정보량이 너무 많으면 아예 모르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요즘처럼. 그래서 적절한 망각이 있어야 한다. 좌뇌가 그런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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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하면 망각을 늦출 수 있다. 집중에 의해 추론+인식된 정보값은 감정의 뇌인 편도(두려움 담당)와 해마로 넘어온다. 해마는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바꿔서 분산 저장하는 기관으로 해마가 없으면 추억도 없다. 실제로 어떤 의사가 간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헨리 몰리어슨이라는 환자의 해마를 제거했다. 이 환자는 수술 이후 장기기억을 전혀 하지 못했는데, 이 환자를 장기적으로 추적함으로서 해마의 비밀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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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전두엽의 단기기억 방식은 추론과 시간 인식이다. 전체를 부분으로 쪼개고, 순서를 따져보고, 위계를 매긴다. 부분을 통해 전체 시스템을 이해하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구성요소를 파악한다. 중요한 것은 선명하게, 중요하지 않으면 흐리게 처리한다. 고개를 들고 앞을 봐라. 중간은 선명하고 주변은 흐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문자 읽기와 무척 유사하다. 글꼴을 보면 내용이 안보이고, 내용을 읽으면 글꼴이 안보인다. 이를 요약하면 '선택과 포기'다. 여기서 포기는 '망각'을 의미한다. 때문에 나는 좌뇌 전두엽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망각'이라고 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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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된 단기기억=망각되지 않은 기억은 변연계의 감정영역으로 되돌아간다. 해마는 시간이 아닌 공간을 파악한다. 주어진 상황을 공간-맥락적으로 파악한다. 공간-맥락으로 파악한다는 말은 공간에서 '객체들의 배치와 이름'을 파악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 공간에서 '나'의 위치를 파악한다. 이 정보를 시상에 전달하고 다시 시상은 호르몬을 통해 온 몸에 전달한다. 그러면 그 기억은 몸 전체에 저장된 장기기억이 된다. 변연계를 거친 장기기억에는 반드시 감정이 묻는다. 때문에 모든 장기기억은 감정이 섞이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 기억에서 감정도 고려해야할 정보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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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뇌 과학자가 해마가 없는 몰리어슨에게 그림을 가르쳤다. 놀랍게도 그는 그림을 그린 기억을 못하면서 그림 실력이 날로 성장했다. 때문에 장기기억의 루트는 해마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를 '암묵기억'라고 부른다. 어쩌면 우리 몸의 신경 전체가 뇌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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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엽의 추론과 인식이 문자적 기억이라면, 해마의 공간 인식은 이미지적 기억에 가깝다.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전두엽의 시간 변화 인식이 개인의 주체성이라면, 해마의 공간 변화 인식은 개인의 정체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자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시간을 공간적 이미지로 환원시켜 기억에 저장한다. 이를 '삽화기억' 혹은 '맥락 부호화'라고 말하는데, 문자 또한 일종의 이미지로서 '키워드=개념'을 통해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압축-응축 저장하는 셈이다. 이는 예술가들이 어떤 상징적 이미지(알레고리)를 사용하는 것과 유사한 기억 방식이다. 추론과 인식이 기억의 날실이라면, 해마의 장기기억은 씨줄에 가깝다. 날실과 씨줄을 엮어서 2차원 공간을 재창출하듯, 시간(1차원)과 공간(3차원)이 엮여서 4차원 기억이 창출되는 셈이다. 게다가 인간의 기억은 경험이 달라짐에 따라 계속 재구성된다. 즉 인간의 기억은 삽화들이 연결된 만화 혹은 영화와 같은 방식이다. 나는 "인간의 기억은 동영상이다"라고 종종 말한다. 우리가 드라마를 볼때 자신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는 이유는 바로 기억의 매카니즘을 영상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반면 그림이나 글을 읽으면 뇌가 엄청 피곤해진다. 실제 뇌는 인간 에너지의 20~25%정도를 사용한다. 이 말인 즉, 공부는 되도록 동영상을 피해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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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인간의 장기기억은 대부부 패턴으로 구성된다. 피타고라스의 삼각형이나 피보나치 수열의 나선형처럼 혹은 세잔의 그림처럼. 이를 복잡계 과학에서는 프랙탈이라 부른다. 프랙탈이란 쉽게 말해 '도식'이다. 나는 이런 사실을 기반으로 '도식'적 공부를 선택한 바 있다. 내용을 개념으로 응축하고, 다시 개념을 공간적 이미지로 배치함으로서 최대한 기억의 효과를 높이고, 이를 다시 맥락적으로 구성함으로서 개념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도식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렇게 만들어낸 도식=모형이 바로 '디자인모형'이다. 사실 나의 도식적 접근은 (늘 농담처럼 말하듯) 디자이너라서...라기 보다는 뇌 과학을 공부하다가 '해마'라는 기관을 접하고 여기에 최적화된 공부방식을 택했다. 나름대로 과학에 기반한 접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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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점은 딥러닝이 이런 해마의 기능과 유사한 접근을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난 인공지능과 달리 인간만의 고유한(혹은 위대한) 장점 중 하나로 해마를 염두하곤 했다. 그래서 딥러닝으로 유명한 '하사비스'를 검색해 보았다. 인터뷰에서 그는 '인공 해마'를 만들겠다고 공헌한다. 흥미로워서 좀 더 자세히 검색해보니, 그는 컴퓨터과학을 연구한 뒤, 뇌과학과 해마를 공부한 것을 토대로 딥러닝을 만들었다고 한다. 산술은 시간적 분석이다. 반면 기하학은 공간적 분석이다. 그렇다면 그의 딥러닝은 산술과 기하학을 통합한 데카르트의 업적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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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해마 말고도 인간의 고유한 특징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렇다고해서 해마=딥러닝의 중요성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는 진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다. 생명 고유의 영역, 다양성과 적응이 동시에 진행되는 진화의 단계에 들어선듯 싶다. 나는 장기기억의 최종 결과물을 DNA라고 보고 있으며, 현재 인공지능의 장기기억은 그런 DNA를 만들어가는 단계다. 다른 한편에서 DNA를 재조합하는 합성 생물학이 급성장하고 있다. 언젠가 이 두 분야가 만나는 접점이 생기면... 엄청난 시너지가 발휘될 것이다. 유럽이 아메리카를 발견한 정도의 효과(성공과 재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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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가 속한 뇌의 영역을 포유류의 뇌라고 말한다. 즉, 인공지능은 이미 포유류의 단계까지 치고 올라온 것이다.(머신러닝은 파충류의 뇌에 가깝다) 과연 내 생애 안에 인공지능이 인간의 뇌=대뇌피질 영역까지 지배하게 될 것인가... 처음에 기대 반 두려움 반의 감정이었는데, 방금 편도가 자극되면서 두려움이 조금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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