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의 자기배려는 많이들 자기합리화로 오해된다. 푸코가 자기배려를 말할때 참조한 인물이 알키비아데스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 사람으로 아테네를 배신한 인물이다. 알키비아데스가 하나의 캐릭터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플라톤의 <향연>이다. 향연의 술자리 끝무렵에 등장하는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질투한다. 그는 술주정으로 의미있는 분위기를 망치고, 소크라테스에게 막말을 한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를 이해하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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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연>은 플라톤 말년의 저서로 이즈음에는 소크라테스의 말이라기 보다는 소크라테스라는 캐릭터를 빌려 플라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다. <향연>에서 알키비아데스는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은 소크라테스가 너무 싫었다. 알키비아데스는 왜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 소크라테스는 술자리에서 알키비아데스의 말도 안되는 주정을 듣고도 어떻게 관대하게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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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푸코가 말하는 자기배려는 자신감과 자존감의 문제라고 본다. 자신감은 자신에 대한 신뢰이고,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존중이다. 자기 신뢰가 있으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담에 잘하면 되니까" 자기 존중이 있는 사람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다. "멋지지만 부럽진 않아" 이런 자기신뢰와 자기존중이 있는 사람은 타인에 대한 신뢰와 존중도 가능하다. 반면 자기신뢰외 존중이 부족하면 타인에게도 그런 태도가 투영된다. 알키비아데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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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은 그런 푸코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푸코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와 함께할 수 없음에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배려를 외쳤다는 생각이다. 남의 눈치보기에 앞서 나 자신을 배려하는 태도. 소크라테스처럼 나 자신을 배려하고 나아가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태도. 그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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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는 급격히 상호적 신뢰를 상실하고 있다. 경쟁과 적대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푸코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수없이 자살시도를 했다. 자신의 성향과 사회적 시선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본인의 감정을 분석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자기배려'에서 그 해답을 찾았고 성의 역사에 그 생각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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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자신에 대해 너무 엄격하다. 그래서 타인에 대해서도 엄격해진다. 경쟁과 적대는 우리 자신을 좀먹는다. 우리가 푸코에게 배워야 할 자기배려는 자신에 대한 관대함이다. 괜찮아! 이정도면 충분해! 이런 마음이 중요하다. 이 관대함은 경쟁적 자기 합리화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이다. 그래야 서로 환대하고 서로 편안하게 머물고, 서로 함께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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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사회적-지구적 문제가 여기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