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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Oct 09. 2017

과학과 인문학

<나인>을 읽으며

연휴 기간 중 MIT미디어랩 소장과 연구원이 쓴 <나인>이란 책을 읽었다. 이 책의 부제는 '더 빨라진 미래의 생존원칙'이다. 제목에 걸맞은 아홉가지 생존 원칙을 다양한 사례로 풀어 이야기한다. '창발' '다양성' '시스템' 등의 단어가 논지를 주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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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신경쓰이는 단어는 '보다'이다. 가령 창발을 강조하기 위해 '권위 보다 창발'이라 말하는데, 이는 권위와 창발 둘중 하나를 선택하는 태도로 '다양성'에 위배된다. 모순이다. 서양 철학의 모순률, 배중률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함에서 오는 이율배반이다. 그냥 '권위 혹은 창발' '권위와 창발'이라고 썼다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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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발은 아주 중요하다. 권위는? 그만큼 중요하다. 이 책에서 다루지 않는 수많은 주제들은 권위를 중심으로 움직이며, 사람들은 권위에 의지해 안정감을 느끼고, 권위를 모범삼아 미래를 꿈꾼다. 이 책에서 경시하는 '지도' '순종' '이론' '능력' 등도 대부분 나름의 가치를 갖고 역할을 한다. 둘 중 하나 선택의 대상에 될 수 없는 표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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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경계가 무너진 학제, 경계를 살아가는 학자들의 눈부신 '과학적' 성과들을 다룬다. 대부분의 과학적 성과는 조금이나마 들어봤던 것이고, 몇몇은 생소하다. 특히 암호에 대한 내용은 암호는 읽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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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웠다. 나도 학제를 넘는 독서를 한다고 자부하는데, 이들처럼 전문적 깊이도 없고 내용을 공유하는 친구(붕)도 없다. 주어진 시스템이 전혀 없어 옳고그름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 때문에 성공과 실패조차 모르겠다. 구름위에서 자위하고, 안개속에서 좌절하고, 페북에서 각혈한다. 그런데 이들은 너무나 좋은 조건에서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난 영어를 못하니 이들 틈에 낄수 없다. ㅠㅠ 초조하게 구글의 번역이어폰만 보며 입맛을 다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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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점도 있다. 이들의 학제 경계가 과학과 기술 분야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디자인' '예술' '창의' '사회적'이라는 말은 많이 등장했지만 정작 역사, 철학, 문학, 미술 분야와 협업한 성과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인문학 분야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보는데, '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과학적 사례를 자세히 설명한다거나, 협업한 연구 사례를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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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인문학 사이에는 거대하고 공고한 장벽이 느껴진다. 물론 이 장벽에 쥐구멍이 없는 건 아니다. 진화론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인문적 소양이 풍부하고 과학과 문화의 개념을 정확하게 구분한다. 역사학자인 존 루이스 개디스는 역사 연구에 복잡계의 과학적 기법을 도입한다. 그는 과학적 수단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사회학자 닐 포스트먼도 과학기술의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고 모자람과 지나침의 적절한 경계를 짚어낸다. 이들 모두 '문학적 감수성', '과학적 상상력'이라는 모호한 단어 뒤로 숨지 않고 정확하게 상호 분야의 언어를 구사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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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와 통찰에 있어, 과학과 인문학이야말로 경계가 있어서는 절대 안된다. 과학은 자연이고, 인문학은 인간이다. 인간 없는 자연이 무슨 의미이며, 자연 없는 인간은 생존 불가능하다. 과학과 인문학은 동전의 양면이다. 한쪽이 있어야 다른 한쪽에도 가치가 있듯이. 인문학적 통찰력을 가져야 강력한 과학적 수단을 통제할 수 있다. 과학적 통찰이 있어야 인문적 독단을 극복할 수 있다. 둘은 '보다'의 관계가 아닌 '과(와)'의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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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식적이란 지적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명심하고 조심한다. 안주하기 보다는 모험을, 편들기 보다는 경계를, 개념 보다는 맥락을 중시한다. 아니 안주와 모험, 편과 경계, 개념과 맥락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취한다. 마치 박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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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식은 시스템을 그리는 과학적 태도다. 인간의 인문학은 이런 도식을 경계한다. 반면 도식이 없으면 설명도 설득도 없다. 오로지 느낌과 이해만 있을뿐이다. 이것이 과학자들이 인문학을 글쓰기나 교양 정도로 다루는 이유중 하나다. 그래서 나는 도식적이지만 도식적이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런데 이런 책들과 경험을 통해 느끼는 바, 이 세상은 너무나 숨막히도록 도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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