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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Sep 07. 2022

'나눔과 나뉨' 전시를 보고

한재준 샘의 소개로 '나눔과 나뉨' 전시를 보고 왔다. 서울여대와 국민대 학생들이 모여 자신들 나름대로 한글에 대해 또 자신들의 삶에 대한 성찰하고, 이를 이미지로 표현한 좋은 전시였다. 내 성향상 전시에 가면 작품설명을 유심히 본다. 아무래도 현대미술과 디자인은 의미와 평론이 중요하니까. 사진에서 보듯 이 전시의 설명은 다른 전시와 좀 다르다. '나'와 '삶'에 대해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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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로고스)가 있었다'로 시작한다. 말씀이 있었기에 '나'라는 행위자가 있다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모든 현상은 어떤 힘의 작용이라고 말했다. 나뭇잎이 움직이려면 바람이 있어야 하듯이.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것을 움직이도록 한 태초의 힘이 있을 것이라 상상했다. 그것이 '부동의 원동자'이다.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모든 것을 움직이도록 하는 힘의 원천. 이것이 신이 존재한다는 논리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듯이. 나아가 사람의 이성과 주체성, 독립성을 강조하는 논리다. 말씀은 결국 사람의 언어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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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은 자신을 가르킬때 '나'라고 말한다. '나'라는 말소리는 '피가 나다' '생각이 나다' '집에서 나오다' '더 나은 삶' 등에서 쓰이는 '나'와 같은 느낌과 의미를 가진 음절이다. 최봉영 샘은 한국사람이 자신을 어딘가에서 '나온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이 말을 쓴다고 말하셨다. 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과연 그렇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 그래서 한국사람이 출신을 그렇게 중요시 여기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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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증거가 이름에 있다. 본래 사람은 가장 초점이 되는 말을 제일 먼저 쓰는 경향이 있다. 문장에서 주어를 먼저 말하는 것처럼. 미국사람은 이름이 먼저 나오고 성이 나중에 나온다. 반면 한국사람은 성을 이름 앞에 붙힌다. 윤여경. 이 말은 '여경'이는 '윤'씨 집안 사람임을 강조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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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문화에 따라 성과 이름이 순서가 다르듯 사람은 성향에 따라 '나'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어릴 때는 나를 '낳(나)아' 준 부모님에 의지한다. 좀 크면 부모님과 집안을 싫어하거나 무시하고 싶어진다. 자신이 나온 곳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때론 자신을 키워준 학교나 집단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자신이 나온 본분을 부정하고 상실하게 된다. 좋은 말로 하면 독립하는 것이고, 나쁜 말로 하면 배신하는 것이다. 그러다 나이가 더 들면 다시 가족과 모교, 고향을 찾는다. 뭐 어쨌든 사람은 정체성과 더불어 주체성도 중요하다. 그렇기에 사람이 성장하면서 두 가지 태도를 두루 갖추는 것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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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은 자신을 '나'라고 말한다는 점에서 자신이 나온 곳에 대한 향수가 아주 짙다. 그래서 부정하더라고 애증의 관계인 경우가 많다. 애착이 애증으로 바뀌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애착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나이가 들면 다시 부모님과 고향, 학교를 그리워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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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나뉨'이라는 이 전시의 주제처럼 요즘 나도 내가 '나온 곳'과 '나는 것'을 종종 생각한다. 나의 근본이 거기서 시작되었고, 여전히 나의 바탕이 거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집에서 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가듯, 언젠가 나는 다시 내가 나온 곳으로 돌아가겠지... 그곳이 흙이든 바람이든... 어쨌든 나는 '나'가 중요한 한국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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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딘가에서 나온 사람이다. 동시에 내 안에서 무언가가 나오는 사람이다. 어떤 말씀과 부동의 원동자에 의지한 동시에 스스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의지를 가진 존재다. 나는 나눔과 나뉨의 작은 뉘앙스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다. 나눔은 내가 어딘가에서 나왔다는 것은 인정하는 것이고, 나뉨은 나로부터 무언가가 나올 것이란 것을 인지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오묘한 제목 덕택에 여러가지 생각이 나게 한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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