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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Oct 15. 2017

대한제국

http://news.joins.com/article/22002339


잘 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었겠지. 또 왕과 관료들의 갈등도 첨예했겠지. 부패한 관료들의 재정을 약하게 하고 왕의 내탕금을 높혀 독자적 개혁을 시도한 점도 그럴듯 한데, 개화파도 친일과 친청, 친러로 나뉘었을뿐 개혁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정도의 차이였을뿐 누가 재정과 개혁의 주역이 되어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듯. 다들 공부 많이 하고 똑똑한 지배자들이었을텐데 무능하지는 않았을듯. 윤치호 일기만 봐도 그가 세계 정세를 꽤 뚫고 있다는 인상을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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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도 나치때 작살났듯이 열강의 사이에서 중립국의 승인은 정말 운빨인듯. 20세기 전후 대한제국이랑 비교가 되는 국가가 태국이 적절하다고 보는데 태국은 왕이 주도적으로 개혁개방하고 영국에 줄을 잘 섰고, 무엇보다 영국의 인도와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사이에 중립지대로서 적절한 역할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왕조국가를 유지할수 있었던듯. 본인이 잘했다기 보단 운빨이 좋았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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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이 절정이었고, 미국은 관조자였을 때. 국제정세는 대서양은 정리되는 수순, 지중해와 인도양은 열강의 각축이 치열, 태평양은 다소 관심외였던 상황이라 미국과 일본이 날뛸수 있는 분위기였을듯. 일본은 영국 계열이었고, 미국도 대한제국보다는 훨씬 적극적인 일본을 선호했던듯 싶고, 고종은 청나라의 뒷배를 두고, 일본이 영국계열이라 러시아쪽으로 기울었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일본을 아주 배척하지 않으면서 나름의 중립을...(나라도 그랬을듯) 그런데 세상일이라는게 참... 맘대로 안됨.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는 완패하고, 당대의 그레이트국가 러시아까지 일본에게 졌으니(1904년 러일전쟁)... 물론 아무도 예상 못한 결과였고, 심지어 일본에서 가장 현실주의자였던 이토 히로부미가 전쟁을 결사 반대할 정도였으니 승리한 일본 본인도 화들짝 놀랐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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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후 일본은 본인들의 문화에 자부심을 갖고 많은 연구를 하게 됨. 이 흐름이 오만으로 흘러 나중에는 엄청난 희생을 치루며 쫄딱 망함. 다시 고개 팍 숙이고 절치부심하며 우뚝 일어섰지만... 다시 망조... 그래서 승리의 경험은 참으로 무서움. 우리도 한강기적의 경험으로 자만과 오만에 빠져서 허우적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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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대한제국이 일본에 먹힌 가장 큰 이유는 러일전쟁이고, 둘째 이유는 미국과 일본 사이의 가쓰라-테프트 밀약(미국은 필리핀, 일본은 대한제국), 셋째는 청나라의 몰락으로 든든한 뒷배의 상실이 아닐까. 그리고 나서 고종과 관료들의 공과를 논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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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엔 줄을 잘 서던 아니던, 만약 태국처럼 영국과 프랑스의 중립지대였다면 대한제국은 멸망하지 않았을듯. 이슬람 국가들의 행보를 봤을때 유럽 열강들은 더이상의 식민지를 노리진 않았던듯. 하지만 부동항이 필요한 러시아, 대륙의 교두보가 필요한 일본, 현체재를 유지하려던 중국 사이에서 식민지가 안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듯. 일본 식민지가 아니면 차르의 속국, 종국엔 소비에트연방이 되었을듯. 그래서 무능은 아니고 무력함은 맞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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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무엇이 더 좋은지는 알 수 없었을 것이고. 현재의 입장에서 보는 과거는 다양한 생각을 장려하는 편이 좋을듯. 어짜피 역사는 본인의 현재 기억과 나름의 팩트를 근거로 조합해 말하는 것이니, 각자의 기억이 달라 팩트의 해석이 달라지는 건 당연. 기억을 빼고 팩트만 보려는 노력을 하면 좋을듯. 여튼 역사는 사람마다 해석하기 나름이라 너무 자학할 필요도 없고, 너무 자만할 필요도 없을듯. 그냥 담담하게 현재가 만들어진 이유를 찾고, 교훈을 얻고, 앞으로 비슷한 상황에서 우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미리 가늠해보는 정도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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